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죽은 귀신 밥 말아 먹기
물밥은 맛있었다. 식당에 나와 일하면서 밥을 자주 물에 말아 먹곤 했다. 여름엔 찬물에 겨울엔 따듯한 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누구보다도 나는 밥을 빨리 해치웠는데, 식사 준비를 시작해서 한 그릇 뚝딱 비우는 데까지 아마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밥을 씹는 게 아니라 흘려 넘긴다고 해야 할까. 밥알을 거의 깨물지도 않고 그냥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는 신기를 펼쳤던 게다. 옆에서 식사하던 이양 언니가 “참 보기와는 다른 구석이 있네요. 있지요, 밥을 물에 말아 먹으면 수명이 단축된대요. 근데 참 아금박스럽게도 잘 드시네요.”라며 나를 구제불능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세상 이치에 해박한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만 사래 걸리나 싶었지만 이후로도 나의 물밥 사랑은 계속되었다.
누구는 잠자는 시간이 가장 아깝다는데 나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웠다.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 책을 보거나 눈을 붙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밥 보다는 책, 책 보다는 잠이 먼저였다. 아니나 다를까. 물밥만 먹다가 위장에 탈이 나고 말았다. 속 쓰림은 기본이고 소화 장애에 역류현상까지 겹쳐 수년 간 애를 먹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가족 누구도 나처럼 물에 밥을 말아 먹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아이들도 제 어미처럼 십 분 안에 식사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외려 나를 제외한 식구 모두가 느리게 가는 ‘만만디(manmandi)’의 삶이라고나 할까.
어렸을 적 밥상 앞에서 혼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마와 오빠랑 셋이서 밥을 먹을 때마다 나는 늘 굼벵이 같았다. 밥상 앞에 앉으면 기본 한 시간은 걸렸다. 엄마는 내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밥 먹는다고 야단했다. 야단을 맞고 토라진 계집애는 한 손에 숟가락을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또 그런 나를 보고 ‘소 죽은 귀신’ 같다고 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귀신이 바로 소 죽은 귀신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두 번이나 혼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고 있으면 이번엔 밥상 앞에서 고사 지내냐고 야단했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수저 등으로 조막만 한 내 손등을 톡 때리고는 “이놈의 썩을 년 때문에 폭폭해 죽겠다”며 가슴을 쳤다. 오빠는 곁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왕자님 같은 오빠 때문에 내가 더 혼나는 거라 여겼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난 참 답답하고 구렁이 같으며 게으르고 낙천적인 성격을 타고난 것 같다.
화가 많은 엄마는 늘 아버지와 나를 두고 능구렁이 두 마리랑 살려니 화병火病 나 죽겠다고 말했다. 24년 띠 동갑인 뱀띠 부녀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런 엄마 말에 아버지는 매양 허허 웃음으로 들어 넘기곤 하셨다. 난 정말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세월아 네월아 하는 한량 기질에다 쇠고집, 외모는 또 왜 그렇게 판박이 붕어빵인지.
아직 병들지 않은 엄마가 화를 내고 잔소리하던 그 찰나의 시절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엄마는 혹 성격이 급해서 그토록 빨리 하늘나라로 가버리신 건 아닐까. 가장 무섭고 듣기 싫었던 얘기. 소 죽은 귀신같다는 말은 훗날 고깃집이나 하리라는 예시豫示 같은 건 아니었을지. 구운 생선 배를 다 헤집어 놓은 오빠와의 밥상 앞에서, 소 죽은 귀신한테 고사지내던 여섯 살짜리 어린 계집애의 얼굴이 캔버스 풍경처럼 훅 그려진다. 진짜 소 죽은 귀신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여태 소 죽은 귀신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식당을 하는 동안 소 죽은 귀신과 돼지 죽은 귀신들에게 매일 감사하며 살고자 노력한 것 같긴 하다.
나 홀로 물에 밥 말아 먹던 밥집을 정리하고 이제 천천히 사는 법을 다시 익히는 중이다. 세월아 네월아 하는 우리 아이들과도 될 수 있으면 함께 밥을 먹으려 한다. 소 죽은 귀신이 물밥을 먹으랴. 소 힘줄처럼 고집 세고 질긴 성격은 소 죽은 귀신 앞에나 묻어 두어야 할 일이다.
급히 먹느라 찬밥에 물을 부을 때면 “그렇게 먹다간 위장 깪여, 이년아!” 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말을 붙드는 습성도 버려야 할 터. 갈피 못 잡고 헤매던 기억들을 꼭꼭 씹어 삼키려 한다. 체하지 않게.
-2025년『한국산문』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