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요, 저요
윤기정
‘선생님’ 교직 생활하는 동안 ‘윤기정’이름 석 자보다 익숙한 또 다른 이름이었다.“선생님, 안녕하세요?”“선생님, 저요, 저요.” 가을 갈목처럼 흔드는 손들. “선생님, 얘가 금 넘어왔어요.” 여기서 선생님 저기서 선생님, 초등학교 교실은 등교부터 하교까지 온종일‘선생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최선이고 최고의 존재다.
‘선생님’하고 부르면서 온전히 기대오는 동심은 한 치도 밀어낼 수 없는 맑은 물살 같은 것이었다.‘ㅅ, ㅅ’의 초성初聲이 주는 느낌은 얼마나 가볍고 싱싱한가? ‘싱싱, 솔솔, 생생’이 그렇고 ‘속삭임’이 그렇고 ‘선생’도 그렇다. 상쾌한 소리에 절실한 의미를 더하여‘~님’자까지 붙인‘선생님’은 기분 좋은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선생이란 말에는 대표적인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학예나 덕망이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담임선생, 국어 선생 등은 전자의 예이고, 후자의 예로는 ‘백결 선생, 김구 선생, 소파 방정환 선생’등을 들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뛰어난 지도자나 위인은‘선생’만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고, 학교 선생을 가리킬 때는‘~님’자를 붙여 쓰는 점이다. 업적이나 위상을 보면 반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이는 교육 기관의 선생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고 직접적이기 때문일 것이다.‘학생들이 본받을 언행을 보여야 한다.’는 본분을 한시도 잊지 말라는 경종의 뜻으로 새기기로 했다. 그 이름에 모자람이 없게 아이들을 대하려 노력했다. 따뜻한 시선 밖으로 놓치는 아이가 없도록 아이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살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선생님’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흔쾌히 받아 안기로 작정했다. 아이들을 만났던 첫 3월에.
퇴직하면 ‘선생님’소리는 다시 들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퇴직하고 몇 달 뒤 오랜 일상을 바꾸자며 산골 마을로 이주했다. 십여 호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부부 또는 어느 한 편이 은퇴한 교사들이 사는 집이 네 집이나 되었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나를‘윤 교장님’이라고 불렀다. 잊혀야 할 호칭이었다.“은퇴했고, 교장으로 그대들과 같이 근무한 적이 없으니 교장이 아니다. 그냥‘윤 선생’으로 불러다오.”라고 정리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어도‘선생’으로 부르는 경우가 흔했다. 학교 안에 있을 때는 몰랐던 일이었다. 이를테면 글쓰기 모임에서 성인成人 수강생끼리 성이나 이름 뒤에‘선생님’을 붙여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젊은 강사와 나이든 수강생이 서로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했다. 동호회 회원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나 같은 교사 출신이 많은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의사나 교사를 높여 부르던‘선생님’이란 말이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호칭이 되었다.
현미가 불렀던 옛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길을 가다가 사장님 하고 불렀더니/열에 열 사람 모두가 돌아보네요./…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몽땅 사장님’1960년대 경제 발전기의 사회상을 반영한 재미있는 노랫말이었다. 여기서‘사장님’을 ‘선생님’으로 바꾸면 요즘 세태에 딱 들어맞을 성싶다. 교육기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려면 교육학을 전공하고, 사법고시보다 어렵다는 임용고사를 넘고, 그보다 더 어려운 발령을 받아야만 한다. 민족의 우러름을 받는‘선생’은 평생을 바쳐 헌신하고도 뛰어난 몇 명에게만 허락되는 어렵게 얻는 이름이다. 이런 이름‘선생(님)’이 넘치는 것을 보자니 ‘선생’의 값어치가 떨어진 것만 같아서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나도 따르게 되었다.
‘선생’이란 말이 두루 쓰이는 현상을 속화俗化라 일컫는 이도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누구나 하나의 이름만으로 살지 않는다. 직위나 관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산다. 그 이름에 저마다 ‘선생’하나 더해서, 세상이 선생들에게 바라는 지도 능력 향상과 본받을만한 언행 도야에 힘쓴다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선생은 많을수록 좋을 일 아니겠는가?
가지고 살던 많은 이름을 내려놓았다. 부끄러움이 조금씩은 남지만 이름마다 허투루 살지는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아니 내려놓을 수 없는 이름도 있다. ‘할아버지, 아빠(아들은 마흔이 넘어서도‘아빠’라 부른다), 아버님, 남편’생각만 해도 입 꼬리가 올라가는 이름들이고, 내가 사라진 뒤에도 얼마간은 불릴 이름이다. 내려놓을 수 없는 이름에 하나 더한다, ‘선생님’. ‘카톡, 카톡’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제자의 문자가 왔다.‘선생님. 안녕하세요? ~’
<좋은 수필> 2023.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