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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의 오두막집    
글쓴이 : 오길순    22-07-10 12:08    조회 : 5,534

                                                              초원의 오두막집

                                                                                                                                            오길순

  작은 오두막집은 초원의 집처럼 수수했다. 열린 뒷문으로 보이는 끝없이 너른 벌판은 온종일 풀 향기를 불어줄 듯 푸르렀다. ‘빨간 머리 앤이 살았음직한 초록박공지붕 아래 아기들이 숨어들면 한참을 찾아야 할 만큼 아기자기했다. 코츠월드의 외양간처럼 소박한 현관문을 열면 그리그의 <아침의 무드>가 한 뼘씩 오르는 햇살 속으로 나직이 울려올 것만 같았다.

어머니, 드디어 공사가 끝났어요.”

마침 입춘 날, 며느리가 들려준 공사소식을 입춘대길 건양다경, 춘첩으로 붙이고 싶었다. 집짓기 밥 짓기라는데, 얼마나 고생했으랴! 더욱이 햇수로 삼년을 끌다시피 한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니 안도가 되었다. 코비드19 창궐로 여러 번 중단되었어도 끝내 마무리한 공사여정을 축원하고도 싶었다.

어머니, 착한 빌더 덕분에 고생도 안했어요. 돈은 꿈이고 사람은 영원하다면서 웬만한 소품들은 손수 짜서 넣어주고, 고급 자재는 저렴하게 구입하는 길을 알려주어서 공사비도 꽤 절약했어요. 굽이굽이 수납장을 설치해서 오두막집도 꽤 넓어요. 빨간 머리 앤집처럼 생겼어요.”

작고 낡은 집을 수리했는데도 며느리는 오히려 나를 위안하며 만족해했다. 하도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 오두막집도 대궐로 보이나 보았다. 무엇보다 돈은 꿈이고 사람이 영원하기에 사람을 소중히 섬긴다는 빌더이야기가 신선했다. 낯선 이국땅에서 인간을 사랑하기가 쉬운 일이랴! 위인의 잠언 같은 구절을 선사한 외국인 건축가가 숨어 있는 시인이거나 철학자가 아닐까 싶었다.

어머나, 사람이 영원하다는 빌더가 다 있어?”

. 지중해 사람들은 그런가 봐요. 알바니아 분이세요. 아마 바닷가 사람들은 사람을 종교처럼 소중히 여기나 봐요. 돈보다 사람이 먼저래요.”

그러고도 오히려 주인이 자신을 존중해주었다며 아들네에게 백번 감사하더라니, 좋은 인연은 그러한가 싶었다. 문득 젊은 빌더가 예술의 집을 짓는 건축의 명장처럼 여겨졌다. 그런 숨결로 지은 집이라면 고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이 구름처럼 몰려올 명당일 것도 같았다.

이국살이 10여 년, 아들네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늘 미로를 걷듯 조심스러웠다. 공부도 일자리도 있는 힘을 다했다. 어렵사리 오두막집을 구입하더니 이내 2층 증축을 계획했다.

내심 걱정했었다. 외국인 일꾼들이 친절할까? 공사 중에 의사소통은 잘될까? 이웃들은 이방인에게 어떠할까? 역병의 공포만큼이나 공사도 두려웠다. 그런데도 조붓한 단층집을 원룸처럼 수리하더니 이내 이삿짐을 풀었다. 아이들 전학문제며 아들의 근무지인 옥스퍼드 대학교까지의 통근시간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좁은 곳이 더 정답다며 오순도순 살아내는 며느리 마음이 고마웠다. 한 톨의 민들레 홀씨가 뿌리를 내리고 꽃 피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하랴! 스스로 비를 뿌리고 지주가 되듯 공사를 당당히 추진하는 며느리가 그저 눈물 나게 고와 보였다.

그런데요. 어머니! 공사가 끝나니 좀 서운해요. 그 동안 정들었나 봐요.”

그러할 일이었다. 사람을 섬기는 이를 만난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나지막한 천정 아래 술래잡기하는 손자들도 동화 속의 아이들처럼 편안해 보였다. 2층 창 너머 끝없이 너른 벌판의 설경을 내다보는 아기들 표정이 신세계를 처음 만난 듯 호기심으로 빛나 보였다. 나일강에 밀알을 뿌린 이집트 선지자처럼 빌더는 어쩌면 비옥한 삼각주에서 아들네가 잘 추수하기를 바라며 정성껏 집을 지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요. 어머니! 아는 분들 공사하면 알아봐 주려고요.”

빌더는 또 하나 은인을 얻었나 보았다. 착한 이가 남겨 준 추억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너희가 천사같으니 또 한 분 천사가 오셨나 보다.”

인향만리, 지중해 젊은 빌더의 정성이 오렌지 향기처럼 날려 올 것도 같았다. 세상살이 미숙한 아들네에게 그는 또 하나 이름 없는 구세주가 아니었을까?

영국의 건축과 수리방식은 우리와 달랐다. 비용만 계산하면 업자가 완성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그 곳은 주인이 직접 자재를 구입해 주면 빌더가 설치를 했다. 그야말로 건축자는 설치자인가 보았다. 그런데도 굽이굽이 가구를 손수 짜 넣어주고 조화로운 공간을 고심한 지중해 이민자의 인간사랑이 또 다른 이방인에게 깊은 덕성으로 심어졌나 싶었다.

아들네 작은 화단에는 지금 하얀 스노우드럽과 보라색 크로커스가 촉을 내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봄이 빠른 영국에서 지중해 젊은이의 인간애가 꽃마다 스며 있을 것만 같다. 특히 아기들 다칠까 계단 모서리까지 부드럽게 설치한 빌더의 자상한 마음이 구석구석 엿보였다. ‘빨간 머리 앤집처럼 소박한 초원의 오두막집에서 또 다른 인간 사랑이 세월의 고리가 되어 영원히 이어지겠지.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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