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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렌지 물결    
글쓴이 : 곽지원    25-03-05 09:16    조회 : 1,099

오렌지 물결

 

드디어 오라클 파크’(Oracle Park)에 가는 날이다.

11년 전 차 타고 지나가며 보았던 ‘AT&T 파크시절부터,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을 보러 간다. 자이언츠 팬도, 이정후 팬도 아니지만바닷가에 위치해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오라클 파크는 꼭 한 번 가고 싶은 야구장이었다.

 

  경기는 오후 1 15분에 시작하지만, 아침부터 서둘러 페리 빌딩부터 들렀다. 페리 빌딩은 주변 섬이나 소도시로 항해하는 배도 출발하지만,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파머스 마켓과 1층에 예쁜 가게들이 있어 구경거리가 많다. 자이언츠의 컬러인 오렌지 물결이 페리 빌딩 안팎으로 넘쳐났다. 그들이 입은 저지와 야구모자를 보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바다는 바로 왼쪽에 있고 날씨도 좋으니, 30분 거리지만 걸어가기로 했다. 배리 본즈의 영구 결번인 25번이 많이 보이는 와중에 J.H. Lee(이정후) 51번 저지를 입은 여자아이가 부모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같은 구장으로, 같은 경기를 보러 가는 길이니 원래 알던 사이처럼 느껴지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런데 우리 앞에서 걸어가던 20대로 보이는 청년 몇 명이 갑자기 욕을 하며 방향을 확 틀었다. 무슨 일이지? 의아한 마음에 나의 시선은 저만치 앞으로 향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고, 딸의 팔을 꽉 잡았다.

 “저기 봐봐! 저거뭐야?”

 “? 어디?”

 대여섯 명의 젊은 남자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전거를 타려고 모여 있었다. ‘안 본 눈 사요.’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 죄를 지은 사람처럼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우리도 멀리 떨어져 걸었다.

 딸이 키득키득 웃으며, “엄마는 여기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십 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못 본 걸 다 보네!”라고 말했다.

 

 며칠 후 저녁을 함께 먹은 남편의 사촌 동생 부부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마라톤을 뛸 때마다 하도 봐서 이제는 무감각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 사촌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벌건 대낮에 다 벗고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걸까? 야구장에 가는 길에 있던 수많은 어린이들은 그 광경을 어떻게 인식할까? 어릴 때부터 보니까 오히려 덤덤할까? 한국에서는 경범죄로 잡혀간다고 말하며, 그날의 충격을 웃어넘겼다.

 

 308번 블록을 찾아서 야구장 안으로 들어서니, ‘비현실적인’ 장관이 펼쳐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 맥코비 만(McCovey Cove)위에 출렁이는 크고 작은 보트와 요트들.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도 야광 효과를 내는 오렌지 컬러의 스타킹을 신은 선수들의 길쭉길쭉한 다리. 세상의 모든 색깔이 고유의 모습을 선명하게 뽐낸다. 눈이 부시다.

 자이언츠 깃발을 휘날리는 요트와 카약은 장외 홈런(Splash Hits)을 잡기 위해 기다리는 팬들이 타고 있다. 그렇게 잡은 홈런 볼은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고 한다. 이날은 장내 홈런만 나왔지만, 그런 배들이 떠있는 걸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부상당한 이정후 대신 투입된 중견수는 대활약을 펼치며,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큰 점수 차이로 이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래서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어쨌든 홈구장에서 이기는 경기를 보고 승요’ (승리하는 경기를 직접 봤을 때 승리 요정이라고 부른다)가 되었다. 오라클 파크가 나를 이렇게 환영해 주는구나 싶었다.

 

이번 여행에는 꼭 오라클 파크에서 직관’ (현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는 것) 하겠다는 나의 야구 열정에 떨떠름해하던 딸은, 막상 바다를 마주 보며 앉자 진짜 예쁘다라고 감탄을 연발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오랜만에 왔는데, 재밌네!”라며 제법 경기 분석까지 한다. 한국에서 야구장을 데리고 다닌 보람이 있었다.

큰딸과 함께해서 좋았고, 땡볕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바닷바람을 실컷 맞아서 좋았다. 딸이 행복해하니, 내 마음도 오렌지 색깔로 물들었다

 

[한국산문] 202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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