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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 껍질 속 빨간 과육    
글쓴이 : 진연후    22-07-05 22:37    조회 : 5,153

초록 껍질 속 빨간 과육

진연후

 

군 격납고에서 폭발이 있었다. 우 하사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중태다. 병사들은 돌아가며 우 하사를 간병해야 하는데 모두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러고 싶을 만큼 끔찍하다. 참모들은 우 하사를 영웅으로 만들자고 합의한다. 우 하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건은 조작되고 미담이 탄생한다.

 

지난해 여름 폭우에 경찰 한 명이 죽었대요. 시민을 살리고 죽었다고 하여 표창까지 했 는데 그것이 모두 거짓이었대요.”

윗선에서 끝까지 버티라고 했다나 봐요. 그래서 피할 시기를 놓친 거래요.”

그럼 명령을 잘못 내린 거네.”

근데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야?”

며칠 전 뉴스에서 본 이야기라며 아이들끼리 웅성거린다.

 

윤흥길의빙청과 심홍을 읽었다. 언젠가 들었던 것 같기도 한 내용의 사건들이 포장만 살짝 바꾸어 일어나는가 보다.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과 밝히려는 이들 사이에서는 또 비슷한 갈등과 아픔이 반복되고 있고. 어떤 것은 밝혀지기도 하고 끝내 밝혀지지 않는 것도 있을 테고,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

우 하사는 평소 단순하고 힘쓰기 좋아했으니 죽어가면서 영웅 대접을 받는 것에 별생각 없지 않았을까요? 좋아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모두가 사실을 알고 있는데 거짓으로 영웅이라며 존경하는 척하는 게 무 슨 의미가 있냐?”

맞아, 그건 죽어가는 사람 바보 만드는 거지.”

물론 농락당하는 것조차 모른다면 그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장기 복무자라는 이유로 단기 복무자들을 괴롭혔던 우 하사는 존경받을 인물이 아니었다. 격납고 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동료 세 명의 목숨을 구한 영웅으로 둔갑된 채 죽어가고 있는 그는 자신이 영웅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의견이 분분하다. 누구를 위한 영웅 만들기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돌린다. 진실을 밝히려는 신 하사의 제보는 외면당하고, 희생양이 된 우 하사를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죽이려던 것도 시기를 놓친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려고 출두한다는 신 하사가 영웅이 되는 건가. 하지만 비겁한 방관자들은 그를 희생양으로 세울 뿐이다.

신 하사도 바보 같아요. 혼자서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줄 텐데.”

 

아아, 어리석은 신 하사

그는 당최 흐름이라는 것을 몰랐다. 모든 잡다한 가닥을 합쳐 단일의 새로운 가닥을 이루면서 웬만한 장애물쯤은 단숨에 깔아뭉개버리고, 깔아뭉갠 만큼 자체 내에 흡수하여 외려 더욱더 비대해진 형상으로 도도히 진행하는 것이 원래 흐름인 것을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고, 이해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감히 되지 못한 힘으로 그 흐름에 거슬러보려 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중뿔나게 굴지 않더라도 사실은 그가 옳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우리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흐름을 알고 모르는 그 차이였다.

- 윤흥길빙청과 심홍중에서

 

어떤 사건이 터져도 그대로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는 누군가 진실을 밝혔다고 해도 그건 정말 진실일까 백 퍼센트 믿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예 그런 소식에 관심을 두지 않기도 한다. 가해자만큼 나쁜 것이 방관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왕따 문제도 어디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인가. 일대일의 문제라면 해결책이나 치유책이 조금 간단할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괴롭히는 건 다수가 힘이 세다는 걸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방관자가 되어있다면 그것 자체가 폭력이 된다. 아이들은 신 하사가 되기는 힘들다고, 신 하사가 옳다는 걸 알면서도 그처럼 행동하기 힘들고 그의 편에 당당히 서지 못하는 건 비겁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도 약자이니 그 비겁함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겠다고. 아이들은 가장 상부에 있는 한두 명의 사람이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 다수가 힘이 세다는 걸 이런 때는 깜박한다.

이론으로는 너무도 쉽게 옳고 그름이 구분되건만 막상 현실에서는 진실에 그리 마음 편하지만은 않은 세상이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안다는 건 쉽지 않다. 안다는 것이 행한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어야 함을 비겁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하여 기억했으면 싶다.


윤흥길의빙청과 심홍1977년 작품이다. 30년도 훨씬 지난 2010년대에 수업을 하며 나눈 이야기이다. 다시 십여 년이 지났다.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초록 줄이 선명할수록 잘 익은 것이라는 수박을 앞에 두고 그때 아이들 모습이, 그들의 세상이 궁금하다.

 


인간과 문학 2022 여름 제 38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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