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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에 눈이 멀어    
글쓴이 : 노정애    17-09-05 18:38    조회 : 4,414

빵에 눈이 멀어

 

노 정 애

 

대학동기들을 20여년 만에 만났다.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한 나는 결혼하면서 서울에 살게 되었고 다른 동기들도 경기도나 경남, 부산에서 살아 중간지점인 대전에서 뭉쳤다. 20여년의 시간이 타고 간 KTX 열차만큼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았다. 모두 건강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내 글이 실린 잡지를 한 권씩 선물했다. 내가 수필을 쓴다는 것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했어?” 우리는 공대생이였고 글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당연한 반응이리라.

빵에 눈이 멀어서가끔 글을 어떻게 쓰게 되었냐는 질문에 대답은 늘 한결 같다. 그날의 빵 덕분이라고.

내가 신혼살림을 시작한곳은 장충동이었다. 그곳에서 두 딸을 놓고 15년 가까이 살았다. 중구에서는 매년 10월이면 구에서 주최하는 주부 백일장과 어린이 그림 그리기 및 글짓기 대회가 한옥마을에서 열렸다.

오래 전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 딸이 친구들과 이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평일에 여는 행사라 수업을 마친 아이를 학부형이 인솔해서 함께 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자모들과 모처럼 밀린 수다를 맘껏 떨 생각에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들떠 있었다. 아이의 대회용 도화지를 받아 줄 때 그 옆에 마련된 주부 백일장 접수대에서 몇몇 분들이 다양한 빵이 담긴 커다란 봉지와 음료수를 받는 것을 보았다. 오후시간이라 출출하던 차에 함께 온 엄마들과 접수 후 빵 한 봉지씩 받았다. 물론 원고지와 필기구도 받았지만, 평소에 일기도 잘 쓰지 않고 편지조차 연애시절 남편에게 보낸 달랑 몇 장이 전부인 난 공짜 빵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과 읽는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산문 쓰기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가을 햇살은 따뜻하고 배는 든든해져 오랜만에 여유로운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부 백일장 접수대를 보니 글을 써서 제출하는 사람들에게 은박돗자리 하나씩을 주고 있었다. 그때서야 그 날의 소재를 봤다. ‘반지’, ‘처음 받은 편지’, ‘설거지’, ‘북녘 하늘. 반지에 대한 특별한 추억도 없으며 처음 받은 편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고, 태생이 부산인 내게 북녘하늘은 통한의 삶과 향수의 대상으로만 느껴졌다. 단지 설거지로 글을 쓴다면 몇 달 전 부산 병원에 입원하신 친정아버지를 뵙고 와서 울고 있는 나를 위해 딸들이 해준 고마운 설거지가 생각났다.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원고지에 글을 썼다. 입원 중이신 아버지 생각에 눈물 몇 방울을 원고지에 시린 아픔의 얼룩으로 남긴 체 글을 제출하면서 은박 돗자리부터 챙겼다. 공짜 좋아하는 나는 빵과 돗자리도 받고 글을 쓰고 나니 슬픔을 던 듯 조금 가벼워진 마음까지 들어 횡재한 기분으로 귀가했다.

몇 주 후 무슨 내용을 썼는지 가물가물해질 때쯤 가작 입선 이라며 시상식에 참석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운이 좋아 그런 상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그 다음 해에도 아이들 따라가 공짜 떡 한 봉지를 받고 참가해 가작 상을 받게 되자 나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희망으로 몇 년 뒤 백화점 문화센터에 등록을 하면서 본격적인 수필 쓰기를 시작했다. 부끄러운 글로 몇 해 뒤에는 등단도 했다. 수필 창작에 몸 담은지 올해로 10년이 된다. 그 동안 바쁜 일상과 집안 일이 힘들어 몇 달 혹은 1년씩 쉬기도 했었다.

읽기만을 즐겼던 나는 글 속에 빠져 시간을 도둑맞는 것이 좋았다. 관심분야 중심으로 글의 흐름만을 따라 읽거나 스릴러 소설로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가슴 따뜻하게 하는 좋은 글에서 감동 받으면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 삶에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독서에 만족하고 있었다. 문학이 세상을, 사회를, 나를 바꾸는 힘을 가졌음을 알지 못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상실을 받아들였고 시부모님을 보내고 허허로운 마음을 쓰면서 치유와 회복도 가능하게 했다. 소중한 추억과 잊혔던 시간들도 글을 쓰면 되살아나서 지나간 시간을 담을 수 있었다. 사물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력과 세상을 관조하는 방법도 알게 했으며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다듬는 방법도 배웠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한다.

항상 글쓰기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공들여서 쓴 글이 날카로운 혹평으로 돌아올 때면 재주 없는 나를 탓하며 며칠씩 우울함에 빠져 그날의 빵 탓도 했다. 좋은 글을 볼 때면 부러움에 시샘하면서 모자란 능력에 자학하듯 절필을 생각하기도 했다. 글이 좋은 사람이 형편없는 인격의 소유자임을 알았을 때의 실망감에 한동안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추억과 집안을 소재로 쓴 글들 때문에 부부싸움도 했었다. 그러나 미움을 덜고,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방법도 배웠기에 내 인생의 멘토 같은 글쓰기를 놓을 수는 없었다.

많이 부족한 내 글을 보면 부끄러워진다. 옷을 모두 벗고 나를 보여주어야만 진실한 글쓰기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 앞에 난 항상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계속 연수하면서 깊이 사색하고, 많이 보며 열심히 읽고 열정적으로 쓴다면 언젠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공짜 빵 한 봉지에 잠시 횡재한 기분이 되었지만 글을 쓰면 오랫동안 내 삶은 더 풍요롭고 든든해질 것이다.

대학동기들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에 문자가 왔다 부산에 사는 동기가 내려가는 기차에서 글을 읽고 보내준 것이다. “글이 참 좋네, 네가 열심히 산 것도 글 속에 다 보이고. 네 덕에 오랜만에 수필을 읽었다. 이 해 가기 전에 또 만나자. 오늘 즐거웠어.” 그냥 인사로 건네는 글이 참 좋네.’라는 말에 언젠가는 부끄럽지 않은 좋은 글 하나쯤은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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