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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버 투어리즘(에세이스트 연간집 2023.11)    
글쓴이 : 김주선    24-08-18 18:08    조회 : 3,154

오버 투어리즘 / 김주선


 

  한적한 시골 마을에 대형 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한국에서 온 듯한 한패가 주차장에 내리자, 온 동네가 왁자지껄하다. 저들도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떠드는 한류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듣고 왔겠지. 패러글라이딩을 타던 중 돌풍을 만난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남한의 재벌 상속녀와 북한 장교의 러브스토리를 말이다. 남자 주인공은 호숫가 부교浮橋 위에서 피아노를 치고, 여주인공은 페리를 타고 부두로 들어오다가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드라마의 결말이기도 한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이 바로 이젤발트다. 1년에 한 번 휴가 때만 만나 장거리 연애하는 분단국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세계의 여심을 흔들었나 보다. 스위스의 브리엔츠 호숫가에 있는 이 지역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누구든 드라마에 대한 로맨틱한 환상을 가지고 방문했으리라. 인터라켄에서 여객선을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잠깐 들릴 수도 있고, 대중교통인 103번 버스를 타고 와 잠시 머물다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경관이야 말할 것도 없고, 스위스라면 어디든 안 예쁜 곳이 없을 정도로 그림 같다.

 

언젠가 종로에 있는 북촌 한옥마을에 갔을 때 느꼈던 분위기랄까. 떠들지 마라, (남의 집) 사진 찍지 마라, 쓰레기 버리지 마라. 가이드는 몇 가지 안내 사항을 일렀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시골 인심이 사나워졌다고 하듯이 이젤발트는 대놓고 고약하게 굴더란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동네에 사는 귀여운 꼬마 방해꾼이 배우 현빈이 피아노 쳤다는 부교 근처에서 수영하면서 자꾸 물을 튕기더란다. 이유인즉슨 자신들의 놀이터에서 사진을 못 찍게 훼방을 놓으려는 듯 보이더라고.

조용한 마을이 소란스러워지고 방문 차량으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불편을 겪기 시작하자, 이런 현상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주민들은 방문객이 썩 달갑지 않은 것이다. 인구 4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고 관광지도 아닌데 연 40만 명이 다녀간단다. 게다가 남의 나라에서 찍은 드라마 촬영장소라는 이유만으로 일부 상인을 제외하면 주민에게는 도움 되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피아노가 놓였던 부교 위에서 인증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해 방문하는 것인지라 마을의 경제효과는 미비하단 소리다. 오히려 꼬마 방해꾼처럼 자신들의 놀이공간과 삶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입소문을 탄 촬영지도 이런데 하물며 세계적인 관광 도시는 얼마나 심각할까. TV에서 지나치게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거부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종종 듣는다. 비단 유럽의 일부 도시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집주인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돈 되는 사업에 뛰어들다 보니 집값이 오르고 월세가 오르는 건 당연하다. 주거비 폭등으로 월세를 감당 못 한 현지인들이 주거지에서 쫓겨나고, 게다가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생활까지 불편해진다. 오버 투어리즘의 부작용에 따른 손해가 관광으로 얻은 이익을 넘어선다는 보고가 있다. 다른 지역으로 밀려난 주민들이 관광객을 혐오하는 일까지 발생한다니 걱정이다. 즐겁게 여행하다가 난데없는 날계란 세례를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 방역이 완화되자, 사람들은 마치 보복 관광이라도 하듯 너나 할 것 없이 여행을 떠난다. 내가 패키지여행으로 떠났던 지난 5월만 해도 중국인이 많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코로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면 그야말로 유럽은 하늘 문을 잠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탈리아 해안 마을 포르토피노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사진을 찍으면 벌금을 물린다. 셀카를 찍느라 너무 오래 머물다 보니 교통혼잡이 와 관광객과 현지인의 갈등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오래전부터 관광객을 줄이기 위해 분투한다고 들었다. 바다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물에 잠기는 것도 문제겠지만, 많은 주민이 소음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거주지를 떠난 상태다. 아름다운 물의 도시는 여행자들이 점령한 지 오래되어 물 반 사람 반이라고 말할 정도로 미어터진다. 위기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이란 말이 실감 날 정도다. 바퀴가 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면 소음이 발생한다고 벌금을 물리는 도시도 있다. 관광객보다 주민의 생활이 우선이란 이야기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환경과 재산, 문화재의 훼손을 막기 위해 각양각색의 대안을 내놓는 실정이다. 오버 투어리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가 어디 유럽뿐일까. 우리나라 제주도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등등 삶의 터전이 관광지가 되고 주거환경이 위협받는 사회문제는 이미 제기되어 왔다. 방송을 탄 가수 이효리의 집이 대표적이라 볼 수 있겠다.

 

 영화 겨울왕국의 배경이 된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처럼 스위스의 이젤발트도 어떻게 하면 관광객을 줄일까 고심할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마을 보호차원에서 제발 오지 말라고 일부 주민은 토로한다. 한류가 식지 않는 한, 동화 같은 작은 마을은 거인들로 북적일 테니 말이다. 마을에선 인원수를 제어하기 위해 주차장 예약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예약인원이 눈에 띄게 줄지 않는다고 한다. 부두 근처가 쓰레기로 어질러지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지자, 그다음에 내놓은 대안이 통행료였다. 뗏목을 잇대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만든 조그만 다리로 들어가는데 5프랑이다. 1M 정도의 폭에 T자형 다리 길이는 10M가 좀 넘을까 말까. 두어 명이 들어가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입구에서 기다려야 한다. 피아노가 놓여있던 자리일 뿐, 당연히 피아노는 없다. 5프랑이면 우리 돈 7천 원이 조금 넘지만, 굳이 기다렸다가 인증사진을 남길 정도로 매력 있는 다리는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유럽에 눌러앉고 싶지만 아서라 아름다운 풍경도 하루 이틀이지, 우리나라가 최고라고 나이 지긋한 동행자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오버 투어리즘 억제를 위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마저 조만간 관광세를 도입할 예정이라니 올 게 왔다는 생각이다. 다음번 여행은 남이 가니깐 나도 가는 여행보다 시골 농가에서 민박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몸소 체험하는 그린 투어리즘은 어떨까. 한달살이 체험행사도 요즘 인기라는데 그 또한 과잉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요즘은 동남아 관광시장도 포화상태라 물 들어왔을 때 노 젓자고 온 주민이 관광업에 뛰어들어 바가지요금으로 얼룩져 있다고 한다. 유럽과 달리 정부까지 나서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힘을 쏟는다고 하니 아직은 한 철 장사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물론 경제성장을 위해 발돋움하려는 일부 국가의 일이지만, 언젠가 그들에게도 이런 딜레마에 빠져 고민할 날이 오지 않을까.

 

에세이스트 연간집 <치자꽃 향기의 여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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