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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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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톱니 생활    
글쓴이 : 봉혜선    22-03-02 21:50    조회 : 3,000

                                        톱니 생활

                                                                                                                                                           봉혜선

 

 라면, 과자, 한약· 영양제를 비롯한 약, 일회용 커피, 설탕·소금 같은 양념류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공통점을 찾으셨나요? 필수품. 기호식품. 그런가요? 내용물이 들어 있는 봉지를 살펴보세요. 뜯어도 보세요. 개봉할 때 힘들진 않았는지요. 가위나 기타 도구가 필요했나요. 봉지마다 톱니 모양이 하나씩은 들어 있습니다.

 요즘 라면 봉지를 보니 위쪽 개봉용 톱니 모양 표식의 수가 많이 줄었어요. 전에는 위아래 전체를 눌러놔서 굳이 어딜 더듬지 않아도 됐는데요. 최근에는 딱 필요한 만큼만 눌려 있어요. 톱니 모양을 내는 기계도 닳나보군요. 효율을 중시하는 선진국형인가 봅니다.

 세상 참 편리해졌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지요. 전업주부니 밖에서 벌어지는 큰일을 접하는 적은 별로 없습니다. 나가서 가끔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켤 때 유독 변화하는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나라가 문물 선진국이구나, 라며 아찔해지는 때입니다. 펴던 어깨가 절로 움츠려집니다. ‘라는 존재가 들어가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소외되어 있거나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에 서글퍼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하루 대부분을 집안에서 혼자 보내도 불편함과 편리함에 민감합니다. 그러한 때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게으르다고 하셔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만 작은 일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크더이다. 물은 끓고 있는데 라면 봉지가 잘 열리지 않을 때 가위는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때로 설거지통에 박혀 있기도 하고요. 미리 반찬을 준비하며 마침 떨어진 설탕을 넣어야 하는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념을 넣어야 하는 순서가 어그러지면 음식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커피를 마시려 할 때 입구 부분이 다른 색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사이 작은 줄이 그어져 있는 부분을 열라는 안내 문구를 처음 보았을 때가 잊히지 않습니다. 그걸 처음 접했던 곳은 동네 대형매장에 딸린 노래 교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커피라도 마시지 않으면 손해거나 선생님도 마시니 나도 따라 마시면 노래를 잘하게 될까 하는 기대 속에 평소에 즐기지 않는 크림, 설탕이 들어 있는 커피를 일주일에 한 번 마셨습니다. 집에서는 그저 유리병에 담긴 커피를 한 스푼 정도 덜 뿐이었지요.

 전과 다른 포장 색에도 마음을 쓸 겨를이 없는데 열리지 않는 겁니다. 지켜보고 있던 총무가 여는 방법을 알려줄 때까지 헛심을 쓸 뿐이었어요. 내용물을 쏟으면 맨 위 커피 양이 줄 텐데 염려하면서요. 총무에게 물어보니 새로 나온 포장이라고 하더군요. 더 이상 뒤쳐질 수는 없었습니다. 노래 부르기가 끝나자마자 새 문물을 접하려 매장으로 직진했습니다.

 나이 들수록 가벼워진다는 말에 찬성할 수 없다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에게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가벼워질 만큼 충분히 나이 들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기 위한다는 핑계로나 늙기 전에 한 번은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육아에서 벗어나도 할 일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이 들수록 할 일이 많아져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신경 쓰거나 할 일이 늘어납니다. 일을 전보다 빨리 처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떡하든 극복해 보려고 젤 형태, 가루 형태의 한약과 영양제를 챙깁니다. 어떤 제품은 여는 곳 표식이 없습니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많이 늘린 품목 중 하나가 가위지만 가위를 가지러 가는 한두 걸음도 하나의 일이니 때론 불편하다 여깁니다. 그러고 보니 가위에도 톱니 모양 부분이 있네요. 페트병 뚜껑을 따거나 호두 껍데기를 까는 용도로 쓰인답니다. 핑킹 전용가위도 따로 있고요

 날카로운 톱니는 톱처럼 무엇을 가르는 일을 하니 뾰족함이 생명입니다. 봉지를 가를 때 손이 베면 안 되니 날카로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에 대한 특허도 내놓았겠지요. 가끔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난 김에 다른 부위의 이상 증상을 물어보면 전문가에게 가라고 할 뿐 같은 부위의 작은 증상조차 나 몰라라 하니 그들은 전문가가 맞는지요. 컴퓨터로 찍은 듯한 외모를 한 성형 아이돌 가수에게 온갖 조명이 집중되자 짓궂은 질문이 쏟아집니다. “다른 파트의 노래 가사나 제대로 아느냐.” 정말 노래라곤 못 하는 래퍼는 당당합니다. “제 파트가 아닌데여.”

 대량생산이 필수인 시대입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처럼 한 부분의 고장이나 사고는 자연스레 그 뒤쪽 나머지를 멈춥니다. 물론 앞쪽도 멈춰야 하지요. 톱니의 특성에서 또 다른 면인 맞물려 돌아가는 역할에도 생각이 미칩니다. 생활의 편리함과 효용성에 대해서입니다. 주부는 고장이나 적체의 책임으로 진땀나거나 책임을 지는 의무에서도 빗겨나나요. 전업주부는 맞물려 돌아가는 그런 사회의 톱니바퀴에서 효용이 없는가요? 날카로운 톱니의 날이 서로 만나 맞물려 돌려면 맞물리는 만큼의 뭉툭함도 필요합니다.

 집안에서나 주방에서 전업주부는 전천후입니다. 주부는 전기·전열 기구, 가스, 상수도, 하수도, 칼 가위 같이 다양하고 위험한 집기를 다룹니다. 쇼핑부터 다듬기, 씻기, 자르기, 볶기 등등으로 수많은 음식을 해냅니다. 하수도가 단 한 순간이라도 막히거나 청소, 빨래, 설거지 같은 위생 담당을 거르면 당장 표가 납니다. 시아버지 밥그릇에만 돌이 들어간다는 말처럼, 머피의 법칙처럼 어쩌다 하필 소홀히 한 부분에서 탈이 납니다. 현장 사령관과 훈련병을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주부는 또한 가족들의 감정 담당입니다. 교장이던 아버지는 엄마를 고등학생으로 알았습니다. 교수인 오빠는 올케를 조교라 여긴다 했고 남편과 제부는 저와 동생을 비서나 거래처 직원으로 착각했습니다.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라도 한 날에는 내가 그 상대라도 되는 듯 화를 풀려 했어요. , 그래도 그런대로 돌아갔습니다. 기꺼이 톱니로 살아왔습니다. 날카로운 날을 죽이고 뭉툭하게 자신을 둥글리면서요. 한자리에 모여 앉은 고등학생, 조교, 비서와 거래처 직원은 입을 모아 험담을 늘어놓다가도 식사 준비를 하려고 일제히 일어납니다. ‘우리의 위 톱니인 엄마는 이제 앉아 계세요하면서요.

 아하, 알았어요. 크기와 관계없이 톱니는 질서로군요. 보이지 않는 톱니 하나라도 빠지면 유명하다는 스위스제 시계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톱니의 놀라운 기능을 알게 하려고 뒤판을 투명하게 만든 시계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시계의 생명은 비싼 가격이 아니라 톱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는 외장입니다. 시계의 책임을 맡은 톱니는 날 선 꽃이며 생명입니다. 커피의 자르는 선은 컴퓨터로 미세하게 잘라 놓았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톱니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쳇바퀴 돌 듯 그날이 그날 같아도 지금 이 자리까지 발전을 계속해왔듯이 말이에요. 내가 빠지면 안 되는 데도 분명 있겠지요? 나이 들어갈수록 편하게 잘 돌아간다고 느껴지면 좋겠습니다.

 

봉혜선

.서울출생.

<한국산문>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이메일:ajbongs60318@hanmail.net

때로 팔이 세 쌍쯤, 다리가 두어 쌍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 손에 잡은 서너 가지의 일을 처리하느라 눈이 팽팽 돈다. 오늘만 행복하기 실천 중이다.

                                                                   <<한국산문 202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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