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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번의 장례식과 2번의 결혼식    
글쓴이 : 곽지원    26-08-19 10:36    조회 : 14

‘0번의 장례식과 2번의 결혼식

 

곽지원

 

미국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쩌지?”

늘 십 년 치 근심 걱정은 마일리지처럼 적립해놓고 사는 남편은, 이 질문을 10번도 넘게 했다. 나는 속으로는 또 시작이다한숨을 쉬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연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아예 악역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럴 리도 없지만, 만약에 결혼식 앞두고 돌아가시더라도 나는 그냥 진행할 거야. 어렵게 계획한 건데 없던 일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는 없으니까.”

누가 없던 일로 하재? 걱정되니까 하는 소리지.”

 

나를 냉혈 인간 취급하던 남편도 시누이의 15살 먹은 강아지가 생사를 다툴 때는, 사람이 우선이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악당으로 변모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부터 우리 코미가 얼마 못 살 거 같아. 나 미국 가는 거 취소할까 봐.’라는 문자로 남편 속을 뒤집어 놓더니, 인천공항에 나가 있던 조카한테서 전화가 왔다. 코미 상태가 안 좋아서 집에 있던 자기 여동생이 큰 병원으로 데려갔다며, 코에 줄까지 끼고 있는 사진을 보냈다. 가족 같은 강아지가 겪는 긴박한 상황에 그들 모자는 결정 장애의 지옥에 빠졌다. ‘미국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옆에 있는 아들에게 10번도 넘게 했다는 시누이. 이럴 때 보면 그 오빠에 그 동생 아닌가!

결국 코미의 생명을 병원에서 연장해 주리라 믿으며, 시누이는 큰 조카딸의 결혼식을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강아지보다 조카를 선택한 여동생의 결정에, 남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결혼식이 열리는 식당에 미리 도착한 우리 식구는 웨딩 앨범과 액자, 테이블 배너 등으로 사이드 테이블을 꾸몄고, 딸들이 준비한 여러 개의 꽃병은 메인테이블을 장식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의 지시(?)와 연출에 따라 야외 파티오의 구석구석을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네 식구가 5년 만에 합체한 데다가 큰사위와 예비 둘째 사위까지 총 6명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와 모였으니, 사진을 많이 찍겠다는 나의 의지를 아무도 막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장시간 비행으로, 캘리포니아 남부에서는 장거리 운전을 해서 와준 고마운 손님들은 입구에 있는 방명록에 한글과 영어가 뒤섞인 축하의 글을 남겼다. 즉석사진을 선물받은 하객들은 신랑신부와 따로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는 등 식전 칵테일과 함께 충분한 여유를 누렸다.

큰딸의 미적 감각과 정성이 돋보인 좌석표(place card)에는 마른 꽃이 달려 있었다. 우리 부부의 카드는 나중에 딸네 냉장고에 붙였고, 작은딸 커플의 좌석표는 한국까지 챙겨와서 우리 집 냉장고 측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걸 보며 그리움을 달랜다.

 

언니와 형부에게,

이번에 언니를 몇 년 만에 다시 만나서 정말 좋았어. 언니랑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내가 그동안 까먹고 지냈나 봐. 같이 수다 떨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독일로 돌아가면 언니가 너무 그리울 거야. 이번에 우리가 집에 지내게 해주고 잘 챙겨주어서 정말 고마워.

다시 한번 결혼 축하하고, 베를린에 놀러 오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큰딸 집 냉장고에 붙어있던 감사 카드에서 작은딸의 진심이 가득 묻어 나왔다. 한국어를 못 하는 형부를 배려해서 영어로 쓴 데다가 글 솜씨까지 좋아서 더 놀랐다. 막내는 더 이상 영어도 못하는 시민권자가 아니었다.

언니가 있는 걸 자꾸 까먹어! 어쩔 때는 내가 꼭 외동 같다니까!’라고 푸념하던 막내는, 5년 만에 만난 언니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미국과 독일에 떨어져 지내며 코로나 시국에 서로 엇갈려 한국에 왔다고는 해도, 이산가족이 따로 없었다.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후 고민과 사연도 많았다. 데스티네이션 웨딩(destination wedding: 하객들이 휴가 겸 참석할 수 있도록 외국의 특별한 장소에서 하는 결혼식)과 스몰 웨딩, 그 사이 어디쯤이었던 웨딩. 그래도 두 자매의 상봉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딸들이 함께 웃는 모습을 보니 미국에 살던 시절이 떠올랐다. 한글, 영어 이름을 다 돌림자로 짓고 굳이 똑같은 드레스를 사 입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사진을 찍으며 자매 없이 자란 한을 풀던 나를, 남편은 인형 놀이하냐며 놀리곤 했다.

 

콜롬비아 출신 오너 셰프가 만든 6개 코스의 음식은 하나하나가 감탄을 자아내었다. 들어간 재료와 소스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며, 행복한 식사가 되었다. 남편의 친구는 고프로를 들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다양한 장면을 담았고, 나중에 2개의 영상을 선사했다. 전문 사진사와 영상 기사는 고용하지 않았지만 소중한 추억이 남았다.

신부가 직접 디자인한 웨딩 케이크는 아름답고 달콤했으며, 내가 결혼할 때 받은 노리개는 새로 세팅되어 그녀의 한복 드레스를 빛냈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답례품은 화려한 보자기로 하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각자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고르며 설레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일주일 만에 가게 된 지인의 결혼식. 호텔 뺨치게 화려한 예식 홀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꽃향기에 점령당했고, 한 친구는 숨쉬기가 힘들다고 호소했다. 사진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 장식인데, 현실은 달랐다. 식사하러 들어간 연회장은 도떼기시장 같았다. 아직 1시간이나 남은 다음 예식 손님이 딱 절반의 좌석을 차지하고 있어 더 어수선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친구는, “축의금 받는 데도 두 군데라서 깜짝 놀랐어. 자칫하면 엉뚱한 데 내겠더라.”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랑신부는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형식적으로 인사하며 지나갔고, 우리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노심초사했던 장례식은 하나도 없었고, 2번의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다.


*이 글은 <시에> 26년 가을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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