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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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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류, 막힐 수 있습니다    
글쓴이 : 봉혜선    25-03-11 19:03    조회 : 287

역류막힐 수 있습니다


 화장실은 혼자 울기 위해서도, 조용히 있고 싶은데 장소가 없는 사람에게나 변신하듯 옷을 갈아입으려 할 때도 필요한 장소다. 외출해 혼자 있을 수 있는 오롯한 공간은 아마 화장실뿐이 아닌가. 남편과의 투닥거림이나 싸움 횟수도 줄어가는 요즘이다. 전에는 옆에 있을 때는 아무 말 하지 않다가 화장실에 간 사이 빈자리에 대고 남편은 어디 갔느냐고 소락대기를 지르곤 했다. 최근에는 화장실에 있을 때만큼은 혼자 있고 싶다는 소원을 말해 적어도 화장실에서만큼은 온전히 평화롭다. 조용하고 고요한 화장실에서부터 나의 평화가 보장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화장실은 혼자만의 공간이다.

 화장실은 원초적인 기본 욕구를 채우는, 정확히 말하면 채운다기보다 비우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 축에도 들지 못하지만 의식주 어느 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공간이어서 거론의 여지마저 무시하게 되기 일쑤다. 그런 화장실이 요즘 아프다.

 멀지 않은 과거에 화장실이, 적어도 집이 아닌 곳에 있는 화장실이 깨끗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냄새는 기본이고 어떻게 된 신체 구조를 갖고 있는지 궁금할 만큼 제자리를 찾지 못한 오물은 이상하지도 않았다. 휴지 없는 건 당연했고 휴지통은 언제나 넘쳤다.

 거울 볼 일도 있었으나 얼룩이 튀거나 가방 놓을 자리도 변변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화장실 가기는 외출 시 곤혹스러운 일에 속했다. 가능한 한 빨리 볼 일을 마치고 나오는 것이 목표인 듯 갈 때는 급해도 나오는 걸음은 더 빨랐다. 멀어져서야 참았던 깊은 숨을 내쉬거나 들이쉴 수도 있었다. 중요한 자리에서 화장실에 가야할 경우에는 손을 씻고 오겠다는 말로 빙 돌리고 다녀온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기피 장소 1위였던 화장실이 어느 순간 변심한 애인처럼 환골탈태를 하고 있다. ‘화장실은 문화의 척도라는 기치 아래 새 단장되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화장실 전성시대이다. 전통 기와를 얹는가 하면 음악이 흐르고 꽃이나 그림, 시까지 걸어 놓아 문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붐처럼 시작된 화장실의 대 변혁은 미인 대회처럼 예쁜 화장실, 머무르고 싶은 화장실, 전국에서 1등 한 화장실이라며 선전도 서슴지 않는다.

 한강 천변에도 유일한 건축물로 들어서 있다. 광진교 화장실의 는 여느 카페 부럽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해서 광진교를 더 걷고 싶은 다리로 만들어주고 있다. 화장실 덕분에 인기인 장소가 늘어가는 추세이기도 하다. 모 백화점에서 시작한 중수 이용이 오히려 세간의 입방아에 오를 지경이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었다는 말, 하이힐(High heel)과 바바리코트(Burberry coat)의 유래나 에티켓(Etiquette)의 어원 모두 화장실과 관계되어 있다. 마르셀 뒤샹이 (Fountain)이라는 제목으로 남자 소변기를 현대 미술의 소재로 등장시킨 지 근 100년이다. ‘레디메이드현대를 꼬집은 이 작품은 뒷간은 멀어야 한다.’는 우리네 속담이 안녕을 고해야 하는 때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남자들의 간단한 볼 일에 비해 여자가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많으니 여자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보다 세 배는 넓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넓이 조절이 되는 추세다. 여자 공중화장실의 변화는 놀랍다. 남자 아이를 데려오는 엄마들을 위해 작은 남자 소변기를 설치해 놓았다. 백화점 파우더 룸을 방불할 만한 공간으로 착각할 만큼 화려한 공간이 되었다. 기저귀 가는 곳에 수유실 이 함께 있어 여자 화장실은 점점 넓어지고 쾌적해지고 있다.

 각종 강연회나 공연장에 혼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기념사진을 찍을 길 없어 화장실 거울에 대고 휴대폰 카메라를 눌렀다. 화장실 사진 전시회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진이 늘어갔다. 오롯한 가운데 혼자 나온 사진에서 표정은 화장실에 상주한다고 여겼던 냄새나 다른 방해 요인으로 구겨지지 않았다. 사진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평온해졌고 또 하나의 족적을 남겼다는 마음이 되었다. 싸움터니 전쟁터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다.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은 몸이 아닌 마음의 측면에서도 달라져야 하리라.

 향기까지 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으나 볼 일을 보러 자리 잡고 앉으면 아무리 가까운 길이라도 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고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수다.’ 등 화장실과 딱히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던 경구(警句)나 하이쿠 같은 짧은 글귀가 단박에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 글귀는 배변을 돕기도 한다. 읽다보면 자연스레 시간이 가고 급한 일은 스르르 풀리니 말이다. 글귀는 고민 중이던 문제의 실마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유레카!”라 외치며 맨몸으로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목욕탕과 더불어 화장실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새삼 거론할 필요는 있을까. 물론 때로 방해가 된다는 것도 고백해야겠다. 기본 욕구를 해결하는 것은 무념무상의 경지가 더 자연스럽기도 하니 말이다.

 ‘지금 사용하신 휴지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주세요.’ 라는 문구 한 구절을 발견하기 전에 손이 길을 잃었다. 휴지통이 없어진 변명의 글을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지방 어디에선가 위생 등의 이유로 휴지통을 없앴다는 결정이 났다는 작게 쓰인 설명 문구를 발견하기 전까지. 위생 면에서 보기 싫거나 깔끔함과는 거리가 있다거나 혹은 화장실 청소 같은 일이 기피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 또한 인권에 관계된다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는 없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혹여 종이를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때였다.

 ‘휴지, 생리용품, 물휴지 휴지통에 버려주세요. 많은 양의 휴지, 빨대, 쓰레기 등 변기에 넣지 말아 주세요. 물에 녹는 휴지가 아닙니다. 변기에 휴지 넣지 마세요.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 죄송하지만 꼭!! 휴지통에 넣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수압이 약해요. 변기가 막히고 있습니다. 변기가 아프면 연락 주세요. 5초간 눌러주세요.’ 공공 화장실에 들어앉을 때마다 뒤통수를 치는 경구를 채록하듯 휴대폰에 담은 글들이다.

 보기에 좋지만 휴지통을 없앤 미끈한 공중 화장실에 휴지통 대신 늘어난 건 바로 휴지다. 좁은 화장실에 휴지통 대신 설치하는 규격을 달리하는 두루마리 휴지통들. 너무 많은 양의 휴지를 쓰지 말라는 경구는 다만 경구에 그칠 뿐으로 대처용으로 내건 두루마리 휴지가 점점 얇아지고 있다. 휴지통을 대신하는 오래된 관이 바로 아래 있음을 간과한 보이기 식 행정이 아닐까. 주먹 크기만 한 통로 아래로 빠져나간 분뇨가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분뇨종말처리장, 하수 종말 처리장 등 처리 시설이 늘어나는 것과 그런 시설이 들어오지 못하게 데모하는 사람들.

 더 많은 휴지를 써야 하고 더 많은 나무가 소모되고 더 많은 처리시설을 지어야 하는 악순환이 보인다. 더 많은 양의 휴지가 화장실 변기에서 알 수 없는 아래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더 많고 더 독한 소독약품을 써야 하는 환경파괴로 가는 지름길인 것 같아 뚜껑을 닫는다. ‘휴지는 휴지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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