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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식한 우리 엄마    
글쓴이 : 김사빈    26-08-06 15:30    조회 : 20

,무식한 우리 엄마 /김사빈

 

어제는 엄마 산소에 가서 엄마가 무식해서 고마워요 고백했다.

엄마는 무조건 나를 믿어 주었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 무전여행을 간다고 경고 하듯이 엄마에게 말했다. 잘 다녀와라 하신 어머니이시다. 무슨 뜻인지 아시는지 물어보지 안했다. 물론 아버지에게는 말 못하고 엄마에게만 경고 하듯 말하여도 그래 잘 다녀 와 하시는 엄마다. 우리 아버지는 시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다. 무섭기만 한 아버지다. 엄마에게만 말했다

내가 그 엄마 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 큰 딸 누구에게 납치라도 당하면 하는 생각은 안하시는 엄마다, 단순 무지하신 어머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동생 3학년짜리 데리고 신작로에서 지나가는 트럭에 손을 들고 큰집에 놀라 갔다. 육십 리는 되는 전라도 부남서 충청도 영동까지 그 차를 타고 큰집에 갔다. 나중에 난리가 났지만, 큰엄마는 어린것들이 둘이 서만 왔냐. 반갑게 맞이하지만 엄마 아버지가 가라고 하더냐 하신다, 안으로 어서 들어오라 하면서 맛난 것 주신다.

한국이 6,25 사변 나고 그 다음에 수복이 되어 학교 문을 열었지만 월급이 없고 수수 한가마 몇 달만에 주고 좁쌀 한가마 몇 달 만에 월급으로 주면 죽을 쑤어 먹었던 때라, 큰엄마는 강정도 내놓고 하얀 쌀밥도 먹으라 하신다. 그게 좋아서 했다.

고등 2학년 때도 엄마에게 무전여행 갑니다. 그리고 동생을 데리고 해운대로 갔다. 돈이 없는 우리는 서울서 내려온 선린상고 학생과 덕수 고등학생과 합류하여 일주일을 해운대 바닷가를 걸어 다니면서 꿈을 꾸고, 바닷가에 앉아 별이 소복히 내리는 바다 위를 바라보며 부르고 그렇게 잘 놀다 영동으로 돌아갔다.

고생도 하고 우여 곡절 어찌 하였든 간에 집에 사고 없이 도착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면 대학을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우리 형편에 계집애가 입법을 할 것이니, 사법을 할 것이니, 행정을 할 것이니, 하시고 안 된다 하시었다.

무식한 엄마에게 졸랐다.

엄마가 기차 삯 만 해 주면 대학교 시험 볼 것이니 기차 비만 빌려 오세요 했다. 엄마는 냉큼 이웃에 가서 빌려 왔다. 잘 데는 있으니, 내 사촌 동생 집에 가서 신세지거라, 말씀했다.

내 사촌이 동대문에 사니, 찾아 가봐라 재워 줄기다 하신다. 엄마가 빌려 온 돈으로 서울 갔다.

서울서 동대문 찾기로 찾아가서 보니 단 칸 방에 딸 하나 데리고 사는 신혼부부다. 그 속에 끼어서 하루 밤 자고 시험 보았다. 학비를 안내도 된다는 갑류 장학생이 합격통지서를 들고 내려 왔다.

엄마 쌀 세말 값만 주시면 엄마에게 손 안 벌리고 학교를 다닐게요, 또 졸랐다. 알았다. 하시더니 쌀 세말 값을 빌려 왔다. 그 돈은 엄마가 여름내 그 집 일해주어 값을 돈이다. 그 돈을 가지고 서울 올라와서 엄마 사촌 집에 하룻밤 자고 나니, 아저씨가 오늘은 나가거라

하시어 예 하고 나와서 파고다 공원에 103시까지 앉아 있었다. 갈 데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하나 난감했다. 하나님, 천주님, 부처님 빌었다, 갈 데가 없어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3시 되니 중년 남자 두 분이 내 옆에 와서

무슨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한나절 앉아 있니, 말해 보렴, 우리가 도와 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말 하신다,

사정을 털어 놓으니, 다 듣고서,

우리 따라 오라 갈 데가 있다하더니 어느 허름한 집에서 어르신 여기 심부름 할 아이 데려왔어요, 대문을 두드리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신다. 학생인데 갈 데도 없고 딱한 사정이라서 데려 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서 와라 하더니 당장에 들어오라하신다. 그 밤으로 책가방 이불 보따리 가지고 와서 그 할머니 집에 살면서 학교 다녔다,

엄마가 해준 쌀 서 말 값에 버스표 사고 학교 다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 쓸고, 청소하고, 밥해놓고, 학교 갔다.

나는 밥해 주기, 빨래하기, 청소하며 학교를 다녔다. 넉 달 후에 덕수 초등학교 학생 가정교사로 들어가 일 년을 보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미국까지 와서 잘살고 있다. 엄마도 미국까지 따라와서 나하고 살면서 앞뒤로 쫒아 다니며 깡통 주어서 돈을 만들어서 내게 가져왔다.

엄마 예수 믿어야 천당 가요말하니,

주일 아침은 목욕재개 하고 어서 가자 교회에 하며 열심히 다녔다. 성경 한줄 읽지 못하는 엄마 알고 믿는지 모르겠다.

돌아 가시 전, “예수가 나, 오라고 하니 하시더니

가셨다. 미국 와서 두 아들 목사 의사이고 딸 둘은 의사 간호사다.

엄마가 유식한 엄마면 잘 데는 있는가. 어떻게 먹고 살고 학교는 갈 것이니. 따지고 계획을 세우고 맞추어서 내게 물어 올 것이지만, 무식한 우리 엄마는 기억자도 모르고 덧셈 뺄셈도 모르지만

부지런 하면 밥은 먹고 산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그렇게 믿어 준 엄마다. 미국 따라 와서 10년을 살며 예수 믿고 천당 가셨다.

매주 산소에 가면은 엄마가 무식해서 고마워요 했다. 육가 원칙에서 따지고 보면 맞을 것이 하나도 없고 억지인 나를 아무것도 모르시는 엄마, 래 해봐 하고 믿어준 엄마 땜에 여기까지 와서 잘살고 있다, 무식한 엄마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