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신의 선물일까
우리 집에선 내 꿈이 꽤 인정받는 편이다. 꿈이 좋으니 오늘 시험을 잘 볼 거다, 혹은 나쁜 꿈이니 찻길 조심, 말조심도 하라고 해몽하면 귓등으로 듣는 척하면서도 가족들은 은근히 믿는 눈치다.
내 꿈의 단골손님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친정어머니다. 그분들이 꿈에 보이면 좋은 일도 생기지만 조심하라는 신호일 때도 많았다. 특히 외할머니 꿈이 잘 맞았는데 느낌이 안 좋으면 구설에 휘말려 맘을 다치거나 아끼던 접시 한 개라도 깨졌기에 항상 신경이 곤두섰다. 그래서 최대한 꿈땜을 하려고 엉뚱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거나, 값싼 그릇을 일부러 깨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맘이 좀 놓였다. 하지만 이렇게 꿈에 휘둘리는 내가 가끔은 우습기도 하다.
『동의보감』에서는 꿈을 혼백이 사물과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외부의 사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다. 도를 깨우친 진인眞人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내 꿈을 줄이기 위해 도를 닦아야 할까?
신혼 초, 외할머니가 쌍둥이로 나타나는 꿈을 꾸고 횡재를 한 적이 있다.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큰 쌀자루가 터지더니 하얀 쌀알들이 공중으로 분수처럼 흩어졌다. 다음 날, 우리가 갖고 있던 주식 하나가 상한가를 쳐서 두 배로 이익을 챙겼는데 우리가 팔고나자, 그 종목은 폭락해버렸다.
친정엄마가 살던 시골 빌라 전셋돈을 1년 넘게 못 받고 있을 때도 예지몽을 꾸고 해결한 적이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 집을 비워준 지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머니와 친분이 있어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던 중, 법원에 가서 조용히 소송 절차를 밟았다.
그 후,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한쪽 발꿈치 살점이 탁구공만큼 뚝 떨어져 나갔지만, 피는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죽을병인가 걱정하며 들여다보니 네모난 살점에 투명한 공이 살 속에 박혀 있었다. 그 안에는 파란색의 뭔가가 들어 있었고 흔들어보니 달각달각 소리가 났다. 혹시 깊은 고민이 해결될 징조였을까?
다음 날, 놀랍게도 꿈쩍도 하지 않던 집주인이 시골에서 올라왔다. 그는 법적으로 붙은 이자를 조금이라도 깎아 달라며 머리를 숙였고 마침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꿈은 친정어머니 사십구일재四十九日齋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가족과 함께 베트남에 있어 어머니의 사십구일재에 참석하지 못했다. 꿈에 어머니가 내가 사는 아파트에 오셔서 “전이 없으면 닭고기라도 놔야지”하고 접시에 담긴 하얀 백숙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이 신경 쓰여 언니에게 알렸더니 깜짝 놀라며 기독교식으로 간단하게 했으며 전은 준비 못했다고 했다. 그 일 이후 나는 지금도 제사 때면 전을 세 가지 이상 정성껏 부쳐서 꼭 상에 올린다.
최근에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굵은 대파를 한 아름 안겨주는 꿈을 꾸고 평론 당선 소식을 들었다. 파를 받는 꿈은 노력한 일에 성과가 생기고 운이 상승하는 길몽이라는 해몽이 있었다. 식구들은 다시 한번 내 꿈 이야기에 놀라며, 나를 ‘꿈쟁이’라 불렀다. 당선 소감에 꿈 이야기를 쓰며 “늦은 밤, 글 이랑마다 엄마도 애를 태우고 계셨나 보다”라는 말을 남겼다. 새삼 그리움이 밀려왔다.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말한다. 꿈은 분명 무의식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향연이지만 현실이다.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을 재구성하며, 최근에 받았던 인상들, 어린 시절의 인상들을 재료로 삼고 이 원료들을 쪼개고 붙여서 공간을 꾸민다는 이론에 동의한다. 아무리 최첨단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어도 꿈은 여전히 의문이고 논란의 대상일 때가 많다.
꿈은 무의식의 향연이지만, 때로는 미래를 예견하고 우리에게 신호를 준다. 결국, 우리는 그 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미래 예지와 미래 투시, 경고와 영적 교감까지 들어있는 꿈은 나약한 인간에게 신이 내려준 선물이 아닐까?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닥쳐올 일들을 미리 대비하게 해주고 희망을 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악몽을 꾸더라도 상처가 무서워 피할 생각만 하기보다는 반성하고 조심하여 긍정적인 길몽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러면 결국, 꿈은 신의 선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