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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글쓰기 여행    
글쓴이 : 봉혜선    25-11-24 11:29    조회 : 461

첫 글쓰기 여행

 

 겨울의 끝자락, 봄은 아직 소문뿐이다. 멀리 보이는 스키 슬로프에 눈이 쌓여 있다. 눈 사이로 드문드문 맨 땅이 보이니 겨울이 흘러내리는 모양으로도 보이고 봄이 치켜 오르는 상태로도 보인다. 주어진 대로 존재하는 얽매이지 않은 자연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모습.

 자유! 덜 먹을 자유. 보고 싶지 않은 것 보지 않을 자유, 잘 자유. 자지 않아도 되는 자유. 일상을 하지 않을 자유. 일 하지 않을 자유. 쉴 자유. 한가할 자유. 그리고 또 ... .

 이번 여행은 나와 최초로 정면으로 마주하기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하지 않고 싶은 건지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정은 월요일 출발, 34. 집에서 3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강원도가 목적지다.

 날씨도 풍경도 요일도 여행 조건으로는 선택해보지 않은 조건이다. 그래서인지 리조트는 개점휴업 상태 같다. 드물게나마 여행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떠남은 늘 남편이 데리고 다녔고, 나는 따라다니기만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스키로 유명한 리조트를 즐기러 온 것도 아니고 남편과의 여행이 그랬듯 먹거리 여행도 아니다. 여행 동반자 역시 남편이 아니다.

 비수기인 스키 리조트를 싸게 빌릴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에게 조심스레 청하니 단박에 바쁜 일정을 접고 함께 해주었다. 글 쓸 환경이 안 된다는 평소의 말버릇을 진짜로 듣고 제안해 이루어진 떠남이다. 방이 두 개일 것이 유일한 조건이었다. 글을 쓰러 나온 모임에서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문학 기행을 청해준 문우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는 것이 글 쓰러 떠나자는 제안이었다.

 떠나기 전 준비물로 노트북과 먹거리를 간단하게 챙기자는 데에만 의견을 모으고 글 쓰러 떠나자에만 집중했다. 여행도 떨리고 설레는데 글쓰기 여행이라니. 운전 못하지, 지리 어둡지, 문단경력도 비할 바 없는 새카만 후배의 제안을 허락해 준 문단 선배의 옆자리에 앉아 자꾸만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제목만으로 며칠 간 충분히 잠을 설쳤으므로 어쩌면 내내 잠만 자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여행을 사전에서는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인터넷에 여행을 치면 여행사가 맨 먼저 나온다. 데려다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즐기게 해준다는 업체가 연락만 하라고 한다. 숙박이니 특미로 업그레이드 해주겠다는 서비스도 있다. 전문 안내자가 있고 집사처럼 친절하다고도 한다. 장소 소개 역시 정보의 바다다.

 계절별, 축제별 등 주제를 잡아 눈과 귀를 잡는다. 하릴없이 TV를 켜도 지금이 기회다’ ‘몇 년만의 개방이다’ ‘지금 당장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전보다 좋아졌다’ ‘지금 예약하면 특전을 주겠다등등 지금이 아니면 큰 손해라도 볼 것 같은 유혹이 흔하다. 전의 것을 모르는 상태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유혹은 강렬하다. TV도 꺼야했다.

 화장실도 두 개인 리조트를 비수기에 각자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밥 먹을 때만 만나자고 해 따로 또 같이라는 독립적이고 럭셔리한, 처음이지만 어쩌면 다시없을지 모르는 기회를 가지고 누리게 되었다. 가는 차속에서 나를 후배라고 소개하는 전화 통화를 듣자 마음이 더없이 흐뭇해졌다.

 한번쯤은 산다는 걸 감각하고 싶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고 의식주의 늪 속에서 헤매면서 잘 산다고 생각해왔다. 막 살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는 것이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실수하고 싶지 않은 바람은 있었던 것 같다. 힘든 일,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 욕심나는 일, 겁나는 일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욕먹지 않고 잘 사는 삶이라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있다면 남편 깃 안에서는 피할 수 있었다.

 떠날 수 있다니, 남편 없이 떠나다니, 내 사전에는 없던 역사다. 매일 문자로라도 남편에게 여정이나 일정을 전송해야 할 것이다. 특별한 일정이나 특히 강원도적인 특산품을 먹지 못하는 여행을 동정해올지 모른다. 먼저 전하는 안부 문자에 떠날 수 있게 해준 배려에 곁을 떠난 자유를 어떻게 섞어 보낼 수 있을지 행복한 고민도 있다. 다음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애교나 행복감을 섞어야 할지 빼야 할지도 생각거리다. 즐거움도 보람도 내가 느끼니 이번 여행의 책임은 오롯한 나의 몫일 것이다. 여행은 내가 나를 돌보아야 한다. 독립심도 키워질 것이다.

 삶의 종착점은 죽음이란 걸 알게 되었을 무렵은 삶에서는 멀어지고 죽음은 닥쳐있는 때라는 걸 애써 외면하거나 아둔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행을 목적지에 닿는 것이 아니라 여정, 혹은 길 위의 경험이라고 해석하면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삶이라는 여행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풀이해야 할 것이다. 목적지만큼 가는 여정에도 비중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삶도 없다는 말을 겪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한 가지만 바라보기, 쉬기 같은 단순함 속에 길이 있을까. 길이 있다고 해서 떠나와 있다. 어느 순간부터 죽으려고 사는 게 아닐까, 죽음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질 때가 많았다. 허탈한 생에서 얼른 빠져나오려 최선을 다해 달려보자는 마음으로 더 나를 채찍질했다. 도대체 왜 그리 열심히 사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 앞에서 목표를 빨리 달성하려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지 몰라 더 빨리 달렸다.

 비수기라 한적한 리조트 뒤로 난 산책길에는 따스한 기운을 품고 속삭이는 햇살, 녹아 흐르는 물소리를 내는 계곡,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나뭇가지와 나뭇잎, 수명을 다해 비로소 누운 커다란 나무들 등 다양한 모습이 시선을 잡는다. 생명을 뿜어 봄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보기, 감각하기, 느끼기. 베풀어주고 가르쳐주는 자연의 혜택을 오롯이 받는다. 자연은 계절이 간절기라서 쉬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여기는? 별유천지(別有天地) 비인간.’ 사전의 정의를 넘어서 여행의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내 방이다. 글쓰기가 잘 되었느냐고 묻고 싶은가? 완성도를 물어보시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제 첫걸음인데 잠을 잔들 어떻고 꿈을 꾼들 어떠리. 시작이 반이라지 않던가. 펼쳐놓은 책은 넘어갈 줄 모르고, 슬로프의 녹다 만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상급 코스의 스키어가 된 것을.

 같이 떠나온 그녀? 산책한 이후로 각방으로 흩어져 못 만난 지 5시간이 지났다. 같이 온 여행 중이지만 또 다른 글 여행 중이어서 다른 길을 걷고 있을 테니 인연이라면 주방이나 화장실쯤에서 어긋나듯 스치리. 아는 척할 마음이 있다면 손도 잡으리. 어깨도 겨누리. 서로의 눈물을 알아차리리. 또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리. 앞으로 얼마나 인연이 되어줄까. 이런 여행이라면.


<<수필문학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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