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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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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아래 남쪽    
글쓴이 : 봉혜선    25-08-20 15:27    조회 : 1,593

남쪽 아래 남쪽

 

 외할머니. 저예요. 큰 외손녀요. 한국산문 문학기행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만나고 싶어서예요. 일정은 610일부터 14일까지이고 대학교 방문이 네 곳이네요. 새벽 6시 김포공항에서 모인 40여 명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어요.

 이번 문학기행에서는 동경이 배경인 문학 작품과 영화에 나오는 장소, 그리고 저자의 탄생지, 거주지, 묘지 등을 탐방해요. 물론 일본에 유학한 우리나라 작가들의 발자취도 밟아요. 2시간 만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어요. 비행길은 모르지만 부산 갈 때처럼 서울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더 남쪽으로 왔겠지요. 옛날 우리에게서 문물이 전해진 길도 이랬을 거예요. 남쪽 아래 더 남쪽으로요.

 신주쿠로 이동해 일본식 정식으로 첫 식사를 했어요. 일본에 온 실감이 나요. 할머니가 해주시던 일본식 반찬을 살짝 맛보았어요. 솜씨야 음식점이라도 할머니를 따를 수가 없지요. 첫 대학 방문지는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릿쿄대학(立敎大學)이에요. 6개월가량만 다녔지만 대학을 옮긴 후에는 시를 쓴 기록이 없으니 작품 활동을 한 마지막 장소였을 거예요. 시인이 하숙했던 자리 두 곳을 들렀어요. 이 중 한 곳이 학교에 전시된 다섯 편 중 사랑스런 추억에서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이라고 읊은 데일 거예요. 주소를 찾아낸 야나기하라 야스코 선생이 놀라워요.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자리는 2년 전과도 용도가 달라졌대요. 우리 같으면 표지석이라도 세웠을 테지만 도심 한복판의 변화야 어쩔 수 없지요. 한 곳은 외관을 독특한 사슬로 장식한 점자도서관이 되어 있어요.

 나쓰메 소세키 소설  마음의 배경지 조시가야 묘지, 기노쿠니야 서점,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 숲에 나오는 ‘DUG jazz cafe bar’에 갔어요. 재즈 카페의 작고 좁고 오밀조밀한 분위기는 운치 있고 예스러워 낭만적이네요. 이것이 일본 분위기인가요. 분위기에는 흠뻑 젖어봤어요. 책에서처럼 여전히 재즈가 흐르고 오래된 노인들의 담배 연기가 가득 차있어요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동경이 서울의 3.5배라지만 숙소를 한 군데로 정해놓고 다니니 안정적이네요. 숙소에 욕조가 있어서 간밤에 반신욕을 했더니 조식도 맛있어요. 어제 거의 2만 보를 걷기도 했지만요. 할아버지가 다니신 호세이대학(法政大學)은 통역으로 오시는 분이 25년 간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데 우리 일정에는 없어 아쉬워요. 두 분이 유학하며 신혼생활 하던 곳이 어딘지 물어볼 친척이 없어 못내 서운해요. 동경은 지진과 폭격으로 무너진 곳에 재건한 것을 자랑삼는대요. 도심지였을 것이 분명하니 저 건물들 중 어느 곳이겠지요. 할아버지 다닌 경기 중, 고등보통학교도, 할머니가 다니신 진명여학교도 건재하지만 장소를 옮긴 것처럼요.

 이동 거리가 가까워 전철로 다니고 있어요. 우리가 내린 곳은 도다이마에 역이에요. 동경(도쿄)제국대학에 왔어요. 지금은 이름에서 제국 뺐대요. 오래된 국립대학다운 역사와 전통이 느껴져요. 고딕 형태의 오래된 건물은 그때 그 길, 그 건물들일 거예요. 전쟁과 폭격에도 학교를 지켜낸 이야기도 들었어요. 발전 일색이어서 옛것이 남아있지 않은 우리와는 다르네요. 오히려 감사해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산시로에 나오는 연못을 보러 왔어요. 할머니도 읽어보셨지요? 이 분의 교수 시절에 걸으며 글을 구상했을 법한 길을 저도 걸어 대열을 따라가요. 작가의 눈길이 머물었을 건물들을 따라 보아요. 오래된 나무에게 안부를 물으며 인사해요. 나무의 깊은 그늘은 음산하지 않고 정겨워요.

 말을 좀 더 잘 들을 걸 그랬어요. 일곱 자녀를 두신 할머니는 말년에는 큰딸인 엄마와 지내며 제게 작은 비단주머니를 가끔 보여주셨지요. 그 안에 있던 비취를 엄마에게 주셨고 반지가 된 그 비취가 이제는 제게 있어요. 할머니는 제게 비취로 남아 있어요. 하늘을 보니 일본에서 드물다는 비취색이에요. 길은 역사를 건너 제게도 길을 내주네요. 공기에는 작가의 숨이 섞인 듯 따사로와요.

 머물고 싶은 학교를 나와 네즈 신사, 모리 오가이 기념관, 아사쿠라 조소관(朝倉彫塑館), 나스메 소세키의 절친이자 후원자 마사오카 시키 집터 등에 갔어요. 할머니는 이곳 중 어디가 제일 맘에 들었나요? 할머니라면 맛깔난 언어로 설명을 해주셨을 것 같은데요. 닛뽀리 역에서 조별로 흩어져 점심을 먹었어요. 큰 음식점이 없어서 그렇게 한 거래요. 작은 가게들이 참 많아요. 대를 이어 하는 집들이 많다니 할머니가 식사했을 데를 알았다면 들어갔을 거예요. 거대도시 동경에 가게들은 집들처럼 참 작아 보여요. 상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는 걷는데 심심하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죠. 할아버지가 전 일본 술 마시기 대회에서 일등한 곳은 어딘지 궁금해요.

 오후 일정도 많아요. 헌책방 거리에서 한국인이 운영 중인 책거리 서점에 갔어요. 국문학을 하시는 유성호 교수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를 강연했어요. 일본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인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 강의도 들었어요. 한국인이 하는 서점 겸 출판사에서 우리나라 사람에 대해 하는 강연을 듣고, 일본인이 우리를 상대로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은 이 사태를 할머니, 뭐라 하는지 아시나요? 신조어인데 ‘K-문화라고 들어보셨나요. 거리에는 한국말 간판이 즐비하고 우리 가수의 노래가 울려요.

 

 셋째 날은 와세다대학에 갔어요. 문학기행을 이끄는 김응교 교수님이 10년 간 교수 생활을 하신 곳이래요. 30년 전 교직원증을 내미니 경비원이 차렷 자세로 인사를 해요. 김 교수님 덕에 교수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수영장 이용도 많이 했대요. 글쓰기와 운동과 맥주, 단순하지만 꾸준히 쓴다는 하루키가 다닌 이 대학도 문학 작품의 배경지에요. 노르웨이 숲배경지이고 하루키 라이브러리가 있어요. 하루키를 존경하는 어느 기업주가 개인 재산을 쾌척했대요. 그 옆에는 연극박물관이 있어요. 중세 유럽풍으로 지어놨더라고요.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3층까지 구경했어요. 밤에 하는 연극이 압권이래요. 건물의 구조상 소리가 앞에 즐비한 나무 길을 따라 울려 퍼져서 마이크가 필요 없을 지경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흥분이 되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연극보기를 즐겼는데 여기에서 연극을 볼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쉬움을 남기고 신주쿠 구립 소세키 산방 기념관에 갔어요. 소세키 등신상(等身像)이 있고 서재를 복제해 놓았어요. 소설로 들어간 듯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넷째 날에는요. 여행의 즐거움 중 먹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지만요. 지금까지의 감흥 덕에 조식을 먹지 않아도 좋았어요. 문학기행을 처음 나선 지금, 이미 충분히 배가 불러요. 오늘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벌어진 아라카와강에 가요. 강을 건너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1550을 발음하게 해 서툰 자를 죽인 현장이요. 그런 희생을 당한 사람을 추념하기 위한 추모비를 세웠던 봉선화회 모임 장소에서 설명을 듣고 간단하게나마 추념했어요.

 요코마이초 공원에 갔어요. 관동대지진 때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 있다가 참변을 당한 곳인데 위령당이 있고 부흥기념관도 있어요. 대지진에 관련하여 학살당한 조선인 추모비가 있어요. 그 외 우치무라 간죠 이마이칸, 히구치 이치요 기념관도 갔어요. 이 장소나 사람들, 사건들을 할머니도 잘 알 테니 설명은 생략해도 되지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과, 몰라도 된다고 여겼던 일본을 알아가요.

 엔도 슈샤쿠가 잠들어 있는 성 이그나치오 성당에 갔어요. 대형버스로 움직이는데요. 운전기사도 처음 가보는 데라며 배운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이렇게 하나씩 서로 배우네요. 이 성당에 올 때 가까운 조치대학(上智大學)에 주차를 하면 된대요. 우리 여행에서 네 번째로 등장하는 대학이에요. 일본에서 천황을 모시는 신사에 다니는 대신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던 사람들은 후대 사람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어려움을 겪었네요. 노기 신사에 들러 호텔로 들어가요

 

 마지막 날엔 영화 퍼펙트 데이즈촬영지 이곳저곳을 둘러보아요. 귀국을 밤 비행기로 잡은 이유를 알겠어요.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시부야 지역 어느 화장실 청소부에요. 코모레비’(木漏,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도 감사하며 사는 평범함이 우리네 일상이 아닌가요. ‘당신은 단 하나뿐인 존재이니 행복하지 않은 일을 그만두어도 좋다고 말해주어요. 영화에 나오는 대사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는 말대로 할머니가 이끌어주어 여기에 섰어요. 마음이 먹먹해요.

 들어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하게 되는 화장실을 선전하려 만든 것 아니냐는 뒷말이 있는데 화장실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으니 평범한 일상이 외국인들도 불러 모으는 효과를 내요. 영화 주인공이 들르는 목욕탕 문이 안 열려 있더라고요. 날씨의 특성상 하교나 퇴근 시간인 오후 3시에 연대요.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일본은 목욕이 필수라지요. 호텔의 욕조를 이해하겠어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화장실도 일부러 찾아갔어요.

 일본, 아니 동경을 문학에 방점을 찍고 돌아보니 개발 위주의 우리나라와 비교가 많이 되네요. 동경 시내 뒷골목에는 시간이 멈춘 듯 옛날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작은 창문이 많고 진회색 일색인 큰 건물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으리으리하지 않아요. 습한 날씨, 지진, 태풍, 배려 같은 일본적인 요소들이 건축물에도 간판에도, 철저한 좌측통행에도 여지없이 드러나요. 사는 곳과 같이 있는 묘지, 기차가 4, 5대 지나가도록 기다리던 장면들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할머니, 할머니를 이렇게라도 추억할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사랑처럼 달콤하고 지옥처럼 뜨겁게 마시라며 중학생 때 내어주시던 커피 맛이 아직도 입안에 남아 있어요.

 

<<한국산문, 2025, 8. 일본문학기행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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