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봐 주지
심리를 다룬 내용을 의식하며 읽은 책은 건널 수 없으리라 여기며 결혼의 거친 강물 속을 헤매던 때였다. 글이 건드리는 마음은 아팠고 의식하지 않으려던 상처를 건드렸다. 황급히 글자만 읽어냈다. 그 후에는 의식적으로 피해 다녔다. 심리학 책 읽기는 언제나 불편하다.
남편은 아무데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막아섰다. 나가려거든, 늦게 들어오고 싶거든, 살림을 못하는 것을 지적 받지 않으려거든 돈을 벌어오라고 했다. 졸업 직후 결혼하는 바람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지도 못했다. 친정 4남매 중 결혼 전 돈을 번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다. 친정에서 돈은 그다지 두드러진 존재가 아니었다. 돈을 벌러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독서였다. 독서는 교육자인 아버지 아래서 교육받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동네 도서관의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행사는 글에 대해 목말라하던 내게 맞춤복을 입혀주려고 사회가 손짓한 마중물이라 여겼다. 첫 번째 책인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는 옳게 살아왔다고 여겨왔으나 공감을 얻은 적 없는 내 생 전체를 후벼 팠다. 심지어 프롤로그보다 앞에 ‘읽는 이에게’를 쓴 작가 남편의 응원문부터 나를 울렸다. ‘자격증이 있어야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게 치유자’(p 7)라고 쓴 작가 남편의 응원은 고무적이다.
아내 자격, 엄마 자격시험 없이 임신이 되자 당황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책 읽어주는 모습이 남편 눈에 곱게 비치지 않았나 보다. 아이가 커갈 때도 글자도 모르는데 읽어줘 봐야 알 리도 이해할 리도 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아이를 옆에 두고 하고픈 대로 하면서 철모르는 아이 고유의 장난이나 시도에 대해 어른 대하듯 혼내고 때렸다. ‘왜 이랬어’라든가 ‘이러면 안 되지’라는 경고 한 마디 없이 호통 치기 일쑤였다. 아이가 또래보다 훨씬 조용했다는 것을 안 것은 좀 더 시간이 흘러서였다.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스펙이 감정이다.”(p 57)는 문장에서 숨이 멎는 듯했다. 감정을 표출하면 혼났고, 현실에서 쌓은 내놓을 만한 스펙이 없어서 무시당해 왔다고 여기며 숨죽여 지내는 것이 옳다고 강요당해왔다. 순종은 아버지에 이어 남편 앞에서 취해야 할 덕목이 되어 있었다. 남편은 한 번도 내게 무엇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순종은 버릇이었고 위축감은 습성이 되어 있었다.
책은 남편에게 대꾸해 보지 못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울면서도 향할 데 없는 내 마음은 책을 잡았다. 책을 잡으면 잠시나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여주인공처럼 당차지 못해 속상했고 책에서처럼 끝내거나 떠나거나 극적인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정아버지와 조그맣고 무구한 눈빛으로 나만 바라보는 아이를 남겨둘 수는 없다고 자꾸 마음을 다잡았다. 읽고 읽으며 빠져들었던 책 종류는 잊었다. 육아서이기도 했고 요리책이기도 했으리라. 내용도 다 잊었다. 그 후 많은 견딜 수 없던 시간이 지났다.
“악의가 없어도 얼마든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p 125)를 읽자 남편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다. 군에 다녀온 큰아들이 아빠가 강요한 대학을 그만두고 먼 데면 된다고 스스로 택한 대학에 대해 말 한 마디 보탤 수 없었다. 취직 후 아빠를 피하지 않고 겨우 제 목소리를 내는 아이를 기특하다 여기는데 남편은 이제야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았다고 말했다.
걸핏하면 이혼하자고 소리 지르는 남편을 참을 수 없던 때, 아이조차 두고 몸만 빠져나오면 숨을 쉴 수 있을 거란 판단 하에 내가 이혼하자고 말한 건 결혼 5년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부모님 네 분 앞에서 결혼하겠다고 했으니 이혼은 네 분 부모님 앞에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네 분 모두 돌아가시는 어느 날 내가 이혼을 말하려나? 아직 알 수 없다. 이미 부모된 상태의 나를 세우려고 나를 주장할 수 있을까.
“그동안 가족 내에서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와 “내가 가해자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피해자였다.”(p 148)를 대하고 남편과 마주 앉아 보았다. 진즉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숙제 할 기회가 있었다면, 남편이 나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었다면 달리 살았을까? 지나가 버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자 “그런 사람은 죽었다. 난 모른다.”고 하는 남편.
책을 보며 글을 쓰고 싶은 어릴 적 소원이 일기 시작했으나 전공을 하지 않은 위축감이 다시 나를 옭죄었다. 책을 보던 시절이 있어 길을 돌았어도 글 생활을 하고 있다. 마음을 다잡게 해준 것은 수많은 글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마음을 접어놓으려고 시작한 독서 역사가 나를 이루어가고 있다.
나의 무엇에라도 동감을 표해주는 남편 말을, 영혼 없이 입에 발린 말인 줄 알지만 지금은 오해하지 않는다. 이제야 보인다. 다 힘든 젊은 시절을 겪느라 그랬다. 아이들이 떠난 빈 집에서 각방을 차지하고 앉아 남은 생을 자신에게 쏟아 보자는 묵언을 나누고 있다. 참 더웠다, 지난여름은.
늦게나마 스펙이라는 걸 만들어가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커다란 스펙이다.
『한국산문』 7월 호 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