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표정 / 정민
상이 찌푸려지는 글이 있고, 가슴이 콩당대는 글이 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다 보인다. 시를 읽다가 그 마음이 고마워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제 생각만 강요하는 서슬에 질려 읽다 말고 책을 덮기도 한다. 저도 모를 소리만 잔뜩 늘어놓아 짜증이 나는 글이 있는가 하면, 글 쓸 때의 환호작약했을 광경이 행간으로 훤히 보이는 글도 있다.
지난 번 교내의 학술 발표 때에는 결론도 없이 말장난만 되풀이 하는 발표자에게 몹시 화를 내고 말았다. 너무도 화창한 토요일 오후에 다른 일 접어두고 앉아 그런 발표나 듣고 있는 것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없는 생각 쥐어짜느라 쓰면서 힘들고, 무슨 소린지 몰라 들어서 괴로운 그런 공부를 왜 하느냐고 앙칼지게 따졌던 것 같다.
암호문과 다를 바 없는 시, 자기도취에 빠진 소설, 목적도 없이 생각 사이를 헤매는 비평. 이들의 공통점은 소통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듣던 말든 혼자 떠드는 잠꼬대는 시가 아니라 배설물이다. 소설가도 종종 횡설수설을 의식의 흐름으로 착각하고, 해괴망칙을 실험정신으로 오해한다. 이런 작품들은 쓰기도 힘들었겠지만 읽기가 더 괴롭다.
정지용은 〈시와 발표〉란 글에서 “시가 시로서 온전히 제자리가 돌아빠지는 것은 차라리 꽃이 봉오리를 머금듯 꾀꼬리 목청이 제철에 트이듯 아기가 열 달이 차서 태반을 돌아 탄생하듯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편의 흡족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신고(辛苦)는 얼마든지 감수할 일이되, 되지 않고 익지 않은 것을 쥐어짜 이 아니 좋으냐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적반하장의 우격다짐이 아닐 수 없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의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 인터뷰를 읽었다. “작품 속에 이순신의 한 때 애인이었던 여진의 죽음이 나온다. 그녀의 시체를 누가 끌고 온다. 묘사 문장을 다섯 장쯤 썼다가 모두 다 버렸다. 그리고 단 한 문장으로 바꿨다. ‘내다 버려라.’ 그리고 그날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썼다. 너무 좋았다. 원고지 100장 쓴 것보다 나았다. 하지만 내가 쓰다 버린 것을 독자가 헤아려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는 원고지 100장과 맞먹은 다섯 글자를 얻고 기뻤다고 했다.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느꼈던 칼끝 같은 긴장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 한 마디로 다 알 수 있었다. 그 행간에 녹아든 작가의 한숨과 피땀과 환호도. 한 줄 한 줄 써나가는 것은 피를 말리는 고통이지만, 꼴 지워지지 않던 생각의 덩어리들이 하나하나 형상을 갖춰갈 때 느끼는 희열은 어떤 도락적 쾌감에 못지않다.
논문을 쓸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글을 쓰다 생각이 꽉 막혀 조금도 나아갈 수 없을 때, 머리나 식히자고 우연히 펴든 평소 잘 보지도 않던 책갈피에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가 원하는 정보들이 줄을 지어 나온다. 이들은 마치 왜 이제야 내게 눈길을 주느냐고 원망하는 것만 같다. 이럴 때 나는 괴성을 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연구실을 왔다갔다 한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 같다. 며칠 째 막혀있던 생각은 봇물이 터져, 이제 자판을 두드리는 손의 속도도 그 서슬을 따라잡지 못한다. 밥상에 앉아 밥을 기다리가다 섬광처럼 스친 생각에 앉은 자리에서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몇 장의 글을 숨도 못 쉬고 쓴다. 이럴 때는 벼락을 맞은 것 같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그저 오지 않는다. 몇날 며칠을 고심으로 끙끙 앓고, 중증의 변비 환자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이것을 어떻게 하기 전에는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된 끝에만 찾아온다. 뒤에 그 글을 다시 읽어도 그때의 감격이 새삼스럽다. 읽는 이에게도 그런 호흡은 어김없이 전달된다. 여기에 글 쓰는 일의 보람과 희열이 있다. 나도 모를 글을 남이 알 수가 없다. 내가 기쁘지 않은데 남이 즐거울 리가 없다. 재미있어서 쓴 글,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글이라야 읽을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