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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들에게 바라기를    
글쓴이 : 백두현    20-06-12 08:59    조회 : 5,674

딸들에게 바라기를

백두현  <수필 오디세이 2020 여름호>

 

대견하게도 대학을 졸업한 나의 큰 딸이 취업전쟁에서 생존했다. 외국계 중소기업이었는데 그런대로 대우가 괜찮아 만족했다. 무엇보다도 갈수록 자발적인 실업이 많은 세상이라 걱정했는데 큰 짐 하나를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자취방을 구해주러 돌아다니는 내내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던지... 대단한 무엇을 바라 자식을 키우던가. 이런 소소한 기쁨만으로 양육의 보람은 충분하다. 누구든 누군가의 부모라면 당연히 누려도 좋은 극히 자연스러운 기쁨이 아닐까.

 

그런데 딸의 회사는 시작부터 자신의 승용차가 꼭 필요한 회사였다. 수도권에 본사를 두었지만 지방에 있는 생산현장을 수시로 왕복해야 하는 부서라 그렇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는 중고차를 구입해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딸의 자가용을 나의 명의로 등기해야만 했다. 내 돈으로 구입했으니 내 재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보험료를 절약해보려는 꼼수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고 보험경력이 전무한 딸에게는 꽤 많은 금액을 보험료로 지불해야하는 모양이다. 첫 월급의 수준과 상관없이 그렇게라도 해주고 아비로서 마음이 편안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긴 부작용이 하나 있었다. 1주일이 멀다하고 통행료미납통지서가 나의 사무실로 날라 오는 것이다. 도대체 하이패스카드를 충전할 돈이 없는 것인지, 대금을 결제할 시간이 없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충전이 없이도 톨게이트 입출입이 자유롭다는 사실과 나중에 돈을 지불해도 연체료가 없다는 이유로 매번 통지서를 내게 배달시켰다. 월급타면 한꺼번에 정리하겠다고는 하는데 미루지 못하는 나의 성격 탓에 그때마다 바로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매년 갱신하는 보험료도 마찬가지였고 분기별로 납부하는 자동차세도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내달란 적은 없는데 자연스럽게 내 부담이 되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뭘 어쩌겠는가. 스스로 자청한 일인 것을. 일종의 자승자박(自繩自縛) 같은 거였다.

 

오래전 장모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딸 때문에 속상하다며 속내를 털어놓으신 적이 있다. 딸 넷의 성격이 모두 다르다보니 어떤 딸은 게을러 마음에 들지 않고 또 어떤 딸은 어미마음을 너무 몰라준다는 거였다. 마침 곁에 나뿐이니 거들어야 했고 기왕이면 착한 사위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맞장구를 쳤다. 당신의 딸들에게 존재하는 이런 저런 사소한 문제들을 들추어냈다. 맞다! 맞다! 하며 서로 비난의 강도를 높이다 보니 어느 순간 딸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정색을 하시는 게 아닌가.

이 사람아! 그래도 내 딸인걸 뭘 어쩌라는 건가?”

 

순간 아차! 기분 맞춰 드리려다 망쳐드렸음을 깨달았다. 단칼에 단절된 대화로 민망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눈치 없는 사람으로 낳아주신 내 어머니를 탓할밖에.

 

그런 장모님은 말년에 내 집에서 몇 달간 요양을 하셨다. 지독한 천식으로 고생하셨는데 지방 소도시의 맑은 공기가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그런데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아내는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사시는 장모님 때문에 거의 외출을 못하게 되니 갑갑증이 돋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추석이 임박했는데 장모님은 병원에도 가야하고 명절도 다가왔으니 서울로 가야겠다고 하셨다. 약은 대리처방을 받아오면 되고 명절음식은 환자의 몸이니 생략해도 되는데 아무래도 사위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게 미안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시는 게 분명했다.

 

엄마! 그럼 다녀오셔요.”

 

눈치 없는 딸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게 장모님은 상경하셨고 다시는 내 집에 오시지 못했다. 훌훌 털어버리고 더 이상 자식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셨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딸이나 그때 장모님의 딸이나 결론은 세상의 모든 딸들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아들은 문제가 아니라는 게 아니라 오늘의 주제는 그저 딸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말이지만 세상의 모든 딸들이여! 제발 부모님께 효도들 좀 하시기를. 자식 귀한 것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알면서 부모 귀한 것은 왜 일러주어도 모른다는 것인가.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갚아 부디 남은 생은 각자 후회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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