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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    
글쓴이 : 이하재    20-08-01 14:54    조회 : 341
*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 *



43.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났네.’ 가수 우연이가 부른 설운도 작사 작곡의 노래 ‘우연히’의 첫 마디이다. 우연이란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을 일컫는다. 우연히 만났다는 것은 만날 의사도 약속도 전혀 없었는데 만났다는 말이다.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만남이 성사되는 과정을 전지전능하신 분들이야 훤하게 아시겠지만 범부들은 알 수가 없으니 ‘우연히’라고 얼버무리는 게 아닐까. 모든 만남은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승객과 기사가 만나기 위해서는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어야 하며 순서까지 일치해야 한다. 서로간의 인연으로 만남이 성사되는 것이다. 우연으로만 말하기에는 부족한, 특이한 만남도 있다. 잠실 롯데월드 앞 택시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앞차를 타려던 손님이 내게로 왔다.
“성남시에 가실래요?” “예. 어서 오세요.” 앞차에서 승차거부(엄밀히 말하면 승차거부가 아니다. 영업구역이 아닌 곳은 승차를 거부할 수 있다.) 당한 손님이다. 두 여인이었는데 노인만 타고 젊은 여자는 작은 짐을 실어주고는 차문을 닫았다.

 돌아서는 여자의 손에 일회용 비닐장갑이 끼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여러 사람이 손을 대는 손잡이는 오염물질이 묻어있을 수 있다. 코로나19와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하려는 행위로 본받고 칭찬할 일이지만 처음으로 접해보는 광경이다. 몹시 낯설고 비닐만큼이나 찬 기운이 느껴졌다. 차에 탄 할머니는 ‘우회전해서 모란까지 직진만 하세요.’라고 짧지만 단호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경로를 안내했다. ‘차가 많이 흔들리지 않게 천천히 가세요.’ 배웅했던 젊은 여자의 뒷모습에서 느껴졌던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교통은 흐름이다. 과속이 아니라면 앞차와 같은 속도로 물 흐르듯 진행하여야 한다.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지나친 저속은 교통을 방해하고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손님은 안 좋은 기억이 있거나 몸이 불편해서 미리 당부했을 것이다. 빨리 가 달라고 재촉하는 거보다는 좋지 않은가. 앞차만 신경 쓰며 천천히 달렸다. 성남시 모란 사거리가 가까워지자 ‘좌회전 하세요.’ ‘예.’ ‘조금 가다보면 노랑신호 두 개가 깜박거리는 데서 오른쪽으로 가주세요.’ ‘예. 근처에 가서 다시 말해주세요.’ 사실 낯선 길은 미리 말하면 잘 모른다.

 좌회전해서 두 블록을 가니 두 개의 점멸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우회전을 하니 가파른 언덕길이다. ‘언덕 위 신호에서 좌회전 하세요.’ 언덕 오른쪽에 성남고등학교가 있고 왼쪽에는 아파트가 있다. 좌회전을 하자 ‘앞에 깜박이는 신호에서 왼쪽으로 도세요.’ 좌회전을 하고 내리막길을 백 미터 정도 내려가자 양쪽으로 아파트출입구가 있다. ‘입구에 내려주세요.’ 요금이 17,100원인데 ‘18,000원 드릴게요. 내려가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큰길이 나와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엔진소리가 부드럽다. 천 원의 위력인가보다. 아니면 현찰의 촉감일 거다. 오후 여섯시가 조금 넘었다.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정답이 없는, 내편만이 정답인 결론 없는 좌담을 들으며 수서역까지 왔다. 금요일은 길도 많이 막히지만 손님도 많은 편이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손님을 모시었다. 먼 거리로 가길 원했지만 잠실 학원사거리 근처까지 가는 손님이었다. 손님을 내려드리고 가까운 롯데월드 앞으로 갔다. 주위를 돌다가 손님이 없으면 그 곳에서 마냥 기다린다.

 영업 중에 갖는 휴식시간이기도 하다. 부족한 영혼의 양식을 보충하는 귀한 시간도 된다. 손님을 기다리다보니 세 번째 순서가 되었다. 앞 차 모두 승차를 거부했다. 손님이 많은 날은 서울시내에서 일하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에 타 지역으로의 운행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젊은 여자의 손에 비닐장갑이 낯설지 않다. ‘성남시 가세요?’ ‘예. 타세요.’ 여자는 차문을 닫고 ‘우회전해서 모란까지 직진만 하세요.’ 두 시간 전에 모셨던 손님이 생각났다. 혹시 딸이 아닐까. 말투가 똑 같다. 똑 소리 나지만 다가가기 꺼려지는 느낌이다.

 젊어서인지 천천히 가기를 요구하지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오백년의 인연이 있다고 했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성남시에 접어들었다. ‘기사님 할증료 안 받아요?’ ‘아 예 고맙습니다.’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하다가 깜빡했는데 친절하시다. 시외 할증요금 버튼을 누르라고 지적을 해주었다. 누구도 할증요금을 받을 수 있게 말해주지 않았었다. 관심이 없거나 모른 척 하거나 할증요금을 왜 받느냐고 따지는 사람 뿐 이었다. 경우가 분명하고 빈틈이 없는 여자다.

 ‘모란 사거리에서 좌회전 하세요.’ 말을 안 해주어도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노랑신호 두 개가 깜박거리는데서 우회전 하세요’ ‘언덕 위 신호에서 좌회전 하세요.’ 손님의 어머니를 모셔다 드렸노라고 말하기에는 늦었다.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언덕 위에서 좌회전을 하였다. 또 좌회전을 하겠지 했는데 유턴을 하라고 했다. 아파트 쪽문이 있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인데 동호수가 다른가보다. 얼굴이 닮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지와 몇 마디의 말로 미루어 보면 틀림없는 모녀지간이었다.

 하루에 불과 몇 시간의 시차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목적지로, 모녀로 여겨지는 두 여인을 승객으로 모시고 이동하였다. 시간과 장소가 일치하지 않았다면 앞에 있는 택시들이 승차거부를 하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던 만남이었다. 택시기사와 승객의 만남에 불과한 일이지만 우연보다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지 않을까. 공연한 의구심으로 하루를 보냈다. 꼭 만날 수밖에 없는 당신과 나, 우리는 함부로 할 수 없는 특별한 인연이다. 나쁜 관계였다면 좋게 좋은 관계였다면 더욱더 좋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