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유시경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mamy386@hanmail.net
* 홈페이지 :
  부끄럽지 않아요    
글쓴이 : 유시경    17-12-17 01:27    조회 : 5,545

 부끄럽지 않아요

 화이트, 위스퍼, 한초랑, 엘리스, 릴리안, 한결, 귀애랑….

 세상에 이처럼 고결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이름이 또 있을까.

 가난한 소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월경(月經)은 반갑지 않은 친구이다. ‘있는 집’과 ‘없는 집’이 확연히 갈리는 날이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다. 이는 남자도 모르고 선생님도 모르며 남자선생님은 더더욱 모른다. 남자와 선생님이 모르니 성숙한 여학생들은 가히 미칠 지경이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사별한 나는 생리현상에 대해 그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도, 자취생 언니에게도 그것은 하나의 부끄러움이요 나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집안에는 금지옥엽 이대독자 종손인 오빠와 아버지가 버티고 있었으며 한 칸짜리 방도 어떤 때는 장남의 공간이 되곤 하였다. 외아들의 참고서와 문제집 조달도 힘든 형편에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나 오빠에게 생리대 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 이 학년, 한 여름날 학교에서 터진 월경은 엄마도 언니도 없는 소녀를 당황케 하였다. 수업시간마다 선생님이 호명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면 봇물 터지듯(요즘 유행하는 말로 ‘굴을 낳는’ 느낌이라는데) 아랫도리가 흥건해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교과 선생님들의 질문에 때론 아는 답도 말하지 못하고 쩔쩔 매었다. 아니 쏟아지는 느낌과 더불어 머릿속은 피범벅이 된 것처럼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있는 집 아이가 가장 부러웠던 건 칼날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새로운 참고서도, 비행장 다니는 아버지 덕에 매일 싸오는 부잣집 아이의 햄 소시지 반찬도 아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그 애의 소중한 용돈, 그 애의 가방에 비치되어 있는 ‘보송보송한 생리대 세 개’였다. 고백건대 내 학창 시절 동안 이처럼 처참하고 자멸감이 들었던 적이 없다.

 학교 매점에서는 생리대를 낱개로 판매하고 있었다. 한 개에 얼마였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그것을 사기 위해 아이들에게 돈을 꾸러 다녔고, 뒷자락 느낌이 좋지 않다고 여겨질 때마다 구걸하듯이 그것을 빌려 썼다. 하지만 월경 때마다 친구들에게 생리대를 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교 의무실에서 손쉽게 얻어다 쓸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70년대의 생리대는 그다지 질이 훌륭하지 못했다. 젤리처럼 응고되는 물질도 첨가하지 않았다. 그것은 병원에서 소독할 때 쓰는 거즈나 탈지면보다도 약해빠졌으며 하다못해 어떤 것은 화장지를 몇 겹 겹쳐놓은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로 푸석거렸다. 도시락을 나눠먹는 것보다 힘든, 그것을 꺼내 주는 일은 서로에게 짜증나고 탐탁지 않은 불문율이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체육시간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여학교 체육복은 흰색바지에 녹색 티셔츠였다. 새하얀 바지를 입고 남자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행진을 한다. 때론 대형 체육관에서 두 다리를 올렸다 내리는 스트레칭도 한다. 운동장을 돌고 토끼뜀을 한다. 철봉 매달리기, 이어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높이뛰기 멀리뛰기, 피구와 오자미, 운동회를 한다. 더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일은 흰색 체육복 바지를 입고 먼 저수지까지 소풍을 갔다 온다는 것이다. 한번은 그날이 장날인 어떤 아이가 대담하게도 교복치마를 입고 학교에 나와 선생님한테 호되게 야단맞은 적이 있었다.

 소풍 가고 수학여행 가는 날은 왜 그리도 터지는 아이들이 많이 생기는가. 나 또한 축제에 민감해서 장장 두어 시간 행군을 하고 오면 체육복 바지가 영 불안해지는 거였다. 삼삼오오 집으로 돌아가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저만치서 엉덩이에 손을 대고 엉거주춤 걸어가는 아이들이 보이곤 했다.

 누가 여학생에게 흰색 바지를 입히는가. 이제 와 생각하건대, 그러한 발상은 어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여학생에게 흰색 운동복을 입히는 일은 단연코 삼가야 할 일이다. 가여운 소녀에게 있어 흰색바지 착용은 ‘적과의 동침’과 다르지 않다.

 어느 날, 딸과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의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저어야 했다. “엄마, 지금도 신발깔창으로 밑을 받치는 아이들이 있어.” 당신은 이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었다. 지금은 내가 겪었던 1970년대가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순면처럼 속살처럼 하얗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뼛속까지 순량하고 소박해서 도무지 만질 수조차 없는 이름의 홍수에 묻혀 살고 있다. 집안에 여자 셋인 나는 한때 생리대 값을 감당 못해, 대형마트의 반짝 할인코너에서 물건을 사다 쓰곤 하였지만 그것의 품질에 대해선 전혀 무지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한 뭉치 가져오면, 내 아이들은 이것은 ‘위험한 것’ 혹은 ‘내가 안 쓰는 것’이라며 포장을 들여다보곤 뜯어보지도 않는 거였다. 그 이유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일.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민감하다. 월경을 통한 모든 생체리듬은 소녀의 생명력과도 같다. 여성의 생리현상에 관한 발언은 전 생애를 통한 그녀의 합리적 권리이며 자유인 것이다.

 온종일 학교에서 생활하는, 발육이 왕성한 여학생들이 천으로 그것을 만들어 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을 만들려면 또 다른 ‘깨끗한’ 피륙과 그것을 소독할 수 있는 안전한 검증법이 마련돼야 할뿐더러, 이는 ‘선택’이라는 명분으로 어린 소녀들로 하여금 억압받는 일을 생산하고 재배치하라는 주문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천사 같은 물건의 ‘제목’만큼이나 그것이 여성을 안전하게 감싸주는지는 본인 아니고서야 누구도 깨닫지 못할 일이다. 생리대에 날개를 다는 게 의미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날개를 길게 달아서, 더 크게 달아서 가격이 올라가야 하는가. 정말 엄청나서,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날에는 가벼운 날개도 천사를 구름 위로 올려주지는 못한다. 생리대에 유해성분이라니, 발암물질이라니, 신발 깔창이라니, 기가 막히고 미안하구나.

 지금, 내 딸들의 휴지통이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한 것에 축복과 안도의 숨을 내쉬어야 할까. 깨끗하고 건강하길 원하는 아이들의 행위에 뭐라 꾸짖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적어도 엄마인 나는, 아직 내가 낳은 아이들 곁에 있고 아낌없이 갈아치우는 저들의 방식에 대리만족을 할 뿐이다.

 나라님께 간청하건대 나의 소녀시절을 답습케 하지 말아 주시길, 학교 양호실마다 충분한 양의 위생용품을 비치해 주시길, 가격논쟁은 고사하고 할 수만 있다면 여중고교생들에게 이것만큼은 무상으로 제공해주시길. 그리하여 깔창이라는 용어가 그녀의 소중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기를.

 -2017 ≪현대수필≫ 겨울호

 


 
   

유시경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37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2588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4802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