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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카, 그정도로 킬러가 될 수 없어( 한국산문 2024,5)    
글쓴이 : 국화리    24-09-13 19:21    조회 : 5,116

                모니카, 그 정도로 킬러가 될 수 없어!

                                                                                    국화리

 

  탁구장에 들어서자, 핑퐁 소리 수십 개가 내 이마를 때리며 달려 나갔다. 마스크를 쓰고 탁구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핑퐁을 시작했을 때는 코비드가 창궐해서 마스크 착용이 필수였다. 백신을 맞으며 코비드가 진정되자 해제공고가 없어도 탁구 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떼었다. 운동으로 가쁜 숨을 처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불편 함에도 나는 고집스럽게 마스크를 썼다. 나의 마스크 착용에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먼지 쌓인 탁구채를 다시 잡은 데는 사연이 있었다. 20여 년 살아온 한국타운의 집을 팔고 옮기면서 내 룸메이트와 문제가 생겼다. 몇 년 동안 한집에서 그녀와 가까워지자 그녀의 사업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의 크레딧카드로 필요한 자재를 40% 싸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살 어름 판에 서있는 그녀의 애절한 눈초리를 거절하지 못했다. 기한 내에 할부금을 갚으며 나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지 말라고 당부 했다. 카드회사의 메일은 자신이 받아 관리 하겠다 하여 지급 명세를 살피지 않았다. 절벽에 서있던 그녀사업은 나의 도움에도 가망이 없었다. 그녀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고 나를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손해를 끼쳤다. 그 충격으로 가슴은 타고 얼굴은 오이 말랭이가 되었다. 얼마 후 또 다른 친구까지 틈새가 생겨 내 가슴에 기름을 붓는 것 이 아닌가.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생업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환자를 보는 의사가 자신의 병은 치료할 수가 없었다.

나는 희생자다.”라며 피를 말리는 날이 계속되었다. 십 수 일이 지나자, 몸에서 경고음이 왕왕거렸다. 폐인이 될 것 같은 위기에서 극복하려는 힘이다.

몸속의 독소와 오물을 빼야 살 것 같았다. 운동실로 가서 러닝머신에 올랐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풀썩 주저앉았다. 기운이 빠지니 내 몸의 악귀들도 약해지는가.

목탁소리보다 경쾌한 음이 아래층 탁구장에서 들려왔다. 오래 전에 내가 치던 핑퐁 소리이다.

며칠 후 코치를 소개 받았을 때 나는 미국의 영화배우 중 한명이 라켓을 들고 서있는 줄 알았다. 희고 싱싱한 얼굴이 보내는 미소에 나는 감전되어 버렸다. 코치와 호흡이 잘 맞아 공의 리듬감과 속도감이 경쾌해졌다. 내 몸의 근육들이 10년 전의 탁구 실력을 기억하며 힘차게 밀어주었다. 스웨덴의 탁구 전설 발트너를 닮은 코치와 공을 쳐서 인지 내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구경꾼들도 내가 일취월장 한다고 올려 주었다.

코치 알렉스는 내가 공격적으로 치는 공을 좋아했다. 그는 공을 다시 때려보라고 내 앞으로 보냈다. 수십 번을 힘껏 때리니 땀 흘리며 마시는 동치미 국물 맛이었다. 그 재미로 얼굴에 꽃을 피우다니. 수개월 지나 내 탁구 구경꾼들도 추임새를 넣으니 자신감이 넘쳤다. 나도 선수 흉내를 내볼까? 우쭐해졌다.

골프 칠 때 입던 세련된 회색 무늬 스커트와 곡선이 드러나는 검은 셔츠를 입었다. 결승전에 선 선수자세로 섰다. 코치와 몸 풀기 랠리를 몇 분간 오갔다. 경기에 들어가면서 코치의 공이 거칠어졌다. 마스크 안의 내 얼굴도 힘이 들어갔다. 공을 향하여 공격에 돌입했다. 공을 후려치자 내 앞에 떠 있는 공이 얼굴만큼 커지며 우뚝 서는 것이다. 나의 가해자들이였다. 매의 눈으로 공을 쏘아보았다. 그들의 가슴과 머리를 스메싱으로 난타할 기회가 왔다. “피멍이 오래 가게.” 잔인하게 외쳤다. 살기어린 얼굴은 마스크가 감추고 있다. 억울한 마음이 남은 전 남편의 얼굴에도 몇 방 날렸다. 코치는 공을 다시 공을 주며 소리치고 있었다.

모니카, 그 정도로 킬러가 될 수 없어. 공을 똑바로 보고 한발을 나가며 허리를 빠르게 돌려.” 킬러 소리만 내 귀에 잡혔다. 킬러! 킬러! 나는 사납고 빠르게 공을 갈겨 버렸다. 공들은 깨지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튀어 나갔다. 땀인지 눈물인지 눈을 가려 보이지 않았다. 사냥개처럼 달려들어 눈앞에 떠있는 순서대로 스매싱을 날렸다. “너희들도 피를 흘려야 해. 나보다 몇 배로 돌려줄 거야.”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킬러의 짜릿함이다.

그 순간 화랑 주인이었던 심모 조각가의 넓적한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용서가 안 되는 인물이다.

나와 또 다른 한 명이 그의 화랑 소장전에서 옛 유명화가의 엽서 그림을 2점씩 샀다. 수년 후 다른 구매자는 그 그림을 서울에 팔았다. 그 그림들이 가짜 판명을 받다니. 그는 그 감정서를 들고 화랑주인에게 살기를 갖고 협박을 했다. 수개월 후에 구매자는 보상을 받아냈다. 나도 손해를 참을 수가 없어 잠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까지 보상을 요구하면 그가 확장 이전한 윌셔 화랑이 타격을 받을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친구로 생각하며 몇 년 보상을 참기로 했다. 그는 고마워했다. 가짜 그림 파동의 영향이었는지 일 년 후 화랑은 문을 닫았다. 그는 나에게 말없이 한국으로 사라졌다. 미국의 아들 집을 방문해도 그는 나를 피했다. 30여 년 동안 그는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돈과 친구까지 잃었다.

마스크 안에서 탁구 라켓은 총으로 변했다. 장로라던 그의 검은 심장을 향하여 수 십 발 난사했다. 심장의 핏줄이 터지며 탁구대위로 붉은 액체가 쏟아졌다. 널브러진 그의 시체가 보였다.

코치가 손뼉을 쳤고 구경꾼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태어나 처음 웃음을 맛본 사람처럼 웃었다. 같이 치고 싶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걸고 있는 승리자가 이런 기분일까.

우아한 수비 선수 주세혁을 닮고 싶었던 내가 중국의 공격수 판젠동이 되다니.

탁구를 치며 나도 되받아칠 줄 알게 되었다. ‘하면 소리가 나야 핑퐁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상대의 공격은 내가 죽는 것이다.

나는 왜 숨어 버린 배신자들을 찾아 싸움을 걸지 못하는 걸까. 나는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일까. 한동안 마스크라는 가면을 쓰고 나의 배신자들에게 공격을 가해 봤다. 그 실험으로 정신의 근육이 운동선수처럼 울퉁불퉁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목욕하다 만 것처럼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에서 복수를 했다며 흰 이빨을 보이며 짐승처럼 웃다니.

묵상하는 중에 글이 떠올랐다. 불가의 [연기법]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그것이 생겨나고, 그것이 생겨났으니, 이것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여 형성되고 서로 의존하여 소멸한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근본적인 괴로움이 종식된다고 했다.

문제는 허술한 나의 사고방식에 있었다. 대책 없는 사람들을 헤프게 도와준다면서 그들을 배신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만든 피해자들일 수도 있다. 마스크라는 매개체 가면에 숨어 복수를 하다니. 정신적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나는 진정 킬러가 될 수 없는 사람인가.

‘ ’소리를 닮은 인간관계가 마음에 든다.

마스크를 벗고 탁구 치는 내 모습이 봄날을 연다.

(작가 근황)

당분간 비 소식은 없을 것이라는 반가운 아침방송. 오후에 폭풍우가 오고 있으니 움직이지 말라는비상경고문자도착. 로스앤젤레스 하늘의 변덕은 5월의 신록을 이기지 못하리라.

 

작가 소개

1982(~) 미주 로스엔젤레스로 이주

한국산문 이사

미주문인협회 회원

현 한의사 (산타모니카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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