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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장미    
글쓴이 : 김명희    25-10-23 22:50    조회 : 516

 

                           겨울장미

 

                                                              김명희

 

 뜬금없이 스페인어를 배우겠다고 사이버대학에 등록한 남편은 한동안 스페인어나 스페인 여행 관련 책을 사 모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간다는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도 두 권 정도 있어 나도 읽었다. 그중 기억이 나는 것은 20대 일본인 여성이 쓴 순례기다. 내용은 지극히 간단했다. 첫 직장에서의 고달픔, 공황장애,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닫힌 생활을 하다가 산티아고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변화해 가며 순례를 마쳤다는 이야기다. 가볍게 읽고 잠깐의 흥취에 취해 ‘다음 여행은 스페인이 좋겠군!’ 하며 덮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 적힌 한 줄의 글귀에 나는 덮지 못한 책을 다시 찬찬히 읽었다

  ‘자기 자신을 겨울장미로 만들지 마.’

 나는 식물에 관심이 없어서 장미가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 잘 모른다.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듯, 잎들을 말리고 영양을 덜 쓰는 정도로 생각했다.

 장미를 가꾸는 이들은 아름다운 꽃을 보려고 잎과 가지를 쳐낸다고 한다. 험한 환경에서 강하게 단련된다고, 그래서 겨울 장미는 겨울을 힘들게 견딘다. 작가가 순례자의 길에서 만난 사람은 그녀에게 그렇게 견디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인간은 보살펴야 한다고, 시든 잎을 따 주고, 물도 주고, 뜨거우면 그늘도 주고, 추우면 옷도 입으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기회를 주라고, 그리고 자신의 꽃을 피우라고 말했다.

  얼마 전 주변의 사람과 부딪혀 힘들 때가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렇게 매여서 힘들어 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만 그 순간 만큼은 내 마음이 정리가 안 되었다. 그때 자신을 겨울 장미로 만들지 말라고 하던 이 글이 생각났다. 나는 그 일을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화는 계속 화를 불러왔다. 남에게 향했던 화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거기에 계속 휘둘리는 나에게 까지 번졌다. 나의 얕은 자제력에, 그리고 가치가 없다고 밀어 버리면 될 것에 매달려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이것이 나 자신을 겨울로 밀어 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 그건 너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꽉 쥐고 나를 화난 상태로 두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그 순간에 멈추어야 했다는 것을. 다음에 다시 부딪힐 수도 있겠지만, 그 상태로 나를 계속 겨울 속에 둘 필요는 없었다.

 나는 외부에서 오는 압박보다는 감정적인 면에서 자신을 겨울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것을 이 말을 생각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게 더 힘들다. 나를 이겨 낼 나는 없기 때문에 늘 나는 지는 시합을 한다. 꽃이 필 봄을 생각하지도 못한다. 견디다 보면 겨울이 끝나리라 믿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디서 설빙기 하나를 대여해 가슴속 언덕 위로 쉼 없이 겨울을 만들어 뿌려 댄다. 내 손으로 저 기계를 꺼야 하는데 내가 머뭇거리는 것이다.

 나의 감정적인 행태가 만든 겨울 장미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다. 나는 ‘내’가 혹은 사랑하는 ‘너’가 너무 힘겨운 상황들에 내몰리지 않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힘겨울 때 누군가 너의 곁에서 손을 내밀고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어 본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혹독한 계절을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힘든 시기가 없이 큰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 지금 너무 힘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내가 내 감정을 다독여 겨울을 벗어나듯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라는 그 말이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 겨울장미가 아니라 한여름의 해바라기처럼 자신을 대해주라는 순례자의 말이 귀하다.

 다시 봄이다. 아직 겨울을 견뎌야 할 날씨라 봄 같지는 않다. 꽃이 빨리 올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무색하게 봄을 알리는 개나리도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다들 견디고 있는 모양이다. 혼자서 혹은 손을 잡고 터져 나올 꽃망울을 다듬고 손질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도 봄을 살고 싶다. 겨울을 이겨냈다는 자랑스러움과 아직 여름과 가을이 길게 남았다는 환호를 느끼며, 이 봄을 늘 꽃으로 살아 낼테다.

 

 

                                  수필과 비평 -25년 3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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