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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 오비슨은 살아있을까?    
글쓴이 : 홍정현    24-03-26 11:41    조회 : 1,118

로이 오비슨은 살아있을까?

홍정현

 

1. Only the Lonely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은 살아있을까? 그가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내가 그의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조지 마이클는 2016년 크리스마스에 심부전으로 죽었다. 비치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살아있고 변함없이 멤버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고 있다. 존 레논은 죽었고, 폴 매카트니는 살아있다. 그렇다면 로이 오비슨은?

 

낯선 동네의 한 카페에서 낡은 노트북을 켜고 글 작업을 하며 이어폰으로 올드 팝을 듣고 있었다. 얼음 같던 찬바람이 잦아지면서 고여있는 대기가 점점 누렇게 탁해졌다. 글은 잘 써지지 않았고, 카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로이 오비슨의 Only the Lonely가 흘러나왔다. 어려서 즐겨 듣던 곡.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공기가 밀려들었다. 그때의 냄새가 났다. 80년대 풍경. 롤러코스터를 탄 감정의 요동 속에서 터질 듯이 빵빵해진 자아를 견뎌내기 버거워 징징거리던 사춘기의 나. 로이 오비슨의 목소리가 그곳에 있었다.

노래가 끝나갈 즈음 문득 그가 궁금해졌다. 고등학교 때 그의 베스트 앨범을 사서 들었다. 좋아했던 가수였지만 아는 게 별로 없었다. 1950년대부터 활동했으니 지금은 호호 할아버지. 그렇다면, 그도 어쩌면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이곳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그때 가수 중엔 일찍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어렸을 땐 그것을 예술가나 천재는 단명한다라는 옛말의 증명이라고 쉽게 여겼지만, 살아온 시간의 무게가 체감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 그런 이야기가 까슬하게 가슴 내벽을 긁으며 천천히 지나간다.

 

누구는 죽었고, 누구는 아직 살아있구나. 무심히 이런 생각을 하다가 순간, 멈추었다. 죽음을 이렇게 단순히 말해도 되는 건가? 누구를 확장해 지금의 내 삶의 영역까지 투영하니, 곳곳에 구멍으로 남은 부재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부재의 존재가 끝나버린 노래의 여운으로 남아버렸다. 잠시 무거운 돌을 안고, 멜로디가 멀어지며 드러난 싸늘한 빈 곳을 바라봐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로이 오비슨의 생사를 알지 못했다.

 


2. 누관은 이상 없음

 

1988126일 로이 오비슨은 죽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은 자료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텍스트 속 불행이라는 단어가 유독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거슬렸다.

그날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즐거웠을까, 행복했을까, 우울했을까, 슬펐을까. 무엇이라도 회상해 보려 했지만, 그곳은 지금 이곳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어제 한 일도 잘 모르겠는데, 삼십 년도 훨씬 전이라니.

몇 가지 추측을 했다. 그 시절 나는 우연히 로이 오비슨의 곡, You Got It을 듣고 바로 반해버렸다. 그 노래가 좋아서 계속 들었던 건 또렷이 기억한다. 1989년에 나온 앨범의 수록곡이었다. 가수가 죽은 후 나온 곡이 히트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You Got It도 그런 사례였다. 그렇게 그 노래를 좋아하며 듣다가, 죽어서 재조명된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스치듯 듣던 올드 팝 중 그의 곡들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겠지. 나는 그 음악들을 그가 죽고 난 후부터 즐겨 들었던 거다.

기억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나는 You Got It이 로이 오비슨 사후에 발매된 곡이라는 걸, 그가 죽은 사람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긴 세월이 그걸 말끔히 지워버렸다.

 

눈물이 고였다.

당황스럽지 않았다. 수시로 눈물이 고였으니까. 틈만 나면 흘러나오는 눈물 때문에 안과에도 갔었다. 의사가 누관 검사를 하자며 나를 침대에 눕히고는 눈꺼풀 안쪽에 주사기를 꽂고 식염수라고 추측되는 액체를 흘려보냈다. 액체는 관을 타고 흘러내려 목으로 넘어왔다. 눈물길은 정상이었다. 나의 과한 눈물은 눈의 이상이 아닌, 심리 문제로 결론 내려졌다. 나는 수시로 감정이 격해져 눈물이 모여들고, 그것이 넘쳐 눈 밖으로 흘러내리는, 사춘기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눈가가 시시때때로 축축한 것은 내가 시시때때로 슬프다는 것.

1988126일에 로이 오비슨이 죽어서 울적했다. 인기가 사라지고 가족을 사고로 잃어 불행의 타이틀을 얻고 있던 그가 친구들과 새 곡을 녹음하고 앨범을 준비하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오십 대 초반에 갑자기 죽어버렸다는 것이. 그리고 내가 그 죽음을 오래 잊고 있었다는 게 서글펐다.

 

눈물을 찍어 내며 생각했다. 로이 오비슨의 죽음 말고도 얼마나 더 많은 슬픔이 내 무의식 속에 잠기어 숨어 있을까. 나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을 그 존재들 때문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누관이 막히지 않았는데도 눈물이 계속 흐르는 이유가 어쩌면 그 가려진 아픔들 때문은 아닐까? 여기까지 흘러가 버린 내 심장은 또 한 번 덜컹 흔들거렸다.

 

『인간과 문학』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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