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자유게시판 >  자유게시판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    
글쓴이 : 이하재    20-08-08 14:53    조회 : 1,891
*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 *

44
 오랜 시간 차 안에 갇혀 시간을 보내려면 심심하다.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은 라디오를 듣는 일이다. TV는 눈과 귀를 붙잡아 위험하지만 라디오는 귀만 내어주면 그만이라 운전에 별 장애가 되지 않는다. 여러 방송 중에서 나는 음악방송을 즐겨 듣는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몰라라 할 수 없어 뉴스시간에 잠깐 외도를 하고는 가요나 팝송을 듣는다. 물론 한참 흘러갔을 옛 가요나 올드 팝송이다. 요즘 노래는 당최 공감이 되지 않으니 영락없는 꼰대인가보다.

 볼륨은 3단계로 귀를 간지럽힐 정도로 낮은 편이다. 이는 손님을 배려한 선택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그때그때 기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래 전의 일이다. 젊어서 자주 듣던 ‘폴 모리 악단’의 연주곡이 나와 볼륨을 높였다. 아주 고음도 아니었는데 중년의 여자 손님이 ‘라디오 좀 꺼 줄래요?’ 하였다. 그 손님은 음악 감상이나 할 기분이 아니었던 게다. 볼륨을 줄이라는 게 아니라 라디오를 아예 꺼달라는 요구는 없었다. 감미로운 음악도 누군가에게는 소음일 뿐이다.

 가끔은 마음씨 고운? 손님도 있다. ‘기사님도 이 프로 들으시네요. 조금 더 크게 해주세요.’ 시끄럽다 싶을 정도로 볼륨을 높이고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출연자들이 자기들끼리 농담수준의 대화를 하며 킬킬대는 것이 싫어 음악방송을 듣는다는 사람들도 많다. 어느 여자 손님은 좋은 음악을 틀어주어 고맙다며 천 원의 팁을 주기도 하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특히 조용한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인상도 선한 편이다. 음악이 인성에 미치는 효과가 어느 정도일까. 분명 영향이 크리라 생각한다.         

 건장한 청년이 ‘성남시로 가요.’ 한 마디 내뱉고는 핸드폰을 보았다. 꼭 보아야 되는 영상인가보다. 어느 방송인지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고 박수치는 소리가 들렸다. 재미가 있는지 피식피식 따라 웃었다. 라디오의 음악은 십리 밖에서 들리는 기차소리처럼 웃음소리에 묻혔다. 나는 손님이 통화를 하던지 핸드폰으로 노래나 야구중계방송을 듣고 있으면 슬그머니 라디오의 볼륨을 줄인다. 좁은 공간에서 두 방송을 동시에 듣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손님과의 기 싸움에서 지는 거지만 손님에 대한 배려라고 할까.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아버지가 공주 장에서 라디오를 사오시었다. 처음 본 라디오는 정말 신기했다. 작은 상자 안에서 여러 사람이 대화하고 노래하고 싸움질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산새소리, 매미소리, 풀벌레소리, 문풍지소리, 시냇물소리, 소 울음소리, 닭소리... 다듬이질소리에 익숙한 산골소년에게 신문물인 라디오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라디오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애장품으로 채널의 선택권은 아버지에게 있었으나 깊은 산골마을에서 청취 가능한 방송은 서너 개 뿐이었다.

 기억에 남아있는 프로는 퀴즈로 상식문제를 겨루는 ‘퀴즈열차’와 저명인사들이 출연하여 사회 이슈를 재치 있게 풀어보는 ‘재치문답’과 한갑수 한글학회 이사가 진행했던 ‘바른 말 고운 말’ 등이다. 1969년 7월 21일 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중계방송을 마루에 앉아 달을 보며 들었던 추억도 있다. 아버지는 틈나는 대로 라디오를 틀었고 조용했던 산골 집에 노래가 울려 퍼졌다. 감세레나의 ‘새 타령’이 집안 구석구석을 뒤집었다. 흥겨운 노래 가락이었건만 흥겹기는커녕 고통을 참아내던 가족이 있었다.

 “라디오 좀 꺼라” 사랑방 문을 열고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시었다. 귀에서 풍장소리가 시끄러워 견딜 수 없다하시었다. 신나는 풍물소리도 오래 듣고 있으면 고막을 찢는 듯 고통스러운데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가수의 노래가 긴 시간 동안 크게 들렸다면 한낱 소음에 불과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이명으로 고통 받고 계시었지만 아무도 그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이 탓으로 여기시며 참아내시다가 하소연하신 거다.

 그 때 할머니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도로 위에서 듣게 되는 소리들은 모두 소음공해다. 창문을 올리고 잔잔한 음악으로 귀를 위로하며 달린다. 손님이 주는 소음선물은 고마운 마음으로 받는다. 택시비를 덤으로 주시니까 감사할 뿐이다. 
 
이명(耳鳴)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버릴 걸
듣지 말았어야 할 치사하고 욕된 말을
미련 때문에
미련 때문에
담아 두었더니
눈도 모르는 매미가 운다
봄도 모르는 귀뚜라미가 운다
철도 모르는 것들이 떼창을 한다
듣고 흘려버려야 하는 달콤한 말을
욕심 때문에
욕심 때문에
모아 두었더니
시도 없이 씽씽 바람이 운다
때도 없이 땡땡 종이 운다
밤낮 없이 붕붕 자동차가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