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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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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따라 가방    
글쓴이 : 노정애    25-10-19 09:16    조회 : 1,147

                                            딴따라 가방

                                                                                                      노정애

 

 

 11월 중순이면 남편은 검정색 스포츠 가방을 차 트렁크에 실었다. 테니스 라켓 몇 개는 너끈히 넣을 커다란 가방에는 개그 프로에서나 봤을 형형색색의 뽀글이 가발, 흔들 때마다 불이 들어오는 탬버린, 검정 아이마스크, 스팽글이 화려한 금빛의 재킷과 조끼, 그에 어울리는 크고 작은 나비넥타이 등이 담겨있다. 일만큼이나 노는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 좋아하는 파티 용품으로 하나 하나 골라서 구입했다. 나 또한 흥이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사람이라 보고만 있어도 신이 났다. 일명 딴따라 가방이다.

 처음 가방을 꾸릴 때는 뽀글이 가발, 반짝이 재킷과 조끼, 나비넥타이 정도였는데 매번 가짓수가 늘었다. 눈에 띄는 용품을 보면 추가로 구입했는데 사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상황은 짐작되었다. 실컷 놀고 계산을 위해 뛰쳐나간 남편을 대신해 남은 사람들이 정리하는데 주인이 아니니 무엇이 들었는지 몰랐다. 그러다 보니 노래방이나 행사장에 있던 물건들도 싹쓸이되어 불이 들어오는 탬버린, 장식용 커다란 노란 띠들, 크고 작은 소품들이 담기면서 가방은 나날이 빵빵해졌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져갔다가 친구들이 가방을 달라고 생떼를 써서 따로 세트를 만드는데 물건을 고르고 담아서 보내는 남편이 더 즐거워했다.      

 

 연말이면 만나는 부부 동반 모임이 있다. 남편들이 다녔던 은행이 IMF로 문을 닫자 각자 살길을 찾았다. 합병된 은행에 남기도 하고 다른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보니 전우애 같은 끈끈함이 있다. 4쌍 혹은 5쌍이 분위기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가볍게 한잔하면서 지난 1년을 자축하며 서로를 격려한다. 우아한 차림의 멋쟁이 아내들과 사회생활의 정점에 있던 열정 지기인 남편들의 만남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차를 마시고도 헤어지기가 아쉬워 노래방으로 장소를 옮기면 그 가방이 따라온다.

 처음 봤을 때는 무엇이 들었나?’ 했고, 가방 속 용품들을 꺼냈을 때는 신기한 물건 보듯 구경만 했다. 아내들은 공들여 손질한 머리가 망가질까 봐 가발 쓰기를 주저했고 반짝이 재킷은 잠깐 만져만보고 내려놓았다. 바람잡이 남편과 얌전한? 내가 파란, 빨간 뽀글이 가발에 반짝이 조끼를 장착하고 탬버린까지 흔들자 다른 부부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렇게 하나 둘 가발을 쓰고 반짝 반짝한 의상을 입고 아이마스크까지 쓰니 그날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였다. 변신에 성공한 서로의 모습에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나는 노래가 더해지자 손바닥에 멍이 들도록 탬버린을 치고 빨간, 파란, 노란 뽀글머리를 흔들었다. 기절할 듯 웃다 보니 지난 1년의 스트레스도 저만치 물러갔다. 다음 해 만날 때면 그 가방 가져 왔어요?”라고 물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새해가 시작하면 베란다 창고로 들어가 연말을 기약했다.

 2019년이 마지막이었다. 팬데믹 상황이 3년여 이어지면서 함께하는 식사 자리도 조심스러웠고 노래방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사이 남편들은 정년퇴직을 했고 새로운 직장을 찾거나 교외로 살 집을 옮겼다. 당연히 모임 횟수도, 사람도 줄었다. 간혹 만나도 간단히 밥 먹고 차 마시는 정도로 끝이 났다. 흥도 줄고 놀 힘도 없다면서 수다만 늘었다.

 

 자전적인 삶을 바탕으로 쓴 세르게이 도블라토프(1941-1990)여행가방을 읽다가 그 가방이 떠올랐다. 글 속 주인공은 추방 명령으로 가방 하나를 들고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다. 4년후 우연히 벽장에 방치되어 있던 그 가방을 발견한다. 그 속에 담긴 8개의 물건에 얽힌 이야기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짧은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해서 주인공의 삶을 완성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내용물은 완전히 다르지만 방치되어 잊혀졌던 것이 닮아서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이런 가방이 있는데했다.

 

 딴따라 가방을 꺼냈다. 안에 있는 물건들은 잘 정리되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탬버린을 꺼내서 흔들었다. 방전으로 불은 들어오지 않아도 찰랑이는 소리만은 여전해서 어느 노래에 맞춰도 손색이 없겠다. 돌아보면 불안하고 힘들었던 일도 많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였기에 견딜 수 있었으리라. 다들 안녕하신지? 우리들의 한때를 즐겁게 해준 추억의 가방. 올 연말에는 쓸 수 있을까

                                                                                        2025년 9월호 <한국산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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