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에서 수필 쓰기
그다지 뷔페를 즐기지 않는 편입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수선스럽고, 집에 돌아와선 꼭 라면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뷔페음식은 8~10세기께 바이킹족의 식사법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보면 뿔달린 투구를 쓰고 큰 도끼를 젓가락처럼 다루는 거한들이 음식을 널빤지 위에 흩어 놓은 채 대충 먹고 마시더라고요.
세월이 바뀐 요즘은 섹션 별로 선호 음식을 갖춘 트렌드 레스토랑,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 전문 요리사들이 오픈 스테이션에서 즉석요리를 해주는 신개념 뷔페레스토랑 등이 생겨나 성업 중이라는군요. 뷔페 음식에 빗대어 글쓰기(수필)를 연결해 보았어요. 그냥 평소 해오던 ‘웃기는(웃기지도 않는)’ 생각을 적은 것이니 그러려니 하세요.
#1. 거리를 두고 전체를 조망해야
뷔페식당에 들어서면 무엇을 하나요? 겉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영역을 확보합니다. 그다음엔? 쫓기듯 대충 아무 줄에나 끼어들어 동물 농장>에 나올 법한 훈련된 동물처럼 잽싸게 접시를 낚아챈 다음 ‘탑돌이’나 ‘강강술래’를 시작하는 순서입니다. ‘아일랜드(음식을 차려 놓은 섬)’가 몇 개 있고, 무슨 음식이 차려져 있으며, 어떤 줄이 붐비는지 등을 살펴보지 않는단 말이지요. 뷔페 음식이 ‘해치워야 할 그 무엇’은 아닐 텐데요.
글은 또 어떻게 쓰는가요? ‘필(글감)’이 왔다고 무작정 펜을 든다고요? 아니, 그건 옛이야기입니다. 컴퓨터를 켜죠. 근데 그 순간 그 많던 생각들이 눈 녹듯 사라진단 말이죠. 그러면 다음 순서는? 딜리트 앤 리셋(delete & reset)입니다. 또 딜리트 앤 리셋. 그런 난감한 상황이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에서 처럼 되풀이됩니다. 타임루프에 갇히지 않으려면 대충이나마 어떤 내용을 포함할지 골격을 짜고 글의 순서를 머릿속에 그린 후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때그때 단상을 적은 메모지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필휘지(一筆揮之)’하는 사람도 있겠지만(그런 사람 전혀 부럽지 않거든요!), 우리가 무슨 동파(東坡) 소식(蘇軾) 같은 당송팔대가도 아니잖아요.
#2. 뷔페 음식에도 순서와 차례가 있다
뷔페 음식이 물론 고급 한정식이나 격식을 갖춘 코스 요리는 아니지요. 그러나 음식을 먹는 순서는 다를 바 없습니다. 대충이라도 차례를 지켜야 음식끼리 어긋나지 않아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거든요. ‘전채나 샐러드ㅡ>수프나 죽ㅡ> 찬 음식ㅡ>더운 음식ㅡ>가벼운 식사 대용 음식(김치말이 국수 등)ㅡ> 케이크와 과일 같은 후식ㅡ> 커피나 홍차 같은 음료’ 순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랍니다. ‘서두ㅡ>발단 및 전개(본문1, 본문2, 본문3, 본문4, 본문5...)ㅡ>전환 및 절정ㅡ>결미’ 순으로 문단(음식 모둠)과 문단(또 다른 음식 모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변화가 있으며 나름의 질서가 잡혀야 하지요. 그래야 산만하지 않고 단정한 글이 됩니다. '옷'과 '글'은 아무려면 ‘선(線)이 살고 깔끔하게 떨어져야’ 입는 맛, 읽는 맛이 난다니까요.
#3. 한 접시에 산더미처럼 음식을 담지 말라
뷔페에서는 여유를 갖고 욕심내지 말아야 해요. 음식 어디로 도망가지 않거든요. 부족한 음식은 식당 측에서 계속 채워 놓습니다. 글쓰기에 응용하자면, 한 편의 짧은 글에 생각과 느낌, 산하와 사물, 자연 현상을 한꺼번에 거론하지 말란 말이지요. 산, 숲, 꽃, 시내, 강, 바다, 하늘, 구름을 모두 책임지려고 고심하지 말아요. 잘못하면 '왕십리'로 빠져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고요(이거 말이 되나요?). 장 콕토가 말하길, ‘비눗방울도 뜰을 한꺼번에 다 담을 수 없어 떠돈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한 개의 글에는 한 개의 주제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두 개 이상의 주제를 배치하는 고난도 기법(서브플롯)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조심. 강호의 절정고수나 시도해 봄 직해요.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로 시작하는 황진이의 시조가 그런 중의적(重意的) 표현의 예지요. 벽계수(碧溪水)는 마음에 둔 낭군, 명월(明月)은 황진이 자신이어서 자연 현상에 빗대 별리(別離)를 노래한 것입니다. 거참, 황진이도 '백퍼(100%)' 까인다니까요. 다음은 이어지는 구절입니다.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명월이 만공산할 제 쉬어감이 어떠리.’
#4. 한 접시에 두 종류의 음식을 담지 않는다
세 번째 항목인 ‘한 접시에 산더미처럼 음식을 담지 않는다’와 같은 맥락입니다. 생선초밥과 탕수육을 함께 먹으면 무슨 맛이 있겠어요? 그밖에도 궁합이 맞지 않는 음식은 많습니다. 이를테면 피자와 육개장은 어울리지 않죠. 남녀 관계에 비유해볼까요? 결혼이란 것이 죽자 사자 좋아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꼭 서로 뜻이 맞아서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렇더라도 한 번 저지른 결혼을 되물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어지간하면 그냥 가죠. 하지만 뷔페 음식 고르는 것이야 내 주장대로 아니겠어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성질의 제재(subject matter)나 주제(theme)가 충돌하면 시너지 효과는커녕 서로를 해칩니다[同歸於盡]. 억지로 꿰맞춘 몽타주 포스터로는 눈 밝은 독자(bounty killer)를 피해가지 못합니다. 글이 갈팡질팡한다니까요. 격언에도 가르침이 있지만 ‘나무에 대를 접해서는’ 안 되죠. 우물물과 강물은 서로를 넘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화센터 수필반 선생들이 글의 일관성을 주야장천 누누히 강조하나 봅니다. 언뜻 최백호의 노래가 들려오네요.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비라도 우울히 내려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서강수필 바운스 교재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