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북방의 장미를 만나다
노정애
10월 27일 늦은 밤 치앙마이(Chiang Mai)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4개월 전에 예약한 여행이다. 기다리는 내내 설레었다. 아마도 여행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리라. 어디를 가느냐? 만큼이나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해진 나이가 되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반이었던 학부형 몇 명과 운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나 함께 땀 흘렸던 사람들, 또래 아이를 키우는 우리 여섯은 친구가 되어 모임을 만들었다. 8살 꼬마들은 25살 성인이 되었다. 지금은 함께 운동하지는 않아도 만나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몇 년에 한 번씩 여행을 한다. 마음 맞는 친구들이라 편안하다.
태국은 우리나라보다 시차가 늦어서 시계를 새벽 1시에서 저녁 11시로 맞췄다. 지난 10월 13일 푸미폰 아둔아댓 태국 국왕의 서거로 공항에도 국왕의 사진위에 검은 휘장이 걸려있다. 88세 나이로 서거했는데 사진은 젊고 멋진 모습이다. 공항을 벗어나자 열대야 같은 더위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시원하다. 가이드는 다행히 집중 애도기간이 끝나서 좀 덜 신경 쓰인다며 국왕의 장례는 1년 후에 치러진다고 한다. 패키지여행이라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텔로 가며 보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인데 거리의 크고 작은 음식점과 술집들, 노점에 펼쳐진 포장마차 같은 가게가 불을 밝혀두고 영업 중이었다.
방콕에서 700Km 북쪽으로 가면 차오프라야 강의 지류인 핑강 기슭, 해발 300m의 고산지대에 치앙(왕국)마이(새롭다)가 있다. 그래서 방콕보다 더 시원하게 느껴졌나 보다. 태국 북부에서 가장 큰 이 도시는 ‘북방의 장미’라고 불리는 매력적인 곳이다. 한 달 채류비 평균 740달러,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여행지,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24시간 깨어있다. 미국 CNN에서 지난 6월, 디지털 유목민(시간과 장소에 대한 구애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10개 도시를 선정했다. 도시 치안, 날씨, 영어 수준, 와이파이, 생활비등을 고려했는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곳이 치앙마이였다. 그래서 이곳은 매년 1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고 배낭 여행자들에게 꿈의 여행지다.
도로 옆에는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성곽의 일부와 이를 둘러싼 해자(수로)가 남아 있어 옛 고대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1296년 란나 왕국의 망라이왕이 가로 2Km, 세로 1.6Km에 걸쳐 지은 도시 성곽중 일부다. 해자로 둘러싸인 성벽을 건축해서 사원과 왕, 귀족을 지켰던 잔해라고 한다. 성곽이 마주한 곳에 탐앤탐스라는 대형 커피숍이 옛 유적지처럼 버티고 있어 혼자 피식 웃었다. 도시 전체가 유적지 같은데 현재와 과거의 조화가 눈길을 끌었다.
왓 프라탓 도이 수텝(Wat Phra that Doi Suthep)사원, 1383년 치앙마이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 가장 놓은 도이수텝 정상(해발 1000m)에 지어진 유서 깊은 사원이다. 도이는 신을 수텝은 산을 뜻한다. 태국에서 가장 전망 좋은 사원중 하나다. 300개의 계단을 이용하거나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 된다. 조명을 받아 더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빛 사원이 웅장하게 서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간다. 전부 다른 표정과 미소 지은 모습의 불상들이 사원내 곳곳에 있고 동물상들도 많다. 부처의 사리를 운반하던 하얀 코끼리가 산에 올라 탑을 세 바퀴 돌고 쓰러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곳은 당시 코끼리가 운반해온 사리가 불탑에 안치되어 있다고 했다. 사원에서 내려다보는 치앙마이의 야경이 환상적이다. 사방으로 뻗어있는 도로를 따라 밝혀진 가로등불빛이 줄지어있고 그 주변에 빛들은 별들처럼 반짝인다.
왓 쩨디 루앙(Wat Che야 Luang) 사원은 유네스코 지정문화재이며 14세기 말에 90미터로 건립되었으나 1545년 지진으로 상층부가 약 30미터 정도 무너졌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웅장한 치앙마이 대표 사원중 하나다. 이곳에 감춰두었던 에메랄드 불상이 지진으로 세상에 나와서 미얀마와 수많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단다. 사원 옆에 있는 큰 나무가 두 그루가 더 신기했다. 밤하늘 속으로 하염없이 뻗어있는 것처럼 보여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그 속에 달도 있었다.
214Km 떨어진 치앙라이로 가기위해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매콩강을 사이에 두고 태국, 미안마, 라오스 3개국의 국경을 이루는 ‘골드트라이앵글’, 과거 이곳은 전 세계 마약의 80%가 생산되었는데 모두 금으로 거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부처님이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의 커다란 황금 불상이다. 태국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왕실에서 세운 것이다. 양귀비 농장은 커피나 차 농장으로 대부분 바뀌었다. 강력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음지에서는 여전히 마약이 생산되고 있단다. 국경지역임을 보여주는 지도가 곳곳에 안내판처럼 붙어있다. 롱테일보트를 타고 황토색인 메콩강을 따라가는데 멀리 황금색 둥근 돔 형태의 건물이 보인다. 중국인들이 만든 카지노란다. 중국자본이 이곳까지 흘러들었다는 게 왠지 씁쓸했다.
20여분 가면 국경 없이 라오스 ‘돈사오섬’에 도착한다. 선착장에 내리는 순간 라오스라는 것을 알게 한 것은 1달러를 달라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몰려들어서다. 그저 웃으며 손을 벌린다. 돌쯤 되어 보이는 어린 동생을 앞으로 메고 있는 여자아이에게 일행들이 돈을 주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 아이를 부러운 듯 쳐다보는 다른 아이들의 눈빛, 아이들의 눈은 왜 그리도 빛나고 맑은지. 선착장 옆에는 우리나라 60~70년대의 시장을 옮겨놓은 것 같은 상점들이 즐비하다. 모조품 가방들과 다양한 제품들, 조잡한 물건들이 넘쳐났다. 아이들은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 까지 따라다녔다. 웃고 떠들며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행복하게 보이니 이 무슨 조화인지.
태국과 미안마의 국경지대인 메사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커다란 시장 ‘타킬렉’이 있다. 간단한 절차로 국경을 통과해 미얀마로 들어간다. 쏭테우(짐칸에 천막을 씌우고 의자를 둔 작은 트럭)를 타고 츠위다껑탑에 갔다. 미얀마 양곤에 98M 높이의 황금탑인 쉐다고 파고다(Shwedagon Paya)를 모방해서 만든 황금탑이다.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역에 오직 황금탑만 솟아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는다. 바닥도 내리쬐는 햇볕도 뜨겁다. 커다란 우산을 씌워주며 10대 전후의 남녀 아이들이 다가온다. 온종일 관광객에게 우산을 씌워 주고 팁을 받는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삶을 살까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겁다. 탑을 한 바퀴 돌며 아이들과 천천히 데이트를 한다. 아이들이 이곳이 아니라 학교에 있기를 탑을 향해 마음속으로 빌었다.
미안마쪽 타킬렉시장에서 자유 시간을 가졌다. 먹거리와 온갖 짝퉁물건들, 담배도 짝퉁이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국경을 건너 학교, 시장, 회사를 간다. 태국이 경제가 좋아서 아이들을 유학 보내고 태국어를 가르친다. 장사꾼들은 양쪽을 드나들며 물건을 사고판다. 그래서 이곳은 늘 사람들이 많고 활기가 넘친다. 태국은 자동차가 우리와 반대방향인 왼쪽으로 다니는데 미얀마는 오른쪽으로 다닌다. 그런데 차들은 보니 핸들이 오른쪽에 있는 게 많았다. 중고차를 수입해 써서란다. 나 같이 방향감각이 둔한 사람은 절대 운전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미얀마는 태국보다 시차가 30분 더 늦다. 고작 짧은 다리하나가 국경인데 알수록 신기한 게 많은 곳이다.
멀리서 흰 눈이 덮인 듯한 사원이 보인다. 백색사원 왓 롱쿤(WAT RONG KHUN)이다. 태국 최고의 회화가인 슬럼차이교수 개인의 사재로 1996년부터 50년 계획으로 짓고 있는 순백의 사원이다. 부처의 지혜를 흰색으로 표현한 사원 곳곳에는 거울을 붙여서 백색과 은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입구를 따라 들어가는 다리 아래쪽에 손들의 절규와 지옥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있고 그 다리를 지나 극락세계의 사원으로 가도록 만들어졌다. 파란 하늘과 순백의 조화, 연못에 한가로이 유영하는 물고기 때의 여유로움까지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사원 곳곳에 지금도 조형물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이하게 화장실만 금색으로 만들었다.
소수민족마을로 이동해서 목에 링을 감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카렌족’을 만났다. 카렌족은 약 35만 명으로 태국내 최대인구를 자랑하는 고산족이다. 관광객에게 사진을 찍어준다고 포즈를 취하며 그녀들이 건네준 링 몇 개만 있는 반쪽자리 목걸이를 거는 순간 무거워서 깜짝 놀랐다. 그녀들이 하고 있는 20줄 이상인 링의 무게를 가늠하니 내 목이 뻐근하다. 링 목걸이를 해서 목이 길어진 게 아니라 어깨가 내려앉은 것이며 이것을 빼면 목을 가누지 못해서 평생을 하고 있어야한단다. 관광객들에게 미소 짓는 모습이 아름다운 여인들인데 숙명처럼 걸려있는 무거운 목걸이가 내내 마음이 쓰였다. 옆집 마을 가듯 라오스와 미얀마를 넘나들고 카렌족을 만나니 쫓기듯 다닌 일정에 아쉬움이 남았다.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어간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서니 어제와는 다른 분위기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여행 내내 어디에서도 음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학교는 일주일 휴교령이 내렸었고 클럽이나 업소들은 한 달간 휴업에 들어갔다. 옷 가게의 마네킹에게 입혀둔 옷들은 모두 검은색이고 현지인들도 검거나 흰 옷만 입었으며 거리 곳곳에 커다란 국왕의 사진위에 검은 휘장이 쳐져있었다. 거리의 음식점이나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주점에서도 음악은 없었다. 나라 전체가 국상 중이었다. 날짜를 보니 10월 30일, 70년간 태국을 통치했던 국왕 서거 17일째다. 매년 경제가 성장하고 있고 실업률이 1% 미만이라는 게 우리나라와 비교되어 샘이날 지경인데 왕의 서거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그들이 부러워지는 것은 왜인지.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에서 친구들과 다음 여행지를 계획하며 몇 년 후의 일인데 벌써 설렌다고 한참을 웃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곽재구의 포구기행》 중에서 ‘길 위에 시간이 펼쳐지고 시간 속으로 길들이 이어진다. 눈앞에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이 행복하다.’는 글이 여행 내내 나를 따라 다녔다. 북방의 장미를 만나는 시간이 짧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좋은 친구들과 하루를 시작하며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