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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꺾을 붓이 있는지    
글쓴이 : 봉혜선    21-11-09 17:24    조회 : 5,538


꺾을 붓이 있는지

봉혜선

 

 초등 2학년에 시작한 일기쓰기를 그쳐본 적이 없어요. 일기쓰기가 문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중학교 때 들었어요. 그때 생의 영역이 정해졌어요. 혼자만의 문학 독서와 글쓰기로 친구도 다른 놀이도 관심 밖으로 물러가고 외로운 문학소녀만 덩그러니 남았지요. 문학은 해변의 모래에 물이 들듯 나에게 스며있었으므로 문학과 함께 하리라는 생에 대해 의심해본 적은 없어요.

엄한 교육자 아버지 눈 밖에 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했던 학창시절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순탄했어요. 말 잘 듣는 아이로 자라며 남다른 체험을 할 기회도 용기도 꺾인 상태라 책에 나오는 창작 생활의 토대조차 닦을 수 없었지만요. 특정 과목에 대한 천착으로 전체 성적은 그만그만했고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한 번씩의 야단맞기로 학창시절은 마감되었어요.

 대학 때 만난 이청준은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어요. 선생님이 되라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도 된다고 격려했고, 나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이청준의 글을 샅샅이 훑는 중 소설 <<매잡이>>에 닿았어요. 총잡이, 넝마잡이, 길잡이처럼 매잡이는 매를 잡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이청준은 매잡이를 꿩을 잡기 위해 매를 부리는 사람이라 부르는 동시에 매가 매달린 팔을 일컫는 단어로 정의했어요. <<매잡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세 편이 된 연유를 마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써내려 갔어요. 손에 잡힐 듯 가까우리라 여겨왔던 글자로 된 생활의 뒤안길을 들여다보았고 글이 탄생되는 현장에서 함께하는 듯한 고통과 희열은 아직도 남아 있답니다.

 결혼 후에도 이루지 못할 꿈을 향한 혼잣말이 계속되었고 일기쓰기, 책을 보며 메모하기를 이어가고 있었어요. 그건 숨쉬기와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혼자 보는 연극에서 독백 부분이 유난히 마음을 이끌었는데 같은 맥락이었겠지요. 그러나 방백이 그러하듯 섞이고 싶다는, 혼자 있기를 견디지 못하는 중얼거림이 아니었을는지. 독백도 방백도 움츠린 용기라고 볼 때 말이지요. ‘이제 붓을 꺾으려구요라는 혼잣말에 꺾을 붓이 있는지 알아보라는 즉답이 꽂혀 들었어요.

 꺾을 붓이라도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다시 용기를 내야했어요. 질 수 없었지만 승복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던 그때 어찌어찌해서 노트를 40권이나 만들 수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왜 여태 작가가 아닌가란 자각이 들었답니다. 작가연하며 나만의 펜과 노트도 정해두었었거든요. 곧바로 만 시간의 법칙속에 나를 부렸어요. 하루 열 시간이 넘는 독서를 생활에 욱여넣으면서도 기도는 한 가지였어요. 꺾을 붓이 있는지 확인하기. 나를 이끌어온, 희미해도 존재를 믿었던 , 즉 펜이 있는 풍경에 대해 의심하라는 경구는 밤낮을 잊게 나를 다그쳤어요. 계속 쓸지 그만 둘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그 후의 일일 테지요.

 고전과 역경을 헤치고 간신히 닻을 부렸네요. 문인으로 2의 탄생을 준비하는 동안 소설가 이청준이 타계했어요. <<매잡이>>속 세 가지 속살에는 언제 닿을 수 있을까요. 꺾을 붓인지는 나중에 돌아볼래요. 붓을 꺾기보다 일단 제대로 세워 보려고요. 이제 막 시작인걸요.                                                <한국산문 11월 호. 특집:나를 움직인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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