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초등학교 때 일 년에 두 번 쥐잡기 운동을 했다. 정부에서 쥐약과 쥐덫을 나눠주고, 전국적으로 동시에 쥐약을 놓아서 쥐를 잡았다.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식량을 훔쳐 가는 쥐는 사람들 눈엣가시였다.
1960년대 시골은 대부분 초가지붕이고,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볏짚을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 마당에 탑처럼 ‘짚 다발’을 싸놓았다. 그런 주변 환경이 쥐들의 은신처로 딱 맞춤이었다. 달밤에 짚 다발 근처에 서 있으면 볏짚이 여기저기서 들썩거렸다. 쥐들이 볏짚을 갉아먹느라고 정신이 없느라 그랬다. 짚이 들썩거리는 곳을 양손으로 한참 동안 누르고 있으면 쥐가 죽었다.
어디 그뿐인가.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 천장에서 쥐들의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천장에서 ‘우당탕탕, 두두두두’ 쥐가 뛰어다니는 발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침에 눈 뜨면 천장에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쥐오줌이었다.
“저놈을 언제 잡나! 저놈의 꼬리를 잘라야지….”
밤마다 칼을 갈았다.
그 무렵에 쥐꼬리를 잘라서 학교에 제출하는 숙제가 있었다. 담임이 숙제를 내주며 한마디 덧붙였다.
“얘들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알지? 얼굴이 쥐를 닮았어!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못살게 군 놈이야. 풍신수길을 때려잡는 기분으로 쥐를 잡고, 쥐꼬리를 자르면 재미있을 거야.”
집집이 부모들이 나서서 자식들 숙제에 동참했다. 어떤 친구는 쥐꼬리를 잘라서 성냥갑 두 개를 채웠지만, 영희는 오징어 다리를 불에 그을려서 쥐꼬리(?)라고 가져왔다. 얼핏 보기에 쥐꼬리처럼 보였다. 영희 차례가 되자, 담임이 오징어 다리라는 것을 눈치를 챘는지 한 말씀 하셨다.
“영희야, 이 쥐꼬리는 물 건너 온 게 맞지?”
“저는 쥐가 징그러워요.”
“알았다. 영희, 세 개”
담임이 웃으면서 개인 기록 카드에 적었다.
쥐꼬리를 많이 낸 사람은 상을 주었다. 상 받는 재미에 친구끼리 집게 하나씩 손에 들고 골목을 누비고 다닐 때 쥐약 장수였던 기찬이를 만났다.
‘쥐꼬리 숙제’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기찬이가 눈에 아른거린다. 기찬이는 아랫마을에 살았는데 나보다 세 살 더 먹었다. 소아마비를 앓아서 한쪽 다리를 절었고, 쥐약 통을 어깨에 메고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면서 쥐약을 팔았다. 어느 날 쥐약을 사라고 외치는데 동구 엄마가 기찬이를 불렀다.
“기찬아, 쥐약 좀 싸게 줘야!”
“그렇게는 안 돼요.”
동구 엄마는 자식의 ‘쥐꼬리 가져오기 숙제’ 때문에 쥐약을 사려고 했지만, 기찬이는 안 된다면서 돌아섰다. 그리고 또 외쳤다.
“쥐약이요, 쥐약 사요!”
어릴 적에는 기찬이와 동구 엄마가 줄다리기하는 모습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면, 기찬이는 장애 때문인지 학교에 안 다녀도, 좌절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삶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내 삶이 지치고 힘들 때 기찬이가 떠올랐다.
“어떤 사람은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몸이 성한 사람도 세상을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겠는가. 나도 한때 말 못 할 힘든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앞에 먹구름이 낀 듯 한 치 앞도 안 보일 때였다. 실의에 빠져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데 뜬금없이 쥐꼬리 숙제가 떠오르고, 기찬이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쥐약 사요, 쥐약을 안 사면 누가 아쉬운가 보시오!”
라는 말이 내게 던지는 ‘메시지’ 같았다.
“일어나, 그딴 일로 쓰러지면 누가 손핸가 보시오!”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기찬이의 당당한 모습이 나한테 큰 힘이 되었다. 그날 있었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쥐약, 안 사면 누가 아순가 보시오!”
기찬이는 큰 소리로 외치며 가던 길을 가고, 동구 어머니는 종종걸음으로 기찬이 뒤를 따라가며 사정했다.
“기찬아, 우리 동구 쥐꼬리 숙제해야 헌단께!”
한국산문 202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