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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잔불 추억    
글쓴이 : 문경자    25-08-16 00:35    조회 : 1,954

 등잔불 추억

문경자

 

 

   겨울 혹한이 엄습해오면 사람들은 마실을 다니며 긴 겨울 밤을 보내곤 했다. 방이 따뜻하다고 소문 난 집을 동네 사람들은 사랑방처럼 애용했다. 그런 집은 땔감이 많은 집, 장년들이 있는 집, 인심이 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집, 언제나 간식이 풍부하고 잘 내놓는 집, 벽에는 메주가 달려있는 집, 가족이 많은 집이야 말로 일등 공신을 할 겨울의 보물섬과도 같았다.

나무가 많은 집은 관솔이 있어 어두울 때 불을 밝혀 집으로 돌아 가기가 편했다. 관솔은 진이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라고도 하는데 거기에 불을 붙이면 검은 연기가 바람을 따라 춤을 추며 숨을 쉴 때 마다 코 속으로 들어가 시커멓게 그을렸다.

관솔이 없이 밤길을 걷는 것은 상상도 못하였다. 한 사람의 불이 꺼지면 다른 사람의 것에 불을 붙이지만 한 손으로 막아도 몇 발자국을 못 가서 꺼져버리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에는 등뒤에서 몽달귀신이 머리채를 잡아 끄는 오싹함에 머리가 쭈삣서는 기분도 들 때가 있었다.

 

또 한겨울 밤 최고의 간식거리는 생 고구마와 땅속에 묻어둔 무였다. 무는 생리현상 때문에 먹기를 꺼려 했지만 맛있게 먹어 주어야 다음에 얻어 먹을 수 있으니 안 먹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는 푸른 잎이 있는 쪽이 달고 맛이 있어 서로 그 쪽을 노리고 있지만 체면상 먼저 손으로 잡기는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남는 것은 무 꼬리, 결국은 무 꼬리라도 달게 먹고 노는 일이 좋았다.   

 메주 또한 겨울 밤 등잔불 밑에서 먹기 좋은 메뉴였다. 처음에는 누군가 먼저 메주에 박힌 콩을 하나 빼어서 주인 몰래 먹는다. 그 자리를 기준으로 해서 한 개식 빼어먹다 보면 나중에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메주의 몸에 자욱이 남았다. 불이 밝지 않고 한 사람의 등 뒤로 그늘이 지면 보이지 않은 틈을 타서 빼먹었다. 등잔불이 하늘거리면 사람들이 그곳으로 집중되어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였다. 사람들을 오게 하는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다음 날 가서 메주를 보면 내가 빼먹은 자리는 쑤셔놓은 벌집 같지만 저녁이면 등잔불 아래서 어김없이 또 손가락으로 공격을 가해 빼먹었다. 어쨌던 친구네 부모님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놀다 보면 불이 작아지고 밝기도 침침해서 심지를 돋우어야 했다. 등잔불의 심지는 솜, 노끈 따위로 만들어 기름이 배어들게 하여 불을 켜는 것으로 바늘이나 옷핀으로 심지를 돋우기는 어렵다. 다 타고 남은 기름덩어리와 같은 부스러기가 튀어 살에 닿으면 뜨거워 놀라기도 하였다. 그을음이 나와 길게 꼬리를 보이며 올라간다. 영락없이 밤 귀신이 살짝 숨어 있다 나가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였다.  

겨울 밤 제일 고마운 것은 석유 등잔불이다. 등잔은 1876년경 일본으로부터 석유와 함께 들어왔다. 등잔은 동물성, 식물성 또는 석유로 불을 밝히는 그릇인데 재료에 따라서 목재, 사기, , 철재 등잔들이 있다.

방안의 공기가 작은 불꽃으로 따뜻하다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 시린 손 끝을 가까이하다 불침을 맞은 것처럼 뜨거워 놀라는 일도 흔히 있었다. 성냥개비 따위를 태워 만든 숯을 가지고 장난으로 불침을 자는 사람의 살에 놓고 불을 부쳐 놀라게 해서 깨어나게도 하였다. 불침은 한번 맞아보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었다.  어른들이 하는 것을 배워 우리끼리 친구네 집 사랑채에 모여 일찍 자는 친구를 골탕먹이는 것이 재미있었다.

가물거리는 등잔불을 보며 옛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잠이 많은 순이가 눈을 감는 것을 보고는 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고는 그 작업에 들어갔다. 성냥개비가 귀한 때라 어른들이 알면 야단이 날꺼 뻔히 알면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잠이 많은 순이가 제일 먼저 눈을 비비며 한쪽 구석으로 가서 옆으로 누워 잠을 잔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주며 잠들어있는 순이를 뒹굴어 보았다. 꿈적도 않고 깨어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성냥개비가 귀 하던 때라 함부로 쓰면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을 줄 알면서도 그것은 뒷전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었다. 등잔불에 성냥개비를 갖다 대고 불이 붙기를 기다렸다. 웃음이 많은 친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세상 모르고 잠을 자는 순이를 보며 웃었다. 성냥개비의 길이가 어느 정도 타 들어 갈 때 후 하고 입으로 불었다. 불을 끈 다음 조심해서 검게 숯으로 변한 것을 잘 떼어내어 잠을 자고 있는 순이의 손등에 침을 묻혀 꽂아 놓았다. 불침에 불을 부쳐 타 들어 가는 것을 보기 위해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지는 순간 벌떡 일어난 순이는  앗 뜨거 하더니 손등을 본다. 아프고 쓰리다며 엉엉 울었다. 데인 자국보다는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것 자체가 서러웠다. 눈물을 닦으며 사랑방문을 열고 나가 고무신을 신고 집으로 횡 하니 가버리곤 했다.   

 

    오늘은 왠지 밝은 불빛이 싫다/토담집 따스한 온기가 그리운 밤이다/좁은 골방에서/떨어진 양말을 꿰매며/문풍지 떠는 틈새 바람/손수건으로 막아주던/고운 손길 보고 싶어/오늘밤은 왠지/등잔불을 켜고 싶은 밤이다/어두운 등잔불 아래서 구하기 어려운 옛날 이야기책 구해/큰 소리로 읽어주던/그때 그 목소리가 그리운 밤이다/눈썹을 그을려 놓고/거울을 드려다 보며/겁에 질려 떨던/그 커다란 눈망울이/너무나 보고 싶은 밤이다/잠자던 친구에게/불침을 놓고 도망 다니던/개구쟁이 시절이/어쩌면 등잔불을 밝히고/꺼져가는 불빛 심지 돋우면/그날을 밝히는 빛 살아날 것 같아/등잔불을 켜고 싶은 밤이다

                                노태웅 <등잔불을 켜고 싶은 밤>

 

                                 

     

등잔 불꽃이 움직일 때마다 앉아 있는 어른들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이 불빛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탈을 쓰고 있는 것처럼 무서운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우리 어머님의 얼굴은 천사처럼 보였다. 한복을 입고 얌전하게 앉아 가물거리는 등잔불 밑에서 양말을 꿰맸다. 여동생과 나는 따듯한 아랫목에 깔아 놓은 솜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손으로 그림자 놀이를 하며 토끼모양, 말 모양을 만들었다. 말 울음소리도 내며 벽에다 그림을 그려낸다. 귀한 크레파스가 없어도 예쁜 그림을 그렸다.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여전히 작고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하던 바느질을 어머니는 계속하였다. 나를 안아서 얼른 요강에 앉혀 놓고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리며 실 눈을 뜨고 있는 내 모습이 안 서러워 쳐다보시는 어머니의 눈 속에 빨간 등잔 불 하나가 더 있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나도 바느질을 하고 싶어 반짇고리를 찾아서 등잔불 밑에 어머니의 모습처럼 얌전하게 앉았다. 쓰다 남은 천 조각을 꺼내 수를 놓는다며 등잔불 가까이에 다가가서 머리를 숙이는 순간에 앞머리가 불에 그을려 손으로 만져보았다. 머리카락이 부서지고 온 방 가득 머리카락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울을 가져와 가까이서 보니 정말 너무 우스운 꼴에 아무리 손으로 모양을 내어도 도루아미타불이 되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 등잔불을 노려보지만 화풀이를 할 수도 없고 얼굴 모양도 이상해 볼수록 못난이 인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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