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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은 어디에    
글쓴이 : 윤기정    25-03-19 09:31    조회 : 83

진실은 어디에

 

윤기정

 

을사년乙巳年 벽두가 을씨년스럽다. 온 나라가 두 패로 갈라섰다. 주말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자기들만이 정의라고 우긴다. 저마다 국민의 뜻임을 내세우지만, 진실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그 대치의 최전선에 말이 있다. 상대를 헐뜯고 조롱하고 겁박하는 날 선 말들이 오간다. 여러 형태의 정보가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유튜브, SNS, 포털사이트, 단체대화방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순식간에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하나의 사건을 편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하고 강변한다.

언어의 기본적 기능은 의사 표현과 전달이다. 말의 기능에 언제부터인지 새로운 기능이 생겼다. 새롭다기보다는 기존의 기능 중 하나가 도드라져서 마치 언어의 대표적 기능인 양 출현했다. 바로 폭력적이고 누군가를 조롱하고 깎아내리는 언어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역동성이 언어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불러냈나 보다. 최근에는 젊은이들에 의한 극단적인 축약어와 신조어가 우리 말에 뒤섞였다. 언어의 기본적 기능이 사라지고 부정적 기능만 확대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언어 변화는 시대 환경에 따라서 속도에 차이를 보일 뿐이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거짓말이다. 서동요薯童謠 같은 거짓 소문은 의도가 있더라도, 의도의 순수성에 오히려 가슴 떨리는 서정敍情이 있었다. 그러나 세간에서 여의도 문법이라고 칭하는 정치권 언어나 사이비似而非 언론, 선정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생산 유포하는 일부 개인 방송과 이를 퍼 나르는 대중이 만든 거대한 정보의 사슬은 정직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발전의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AI까지 이 거짓의 거대한 네트워크에 합세한다면,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앞날은 밝을 수가 없다.

정보 전달의 수단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다. 주어진 정보를 불특정 다수가 접하는 매스 미디어의 단계를 거쳐서 지금은 양방향 소통 시대다. 활발한 개인 방송은 수많은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만들었다. 몇 인풀루언서는 전 세계 수십, 수백만 명 이상의 팔로워follower에 영향을 미친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유튜버, 정치인은 수많은 팬과 함께 독특한 팬덤 문화를 형성한다.

이들은 대체로 맹목적 행태를 보인다. 추종 대상에는 충성심을, 그의 반대편에는 추종자에 대한 충성심만큼의 적개심을 드러낸다. 내 편이면 흰 것을 검다 해도 환호하고, 상대의 말이라면 흰 것을 희다 해도 야유한다. 이들의 함성과 야유를 되풀이해서 듣다 보면 하양과 검정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혼돈을 겪게 된다. 끝내는 진실이 왜곡되어 흑백이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익명성에 편승한 무책임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보태진다. 이 상황은 왜곡된 진실의 꼬리마저 숨겨 버린다.

거짓말의 종류를 색깔로 나눈 속설이 있다. 곧 들통날 거짓말은 새빨간 거짓말, 선의 또는 누구에게도 무해無害한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이고 의도적으로 남을 해치려는 거짓말은 까만 거짓말이란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그럴듯한 면이 있다. 오 헨리(O. Henry. 1862-1910. )마지막 잎새에서 늙은 무명 화가는 벽에 담쟁이잎을 그린다. 죽어가는 젊은 화가 존시를 살리기 위한 작업이다. 하얀 거짓이다. 하얀 거짓은 비난은커녕 따뜻한 인간애의 감동을 주지 않는가?

사람은 하루에 얼마나 거짓말을 하는가?’에 관한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주 사소한 것. 의례적인 말까지 포함하면 약 200, 7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거짓말은 나쁜 짓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살아왔다. 그런 우리가 날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숨 쉬듯이 하며 살고 있다니 놀랍다. 대부분이 하얀 거짓말이라니 크게 자책自責할 일은 아니다.

하나의 정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늘었다. 그런데 정보의 참모습은 확연해지기는커녕 진실을 만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아니 진실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한때 남성 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진실이라는 이름의 배우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의 죽음에 개인사 말고도 거짓 정보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풍문이 있었다. 거짓 정보가 진실을 세상 밖으로 밀어낸 게 진실일까? 진실은 최진실이 세상을 등지기 훨씬 전에 판도라의 상자 안으로 들어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 거기에라도 있어 다오. 그럴수록 진실이 그립다. 보고 싶다. 진실아!

 『수필 오딧세이』 2025.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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