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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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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전자전    
글쓴이 : 김명희    24-07-03 22:45    조회 : 3,103

                부전자전

                                                              김 명희

 

 회식이 잦아지던 12월, 연말의 밤이었다. 늦은 술자리를 마치고 들어온 남편의 볼이 차갑게 얼어 있었다. 현관을 여는 남편의 등 뒤로 차가운 바람이 확 밀려들어왔다 .집안의 온기가 뒤로 멈칫 물러서며 술에 취해 흔들거리는 남편을 따라 일렁였다. 이 추운 날 일찍 좀 다니지 하는 짜증이 올라왔다. 외투를 받아 걸려고 다가서는데 남편의 손목에 조그만 비닐봉지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래요?”

 “어... 오는데 골목에 웬 아지매가 앉아서 자꾸 삼천원에 떨이 하라고 그러기에...”

 “뭔데요? 에고, 한주먹도 안되겠구만... ” ‘

 구시렁거리며 들여다보니 봉지 속에는 살짝 얼은 듯한, 깐 쪽파 열댓 가닥이 담겨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쪽문 앞에서 몇 번 보았던 쪽파를 팔던 아줌마 생각이 났다. 성당 옆 작은 벤치에 깐 쪽파를 몇 개씩 놓고 사람이 지나갈 때 마다 그녀는 ‘쪽파 사세요.’ 라는 말을 했다. 쪽파를 사려고 한번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깐 쪽파 서너 가닥을 놓고 천원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사기를 치려는 건가 물건의 시세를 모르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냥 지나쳐 버렸었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외부온도는 영하 8도라곤 하는데 바람이 불어 냉기에 온몸이 떨릴 정도였다. 이 시간까지 그 골목에 앉아 있었다고? 라는 생각이 들자 오백원어치도 안되는 걸 삼천원이나 주고 샀냐고 하는 잔소리가 튀어나오다 얼른 숨어버렸다.

 다음날부터 한동안 밖으로 나갈 때면 그녀가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골목에서 쪽파사세요라고 외치고 있을 때가 많았고, 가끔 아파트 단지 안으로도 들어와 쪽파사세요라고 소리를 내기도 했다. 몇 번 살펴보니 그녀의 상태가 약간 이상했다. 늘 같은 옷에 같은 말만 반복했다. 다 해도 한단밖에 되지 않을 정도의 양을 벤치위에 몇 가닥씩 모아 죽 늘어놓고 밤에도 낮에도 앉아있었다. 그녀는 왜 저기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시켜서 나온 걸까? 아님 몇 천원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까? 어디서 나온 것일지 모르는 파를 비싼 값에 사기는 싫어 말을 걸지도 못하면서 나는 혼자 상상을 했다. 몇 번 그녀를 지켜보고서 내린 결론은 정상인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저걸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복지단체? 경찰?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들이 나에게 쏟아낼 질문들과 혹 나의 착각이라면 여러 사람들에게 괜한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나를 엄습했다. 몇 날을 고민하는 중에 그녀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며칠 만인지 차로 이동하다가 아파트 단지의 저쪽 끝에서 그녀를 설핏 보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잊어갔다.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갈 무렵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오겠다던 큰아이가 밤늦게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아직은 영하의 온도인데 늦도록 오지 않는 아이에게 왜 이리 늦느냐는 전화를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참고 있던 중이었다. 들어서는 아이의 장갑 낀 손목에 달랑달랑 매달린 검은 봉지. 거기에도 몇 가닥의 깐 쪽파가 들어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거기에 있었던가 보았다.

 “쓸데없이 길거리에서 이상한 거 사 오지 말라고 했지!”

 나는 잠시 남편을 쳐다보다 갈라진 목소리로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다.

 자기가 가진 온기를 조금 나누어 줄 줄을 아는 아빠와 그걸 빼닮은 아들. 부전자전이라더니 술을 좋아하는 것도 술을 잘 못해 한두 잔 하면 기분이 좋아 흔들흔들 하는 것도 닮은 부자지간이다. 나를 더 닮은 줄 알았더니 나랑은 또 다른가 보다.

 그 이후 그녀를 본 적이 없다. 장사가 안 되어 옮겨간 건지, 장사가 잘 되는 자리를 찾아 간 건지, 아니면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되게 일이 잘 된 것인지 궁금할 때도 있다. 그때 그래도 물어나 볼 것을 하는 생각을 한다. 괜한 오지랖이라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소리를 한번 듣더라도 확인을 해 보았으면 이런 마음이 안 들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 그냥 그 쪽파라도 한번 살 걸 그랬다. 그 추운 날 한번쯤 나도 떨이를 해 줄걸...

 그녀의 안위가 걱정스러운 것인지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은 것인지 가끔씩 빼내지 못한 가시가 있는 것처럼 목이 불편해 질 때가 있다. 남편은 요즘도 주섬주섬 비닐봉지를 내 놓곤 한다, 만두 몇 개나 군고구마일 때도 있고 시들시들해지고 있는 장미나 국화 몇 송이 일 때도 있다. 이쯤 되니 오지랖인지 소소한 쇼핑을 즐기는 남자인건지 싶다. 아들아이는 밤거리에서 난전 쇼핑을 안했으면 싶었다가, 조금씩 하는 건 괜찮겠지 생각도 했다가 괜스레 짜증이 솟았다. 나는 지난밤에 남편이 사들고 와 던져둔 맛밤을 와작 깨물었다. 식어서 말라가고 있는 밤이 딱딱하다.

 

 

                                                                  2019 창작산맥 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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