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문장을 꾸미지 말라
이 외 수
처음에는 정치법에 따른 문장을 쓰도록 하라. 문장에서의 정치법이란 문장을 이루는 성분을 순서대로 바르게 배열하는 일을 말한다.
나는 매미들이 발악적으로 울어대는 오솔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라고 쓰기 전에 나는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먼저 쓰도록 하라. 바둑에 비유하자면 정석부터 익히는 습관을 기르자는 말과 동일하다. 바둑에서 정석은 참으로 중요하다. 정석을 등한시하면 기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법을 등한시하면 문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꾸미는 단어들을 남발하면 문장이 어색해지거나 내용 전체를 망쳐버릴 가능성이 짙다.
나는 매미들이 발악적으로 울어대는 오솔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위의 문장에서 고딕으로 처리된 부분은 문장을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들은 가급적이면 나중에 적절성을 따져서 삽입하거나 생략하는 습관을 익히도록 하라. 표현의 욕구를 최대한 자제하고 반드시 필요할 때만 적절한 부분에 적절한 수식어를 첨가하도록 하라.
나는 사방에서 매미들이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칠 정도로 목청을 다해서 발악적으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비켜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은 오솔길을 혼자 쓸쓸히 걷고 있었다.
한 문장 안에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모조리 구겨 넣은 사례에 해당한다. 글을 쓴 사람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산만하면서도 허술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정치법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치기들이 도처에 숨어 있다. 바둑으로 비유하면 자충수에 해당하고 축구로 비유하면 자살골에 해당한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에 고등어 이면수 오징어를 집어넣고 미나리 당근 시금치 감자 마늘을 첨가한 다음 소금 간장 설탕 된장에 후추를 뿌리고 마요네즈까지 처바른 상태다. 맛이 어떨까.
위의 예문을 정치법에 입각해서 정리해 보자.
나는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혼자였다. 오솔길은 비좁아 보였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비켜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발악적이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먼저 제시했던 예문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상황들을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먼저 제시했던 예문보다는 한결 안정된 느낌을 준다. 특별한 방법을 쓰지는 않았다. 단지 정치법에 따라 단문으로 정리했을 뿐이다.
출처 : 이외수《글쓰기의 공중부양》 (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