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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여성적    
글쓴이 : 봉혜선    23-07-10 21:35    조회 : 2,361

여성·여성적

 

                                                                                                              봉혜선


 낮 시간 찻집과 음식점은 여자들의 세상이다.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남자들이 가끔 여자들만의 공간에 잡혀온 포로들이 아닐까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다세이렌 섬이 그랬듯 여자들의 성지이다책이나 노트북을 들고 '혼커(혼자 마시는 커피)'가 얼마든지 가능한 스타벅스에 들어오기 전 세이렌은 책에만 머물러 있었다. '증강 현실'이 되어 아지트가 되어줄 줄 몰랐다. 이렇게 세상을 못 읽었으니 참는 것만이 미덕이었다. 소리 소리 지르는 남편 앞에서 물러나 나는 책으로 피해 있었다. 독서 중 닿은 여성들이 글쓰기를 자극하고 펜을 들게 했다.

 성경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흙으로 자신을 닮은 형상을 빚어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만들었고 외로워 보이는 아담 몸 가운데 있는 갈비뼈를 빼내어 이브를 창조했다. 남자는 흙으로, 여자는 뼈로 만들었다는 말이지? 아내를 '당신'이라고 불러야 맞는데 당신(當身)마땅히 나의 몸'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담은 이브로 인해 신에 대적할 만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앞뒤 양면에 얼굴이 둘이고 팔다리가 넷이어서 완전한 상태인 인간을 샘낸 신이 반으로 갈라놓았다는 설도 일면 설득력 있다.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반쪽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딱 반으로 쪼개진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몸이 좌우 대칭이 아니라는 사실도 믿을 만하다. 젊을 때는 혹시 남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가.

 이브는 아담을 꼬드겨 선악과를 따먹었고 둘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실낙원에서 밀턴은 '아담의 죄는 신보다 여자를 더 숭배하고 신을 향한 신앙심을 거두어 여자에게 바친 데에 있다'고 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아담과 이브에서 이브는 찬란한 빛, 아담은 그녀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예술에서 이렇게 귀히 여기는 여자다. 내비게이션의 속 상냥한 여자도 안내에 따라 운전하지 않는 남편의 눈치를 보는지 계속 친절한 음성으로 남편이 바꾼 길로 다시 안내한다. 나도 내내 순종만 해야 할까. 마치 기계처럼 말이다. '목소리 여자'처럼 똑똑하지도 않으니 한없이 길을 헤맨다.

 이브와 아담이 나간 낙원 에덴동산은 그 후 폐허가 되지 않았을지. 지금 어디에도 없는 에덴동산은 어디인가. 부부가 되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아담과 이브의 후예인 각 가정이 바로 에덴동산이 아닐지. 왜 나의 에덴동산은 마치 내가 남편을 유혹해 선악과를 먹고 쫒겨난 듯 낙원을 그리워하는 남편의 원망이 가득한 곳인가? 아니, 그래서인가? 원죄를 갚아야 하는가? 나이 들어가거나 퇴직 후 집으로 들어온 남편들이 아내 눈치를 본다는 요즘의 현상이 우리 집에서도 가능할까? 아담은 이브를 사랑해서 말을 들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여자가 더 센 것?

 그리스 신화에서는 혼돈 상태인 원래에 스스로 그리고 자연히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있었다. 가이아가 하늘과 지하와 바다의 신을 낳았다. 판도라는 금기를 어기고 상자를 열었지만 희망만은 남겨놓았다. 여자의 호기심을 폄하하지도 말기 바란다. 호기심 때문에 연 상자지만 즉시 닫은 상자에 남긴 희망으로 이 세상을 살 만하다고 여기게 해 놓은 것 역시 여자의 처신이라고 주장하면 억지인가.

 스핑크스, 메두사와 유디트의 성별 또한 여자다. 천일야화에서 여자를 하룻밤의 상대로만 여기며 바람난 아내에게 상처받은 복수를 하는 왕의 마음을 치료해 준 사람 역시 여자다. 또한 세상을 움직이는 건 남자, 그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여자라는 말이 있듯 여자는 약하지 않다. ‘당하고 사는 것이 아니지. 양보하며 사는 거지라고 생각하려해도 서러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여러 경우에 맞기도 하긴 해도. 다시 책에서 위안을 찾는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리어왕》 《멕베드》 《오셀로등 남자 주인공 이름이 책 제목인 4대 비극, 한여름 밤의 꿈을 비롯한 5대 희극은 여인들의 행동과 태도와 계책이 줄거리를 이어간다. 베니스의 상인도 아내 포샤(Poritia)의 지혜가 아니었다면 목숨을 이어가기 어려운 남자다. 백년전쟁이 낳은 프랑스 '성녀' 잔다크를 빼놓을 수 없다. 파우스트의 그레트헨, 그 외에도 베아트리체, 카츄사, 라라, 마돈나, 오 비너스. 우리의 신라 선덕· 진덕 여왕도 선정을 펼쳤다. 효녀 심청, 사랑을 지키려 목을 내민 춘향, 나라를 위해 몸을 날린 논개, 신사임당, 허난설헌, 남자들에게 더 추앙받아 누나로 고정된 호칭인 유관순 언니가 있다.

 '코가 1인치만 낮았더라면 세계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긴 이집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 중국4대 미녀로 오늘날의 마타하리에 해당하는 침어沈魚 서시, 낙안落雁 왕소군, 미인계로 이름난 폐월閉月 초선, 양귀비가 있다. 중국의 3대 악녀로 주지육림酒池肉林 달기, 여태후, 측천무후.를 꼽는다. 천하태평의 시대를 만들기도 하고 왕조를 패망시키는 등 쥐락펴락하며 역사를 바꾼 여인들이다. 현대에 와서 원더우먼, 소머즈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영웅이 된 여자들의 이름이 뇌리에 떠나지 않는다. 수수께끼 미소를 머금은 모나리자, 카르멘 등등 여성만이 지닌 매혹적인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 온 팜 파탈의 미를 지닌 여성에 푹 빠져 현실을 버티고 잊고 이긴다.

 《개미의 저자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는 상상력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인류가 진화할 방향을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좀 더 여성적인 성향. 좀 더 작은 크기. 좀 더 협력적인 성향.' 이미 여성들이 갖추고 있는 조건이다. 또한 인류가 나아갈 만한 미래를 이끌 부류에 페미니스트를 포함했다. “여성들이 권력을 잡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부당함을 참았으니 이제 변화를 일으킬 때가 왔다고 여긴다." “예술은 훌륭한 어머니(모성)와 같아야 한다. 예술은 여성과 같다."라는 세계 3대 문호 톨스토이의 말을 받들고 있다. 마지막 남긴 말이라고 전해지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한 괴테가 더 유명해지기 바란다.

 짝을 찾던 수매미 소리가 여름을 독차지한 듯 했다. 베란다에서 귀뚜라미 한 마리가 우는 소리가 늦여름 밤을 점령하려 들었다. 며칠을 밤마다 지치지도 않나 보다. 어찌나 우렁차게 울어대는지 우는 원인을 찾아주고 싶었다. 필시 어디인지 모르고 튀어든 수놈이리라. 짝을 찾아주거나 이 높은 데서라도 떨어뜨려 주면 살아서 암컷 짝을 찾아갈 수 있으려나. 짝이 생기면 잘해 주거나 있을 때 잘해 주겠다는 천성적인 참회록을 읊는 것일까. 암소나 암탉의 부드러움과 위용을 생각해본다. 동물의 세계에서 암컷이 여럿이라도 수컷은 한 마리만 있으면 되는 자연의 원리를 해석해보자.  

 여자 위주가 아닌 채 지내는 사람만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중이 아닐까. 젊어 아내를 무시하고 인정 안하던 남자도 나이 들면 괜찮아진다고들 했다그 말은 요원하기만 했다버지니아 울프가 천국에 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내다보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인 '책 붙들고 방 안에 웅크리고 있기'30년이 넘었다. 못한다는 살림 대신 잡은 책 안에서 들여다 본 세기를 초월한 여성들의 활약상이 나를 버텨왔다고 본다. 끊임없이 북돋고 격려해 준 여성의 여성적인 힘이 변화를 일으키기를 격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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