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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빙겐에서 만난 두 영혼( 미주문학 겨울호)    
글쓴이 : 국화리    25-10-09 06:47    조회 : 1,586

                           튀빙겐에서 만난 두 영혼

                               -마울브론의 돌담과 네카어 강변-

                                                                                                                                             국화리

  독일 남부슈투트가르트에서 남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고즈넉한 도시 튀빙겐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에는 마울브론 신학교가 있다. 12세기 수도원으로 세워졌지만 16세기부터 교육기관으로 바뀌어빛나는 철학자와 시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곳이다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객을 맞이한다.

  수도원 교정을 걷다 보면 엄숙한 분위기와 과거의 숨결에 내 발걸음도 무거워진다이곳에서나를 문학의 숲으로 이끈 작가헤세의 흔들리던 소년시절을 다시 불러온다. 14세의 헤르만 헤세수도원의 돌담 너머로 걸어가는 그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졌고영혼은 방황했다.

  1877슈바벤의 작은 마을 칼프에서 그는 총명한 아이로 태어났다라틴학교를 마친 후 부모의 뜻에 따라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대견한 아들은 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제의 길에 헌신해야 했다하지만 그는 엄격한 규율과 위선에 숨이 막혔다자유로운 영혼인 그는 자연의 숨결과 시의 울림에 마음을 빼앗겼고갈등이 깊어지자 그곳을 몰래 빠져나가곤 했다.

  마울브론에서의 시간은 일 년에 불과했다탈출 이후 짝사랑의 실연으로 자살을 시도하여 정신병원에 보내지기도 했다학교를 자퇴하고 세상으로 나온 그는 시계공장과 작은 책방의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었다빛바랜 책 사이를 누볐을 청년 헤세의 모습을 그려보며 나도 서가를 둘러보았다그곳에서 문학에 온전히 빠져 있던 그의 표정이 잔잔한 빛이 되어 다가왔다이 상처 깊은 청소년기의 경험은 훗날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 고스란히 담겼다수많은 청년기들이 그러하듯나의 청춘 역시 그의 성장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칼브에 있는 그의 생가는 이제 작은 박물관이 되어 먼 곳에서 온 방문객들을 맞이한다커다란 헤세의 초상화 앞에서 해탈한 성자의 모습을 보았을까그에게 합장으로 마음을 모았다벽의 가족사진과 진열장의 낡은 펜촉들전시되어 있는 그의 작품집들을 보며 한동안 그 공간을 떠나지 못했다그 가운데 내가 읽었던 그의 책 몇 권이 영상처럼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헤세를 처음 만난 것은 데미안을 통해서였다. 1970년대유럽 문학 열풍 속에서 그 책은 내게 커다란 충격이었다나 역시 싱클레어처럼 '알을 깨고 나오는심정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자아를 찾고 삶의 의미를 묻는 긴 여정이 그때 시작되었다내 안에 깃든 싱클레어의 영혼과 함께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걸어가고 싶었다.

  『싯다르타를 읽으며 또 다른 문이 열렸다동양철학에 매료된 헤세의 사유는 내게 위로이자 길잡이였다실수와 고통조차 구도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싯다르타의 미소에서 깨달았다인생의 수많은 어긋남 때문에 내 삶은 실패작이라 여기며 아파했던 날들이 있었다그의 마지막 역작 유리알 유희는 내게 "버려라강물처럼 흘러라." 그 말을 간직만 하지 말고 직접 삶으로 살아내라고 말하는 듯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평화를 꿈꾼 그는 스위스로 귀화했다그는 내게 '책으로 만나는 스승'이었다삶이 악몽 같을지라도 결국 우리는 그것조차 사랑하게 된다는 진리를나는 그의 문장에서 배웠다.

  헤세가 남긴 지혜의 문장들을 가슴에 품고 그의 자취가 서린 튀빙겐을 거닐었다이 고즈넉한 대학 도시는 헤세뿐만 아니라 또 다른 위대한 영혼의 아픔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네카어 강변에 이르자나는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사랑에 잠겨야 했던 한 시인의 운명과 마주했다.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년 태어난 그는 마알브론 기숙학교를 마친 후 튀빙겐 신학교에 입학을 했다그는 그곳에서 셸링헤겔과 함께 '튀빙겐의 삼총사'로 불렸다두 친구가 독일 관념철학을 이끄는 동안횔덜린은 시에 몰두한 미소년이었다횔덜린은 학창시절에도 여자들과 사랑에 빠지곤 한 사랑꾼이었다대학을 졸업하고 궁핍했던 그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목사직을 하지 않기 위해 가정교사로 일을 했다그는 그곳에서도 학생어머니와 연애를 했다.

스물여섯 무렵그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로 일 할 때이다그는 제자의 어머니인 유부녀 주제테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은행가였던 남편은 집을 자주 비었고 그들은 사랑을 나누었다몰래하는 사랑이 오래 갈 수가 있을까그는 그 집을 떠나야 했지만그녀와의 밀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랑이 절실하고 고통스러웠을까주제테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횔덜린 또한 확실하지 않으나 그 시점부터 정신이 붕괴되었다그는 정신병원에서 지냈다그는 서른여섯 살이 되었고의사는 그에게 남은 시간은 3년 정도라고 했다그는 정신이 온전한 날에만 간간이 시를 쓸 수 있었다그는 네카어 강의 흐르는 물결을 좋아했다그의 애독자였던 네카어 강변에 사는 수도원 목수가 그를 자신이 돌보겠다고 의사의 허락을 받았다그의 가족은 정성스럽게 환자를 돌보았다시인은 아름다운 쉼터에서 가족이 생긴 것이다그는 칠순이 넘어 세상을 뜰 때까지 그곳에서 살며 시를 썼다.

  네카어 강변의 노란집 뾰족탑그가 살던 2층 방은 지금은 그의 기념관으로 남아있다.

작은 방에는 빈 의자만 남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사랑의 고통으로 한 여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시인은 그 아픔 속에서 반생을 보냈다참으로 비운의 연인이었다세상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많다진정한 사랑은 어쩌면이룰 수 없을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보이는 것일까.

우리는 강 건너편에서 한참 동안 기념관으로 보존된 그 노란 집을 바라보았다그의 사랑은 시가 되어 우리 곁에 머문다그의 묘비에는 이런 시구가 새겨져 있다.

 

       "폭풍 중 가장 성스러운 폭풍 가운데나의 감옥 벽 무너져 내리기를.

       또한 내 영혼 한층 찬란하게그리고 한층 자유롭게

        미지의 세계로 물결쳐 가기를!"— 「운명」 중에서


    헤세와 횔덜린한 사람은 규율과 위선에 맞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그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으며 영혼을 흔드는 여러 편의 소설로 마침내 도달할 인간의 길을 열어 보였다.

다른 한 사람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 시가 되었다.

  마울브론의 돌담과 네카어 강변의 노란 집은 그들의 고뇌를 증명하듯 서 있었다그들의 삶이 내게 보여준 것은상처와 어긋남조차 삶의 일부이며 그 고통을 끌어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한 뼘 더 성장하고 마침내 강물처럼 흘러갈 수 있다는 진리였다.

 여행을 통해 책속의 스승들을 직접 만나고내 삶의 다음 페이지를 쓸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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