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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젊음이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벌이 아니다(한국산문 2012년9월호)    
글쓴이 : 최화경    12-09-02 14:54    조회 : 5,931
너희 젊음이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벌이 아니다
 
 
 
우리 정서와 맞지 않던 미성년자와 노인의 사랑을 그린 영화 <로리타>를 연상하고 외면한 사람이라면 연령을 초월한 사랑에 대한 긍정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이 영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해이가 부른 참상을 통해 사유의 여지를 제공하고 반전과 긴박감을 이끌어 낸 영화 박범신 원작, 정지우 감독의 <은교>가 그 것이다.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터치, 그러면서도 영화적 볼거리까지 갖춘 모처럼 괜찮은 영화를 만난 듯 했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성적쾌락만을 쫓는 저급한 수준으로 내몰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쾌락과 동시에 자기성찰의 계기까지 만들어 주는 영화, '모럴 해저드'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해 주는 이 영화의 힘은 수준 있는 원작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비교적 흥행몰이에 성공한 이 영화로 인해 원작까지 요즘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책과는 구성을 달리하여 전개시킨 이 영화는 마치 나중에 밝혀질 서지우의 정체성에 대한 복선인 듯 지우의 출판기념 사인회를 첫 장면으로 보여준다. 70대의 노시인 이적요와 그의 제자 서지우, 그리고 적요의 집에 드나들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고생 은교. 셋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스승에 대한 공경이 지극했지만 소질이 없었던 제자에게 스승이 대신 글을 써 주면서부터 시작된 스승과 제자의 불편한 관계는 제자가 마침내 스승의 작품을 훔쳐서 상까지 거머쥐면서 완전히 뒤틀려진다.
스승이 처음 잘못을 저질렀기에 제자는 양심의 가책도 없이 성공을 누리며 점점 탐욕의 늪으로 빠져든다. 스승의 도덕적 약점을 빌미로 악을 계속 합리화시키며 괴물로 변해가는 제자에 대한 스승의 때 늦은 단죄. 결국 두 사람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가는 반복적인 죄의 굴레는 이 둘 사이를 오가는 미성년자인 은교에 대한 사랑의 각축에 의해 두 사람 사이에서 더욱 단단하게 얽혀진다.
 
 
이 작품에서 작가 박범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들에게 일어날 수 있음직한 무단 발췌나 후속 히트작에 대한 작가적 고뇌라는 소재의 구성을 배경으로 깔고 작가 자신의 연령층에 해당하는 노인에게도 존재하는 내밀한 성적 갈망을 전경으로 살렸다. 주인공인 노시인 적요는 작가였기에 은교에 대한 사랑을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 속에서 마음껏 표현한다. 여기엔 어떤 비난도 방해도 존재할 수 없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은교에 대한 젊은 지우와의 사랑보다 노인인 적요와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이 영화는 우리들의 사랑에 대한 나이의 편견을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성애에 대한 갈망이 나이를 떠나 모두에게 존재함을 보여준다.
 
 
원작에선 은교를 다소 성적으로 개방된 여학생으로 그렸지만 영화에서 그녀는 사랑에 결핍된 그저 외로운 여학생일 뿐이다. 은교를 차마 범할 수 없었던 적요의 진심어린 사랑과 물리적 나이차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지우가 오직 젊음 하나만을 무기로 적요의 집에서 그녀와 사랑도 없는 격렬한 유희를 벌이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모두 지우의 적이 된다. 작품도 사랑도 모두 유린당한 늙은 스승이 관음증 환자처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들의 성애를 엿보며 분노하는 것은 적요가 아니라 이미 그 나이로 감정이입 되어진 관객이다. 미성년자인 건 마찬가지인데 젊은 지우는 괜찮고 늙은 적요는 안된단 말인가. 이때부터 관객들은 부도덕한 지우를 괘씸해하며 비록 금지된 사랑이긴 하지만 늙고 힘없는 적요를 응원하게 된다.
 
 
미성년자와 노인 간의 사랑을 담은 소설을 영화화 했을 때 소설보다 더 많이 안게 될 시각적인 부담을 덜기위해 이 영화에서 정지우 감독이 택한 안전장치가 있다. 미성년자를 사랑하는 노인에 대한 관객들의 정서적 거부감을 의식한 듯 젊은 배우(노시인 이적요분-박해일)를 처음부터 노역으로 특수 분장한 점이다. 소설 속 장면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실제 70대의 배우와 어린 여배우와의 성애는 우리 정서상 거부감을 줄 것이 뻔하다. 이 장치가 미성년자를 상대로 음욕을 품는 적요의 부도덕함을 희석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중반부로 치달을수록 박해일의 연기가 점점 자연스러워지면서 이 영화의 몰입도도 점층된다.
자신을 죽이려한 적요의 소행을 알게 된 지우가 흥분하여 운전부주의로 사망했어도 이미 적요에게 감정이입이 된 관객은 적요를 나무라기보단 지우의 죽음을 필연으로 여기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가 성공했단 증거이다. 이쯤에선 지우 자신이 결코 원하지도 않았던 대필사건의 시작을 스승이 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관객은 이미 없을지 모른다. 금단의 사랑을 넘본 늙고 추악한 스승의 부도덕성이 글을 훔친 지우의 행위에 어쩔 수 없이 면죄부를 주도록 발목이 잡히는 것 때문에 관객은 오히려 안타깝다. 이렇게 아이러니 하게도 영화의 무서운 흡인력이 적요가 시작한 부도덕한 행위를 관객들로 하여금 간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적요는 지우의 사인이 운전 부주의였던 것을 모른다. 은교에게 자신이 지우를 죽였다고 고백한 후 죄의식의 감방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술로 연명하는 장면 또한 적요가 관객의 동정심을 얻기에 충분하다. 반성 없이 합리화만 해대던 지우보단 적절한 절제와 노련함으로 사태를 정리해가는 적요가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반송장이 다 되어버린 적요에게 와서 ≪은교≫는 할아버지 작품이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장면은 후반의 절정을 잘 마무리 지어준다. 은교가 만일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났다면 성난 관객들은 지우의 죽음만으로도 성이 안찼을지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어색했던 초반 박해일(이적요 분)의 지나친 노인적 연기와 발성에 인내심을 발휘하길 잘 했다는 걸 알게 된다. 초반의 미숙함을 상쇄하고도 남는 감정이입을 끌어낸 데는 각본 외에 박해일의 연기가 한 몫 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달여 만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했다. 밤에만 썼기에 밤에 읽어 달라는 특별주문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가 이 작품을 얼마나 감성적으로 터치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쩌면 작가 박범신이 정말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여고생 은교와 노시인 적요와의 과감한 육체적 사랑이었을지 모른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노년기에 젊은 여인과 노인의 사랑에 대한 <잠자는 미녀>와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등의 작품들을 썼다고 한다. 우리가 외면한다고 해서 금기시 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박범신도 노년기인 이즈음 그런 작품을 하나쯤 쓰고 싶었을 게다. 다만 그는 도덕적 비난을 감안하여 '작품 속에서의 사랑'이라는 방법을 통해 은교와의 성행위를 적요의 상상 속 소설의 내용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처리한 것 같다.
최근 원조교제 등으로 우리나라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정서상 미성년자 은교를 화간(서로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성행위)이라 해서 묵인하고 지우와 버젓이 성행위를 전개시킨 것에 대한 비난을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소재가 처음부터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한 사회적 약자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노인의 사랑도 분명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영화가 사회에 미칠 역기능적 파장을 생각할 때 부정적 논란만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영화가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너희 젊음이 너희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다."
(T. Roethke)
 
지우의 '이상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대중에게 했던 적요의 이 말은 노인의 사랑을 추하게만 비하시키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외치는 작가의 절규이다. 이 영화를 보았던 관객들의 입을 통해 이 구절은 아마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회자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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