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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설게 하기와 정직하게 하기 ㅣ 이만교    
글쓴이 : 사이버문학부    13-08-18 22:00    조회 : 7,226
낯설게 하기와 정직하게 하기
 
 소위 ‘낯설게 하기’는 문법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실질적 정직의 필연적 결과이다. ‘낯설게 하기’는 독특한 비유나 수사적 기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을 더욱 정확하고 면밀하며 풍요롭게 바라보려고 할 때 기성언어와는 다른 차이가 생겨나면서 나타나는 결과적 현상이다. 낯설게 하기는, 오솔길을 구겨진 넥타이에 비유하거나 차창 밖 겨울 나무를 생선 가시에 비유하고, 사내의 웃는 치아를 견고한 지퍼에 비유하는 연상 차원에서부터, 일상언어와는 다른 문장을 통해 또 다른 방향의 의미 계열을 만드는 차원, 그리고 나아가 사유 자체를 전복하는 혁명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적잖은 사람들이 ‘낯설게 하기’를 말뜻 그대로만 받아들여 뭔가 기이하고 별난 상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특이한 비유나 비약을 가할 때만 낯설게 하기의 시적 표현이 가능하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낯설게 하기의 기본 정신은 오히려 정확하고 명료하며 깊이 있게 바라보는 것에서 생겨난다. 독자나 평자(評者)가 보기엔 ‘낯설게 하기’이지만,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보다 정확하게 보기, 주체적으로 말하기, 새로운 관점으로 이야기하기이다.
 
 가령 기형도의 시「조치원」에서 겨울 나무를 생선 가시에 비유했을 때 (“어두운 차창 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일반적이면서도 통념적 상상에 갇혀 사는 사람이 보면 생뚱맞고 특이한 비유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살점이 모두 발라진 생선 가시는 이파리가 모두 뜯겨 나간 앙상한 겨울 나무 이미지와 매우 적합하게 일치한다. 결국 겨울 나무의 앙상하고 쓸쓸한 이미지를 정확하고 절실하게 들여다본 사람만이 떠올릴 수 있는 비유인 것이다. 또 가령, 「엄마 걱정」이라는 시에서, 시장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라고 노래한다. 이때 자신을 찬밥에 비유하는 것 역시 매우 적절하고 정확한 비유이지, 결코 기발하기만 한 비유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나 적절하고 정확해서 기발하다고 느껴지는 비유인 것이다.
 김현승은 「겨우살이」라는 시에서 겨우살이 느낌을 “몇 번이고 뒤적거린/낡은 사전의 단어와 같은‥‥‥/츄잉 껌처럼 질근질근 씹는/스스로의 그 맛,/그리고 인색한 사람의 저울눈과 같은 정확./남을 것이 남아 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비유들은 관습적·통념적으로 보면 낯설지만, 겨우살이의 느낌을 절실하게 실감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인색한 사람의 저울눈같이 정확한 표현이다.
 
 실질적 정직 혹은 방법적 성찰 혹은 명상적 주시로 세상을 보면, 세상의 실질적 내용은 우리의 통념적 분별과는 사뭇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 것을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주 알아챌 수 있다. 가령 일반적으로 돈이 많으면 부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난뱅이지만, 돈이 많더라도 쫀쫀하면 그 마음 씀씀이가 가난뱅이 못지않게 궁색한 법이고, 온유한 가난뱅이는 그 마음 씀씀이가 부자만큼이나 여유로운 법이다. 일상 통념으로는 ‘돈 많은 부자/돈 없는 가난뱅이’로 나뉘지만, 실질적 차원에서는 ‘쫀쫀하고 궁색한 마음/온유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도 나뉜다. 결국 “세계 일주를 하고도 마음이 궁색하여 자기 입장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 보지 못 한 부자”가 존재할 수도 있고, “평생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을 단 한 번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제일 가난한 자의 당당한 편안함”도 존재한다. 아마도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시인은 아내에게 하루에 일이천 원 받은 용돈에서 막걸리를 사 마시고 남은 돈으로 모아 둔 저금통장만으로도 행복해하며,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천상병, 「나의 가난은」)라고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문학에서 낯설게 하기는 이렇듯, 기발한 상상이 아니라 도리어 매우 정확한 표현이다. 다만 기성통념에 갇힌 자가 볼 때만이 낯선 비약으로 읽힐 뿐이다.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