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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울음    
글쓴이 : 박병률    21-09-06 11:47    조회 : 6,626

                             고양이 울음

 

 여대생이 원룸에 살다가 이사를 갔다. 학생이 이사 간 뒤 방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방문을 열자, 방바닥에 고양이 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웬 고양이 밥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책상 밑을 바라보는데 큰 고양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야옹, 야옹소리를 내며 발톱을 세우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고양이와 멀리 떨어져서 이사 간 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학생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통화가 안 되고 나중에는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고양이 몸집이 커서 섣불리 대할 수도 없고동물보호센터에 전화를 할까 고민하는 사이, 고양이가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4층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밖에 나가서 주변을 살폈지만 고양이를 찾을 수 없었다. 세상은 점차 어둠이 깔리고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부동산에서 원룸 계약서 쓸 때 개와 고양이는 키우지 못합니다.’라는 조항이 있었는데, 원룸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고양이가 울면 옆집에 피해를 줄까 봐 그런가 보다 했다. 나도 말은 안 했지만 오래전 원룸에 사는 학생이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다. 학생이 이사한 뒤에 보니까 방에서 고양이 오줌 냄새가 진동하고, 고양이 털이 빠져서 침대 밑에 수북하고, 고양이가 벽지를 발로 긁었는지 발톱 자국이 나 있었다. 그래서 침대며 옷장을 유심히 살폈으나 다행히도 별일 없었다.

 학생한테 또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다. 아까 내 전화번호도 남겼지만 연락이 없는 거로 보아 학생이 내 전화를 받기 싫은 모양이다. 부모님 전화번호라도 알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니, 학생이 아버지와 함께 방을 보러 왔을 때가 떠올랐다. 학생 아버지가 나한테 말했다.

 “우리 막내딸이유. 잘 부탁혀유.”

 “어르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알아서 잘 살아요. 걱정 마세요.”

 내가 염려 말라고 했지만 어르신이 내 손을 꼭 잡고 한마디 덧붙였다.

 “딸이 세상 물정을 잘 몰러유. 그러니께 부탁혀유.”

 “, 신경 쓸게요.”

 어르신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어르신도 따라 웃었다.

 어르신 얼굴에 주름이 자글거려 웃는 모습이 하회탈을 닮았다. 학생이 사는 동안 가끔 문 앞을 살펴본 일 밖에 없는데, 어르신이 농사를 지었다며 해마다 학생 편에 키위한 상자를 보내주었다. 학생한테 과일을 받고 부모님 안부를 물을 때면 잘 계셔요.”라고 말한 뒤, 학생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학생한테 선물을 받고 옥상에서 키운 상추며 쌈 채소를 한 움큼 뜯어서 바구니에 담아 주었는데.

 잠시 후 인터넷에서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 경우를 찾아봤다.

 ‘고양이는 뛰어난 수평 감각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난 후 10분의 1초도 되지 않아 착지할 곳을 확인하고, 사지를 뻗어 낙하산처럼 펼쳐서 떨어지는 속도를 줄인다. 오히려 저층보다 고층에서 떨어질 때 착지에 대한 준비가 이뤄져서 덜 다친다.’

 인터넷 글을 보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마음이 안정되자 동네 골목에 돌아다니는 고양들이 생각났다. 골목을 지나다 보면 고양이가 볕이 잘 드는 담장 밑에 다리를 뻗고 일광욕을 즐기고, 어떤 날은 고양이 두 마리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고, 어떤 고양이는 사람을 만나면 꽁지 빠지게 줄행랑을 치고, 그런가 하면 동네 사람 누군가는 고양이 밥을 그릇에 담아서 담장 밑에 놓아주었다. 이런저런 풍경이 스쳐 지나갈 때 학생이 키우던 고양이도 무리 속에 어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끼리 서로 통해야 무리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다. 인연이란, 사람과 사람끼리 맺어지고. 때론 사람과 동물, 식물, 자연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연이 닿아서 얽히고설키는가.

 나는 어쩐 일인지 길을 가다가 고양이를 만나면 학생이 두고 간, 4층에서 뛰어내린 그놈이 아닐까?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흰색 고양이에 몸집은 강아지만 한데, 눈에 핏대가 서고 발톱을 세운 채 나를 노려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히 겨울에 비가 오는 날이면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강변이나 청계천 길을 걷다가 고양이 집이 풀숲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발걸음을 멈추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날씨가 추워지면 누군가 고양이 집에 비닐을 씌워주고, 고양이 밥을 챙겨주며 정성을 쏟는다고 생각할 때 마음이 숙연해진다. 학생이 두고 간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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