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미골 방 씨
김용무
농협에 볼 일이 있어서 면소재지로 나가는 길이다. 다리 건너 한참을 가다 보니 방 씨 아주머니가 저만치 가고 있다. 차를 옆으로 세우고
“어디 가세요. 타세요”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조수석에 탄 후,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주머니가 먼저 얘길 하셨다.
지난 주말에 영감님을 요양병원에 입원 시키고 오늘 면회 가는 길이라고 했다. 영감님은 한사코 집에 오고 싶다고 했지만 못 오게 했단다. 요양원 원장에게 영양제나 기타 그 어떤 주사도 놓지 말라는 당부도 해 두었다고 하신다.
“이제는 정신도 오락가락 하구요 식사도 영 못하니더 ... .”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될시더”
울먹거리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그 영감님을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난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가슴이 먹먹해왔다..
서울에서 처음 내려와 사과 농사를 시작한 골짜기가 불미골 이었다. 그때 방 씨 영감님은 우리 사과 밭을 지나 한참을 더 올라가는 곳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방 씨 내외와 자주 만나게 되었고 기회가 되면 새참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내가 그곳을 떠나 그 골짜기 큰 도로 가까이 내려와 하우스를 짓고 멜론 농사를 할 때까지는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그런데 방 씨에게 재미있는 면이 하나 있었다. 어디서든 꼭 ‘아는 체’하는 거였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자기만 아는 것처럼 자기 말이 무조건 맞다며 몇 번이고 얘길 한다.
“땅에는 거름을 많이 넣어야 작물이 잘 된다네”
이런 식이다. 동네잔치라도 있으면 꼭 그곳에 간다. 술이라도 한 잔 드시고 나면 이사람 저 사람 말에 참견하다가 동네 젊은이들과 큰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의 술버릇을 아는 이들은 그 자리를 피해버린다. 그 뿐만 아니다. 회관에 계시는 할매한테 술잔을 내밀며
“한잔 주이소”
그런 일 때문에 이웃들과 회관 할배 한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내가 불미골을 떠나 비닐하우스를 여덟 동 지어 농장을 만든 곳이 방 씨 영감님 집과 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보는 곳이다. 조그마한 개천이 있어 봉고 정도의 차량은 조심조심 건너다닐 수 있지만 운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헌데 방 씨 영감이 당신 집 마당을 지나 우리 하우스 앞 개천 쪽에 자리를 잡고 소각장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그냥 지내왔다. 그해 여름 장마 때 큰물이 내려와 개천이 넘치고 말았다. 면사무소에서 현장 조사를 하고 중장비를 보내 왔다. 공사가 시작되어 개천 바닥을 깊이 파고 양쪽으로 옹벽을 세우고 두껑을 만들어 덮었다. 공사가 끝나고 나니 개천이 방 씨 집과 우리 농장의 확실한 경계선이 되었다. 헌데 방 씨 영감의 소각장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 자리는 농장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인데 시커먼 것이 너무 보기 흉했다. 그리고 그곳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우리 농장이 속한 곳이 아닌가?
“어르신, 소각장을 다를 곳으로 옮겨주소”
“이 개천 바닥 전부가 하천 부지인데 뭔 소리 하노?”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옮길 수 없다고 버티는 게 아닌가
“그래요 앞으로 나도 쓰레기 나오면 불미골 영감님네 배 밭에 갖다 버릴테니 그리 아소.
배 밭의 절반이 하천부지인 거 알고 있니더”
딋짐을 진 방 씨 영감은 고개를 돌리며 못 들은 척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이후로 소각 분란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이가 되었다.
안동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리 농장에 실습을 왔다. 평소 힘들어 하지 못했던 휘어진 파이프를 바르게 펴는 작업을 함께 하기로 하고 농협에서 파이프 펴는 기계를 빌려 왔다. 작업 양이 많아서 며칠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작업 첫 날 방 씨 영감이 나타났다. 내가 학생들에게 작업 지시를 해주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방 씨가 벌써 작업반장이 되어 있었다.
“빨리 해라. 행동이 굼뜨다. 똑바로 해라, 그리하면 안된다.”
역정을 내며 소리 질러도 학생들이 고분고분 따르니 영감님은 신이 났나 보다. 이제는 아예 아침마다 농장으로 출근을 한다. 학생들이 드디어 슬슬 요령을 피우는 게 보이고 나 또한 학생들 앞에서 영감님을 대 놓고 농장에서 나가라는 말도 못하고 속을 끓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고 나는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역시 방 씨 영감님이 우리 농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하~ 오늘도 배가 산으로 가겠구나!”
조금 큰 소리로 얘길 했다. 순간 머뭇거리던 영감님이 뒤로 슬쩍 돌아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이었다. 학생들과 마주 보고 웃어가며 조용히 작업을 해 나갔다. 며칠 작업이 계속 되었고 나 역시 바쁘게 다니다 보니 방씨 영감님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엄격히 말하면 서로가 근 3년이 지나도록 인사도, 말도 건네지 않고 지내온 터였다. 물론 방씨 아주머니와는 이웃으로 지내고 있었지만.
몹시 더운 여름 오후였다. 하우스 내 멜론 옆순 치는 작업을 해야 했다. 하우스 문으로 들어서면 앞이 꽉 막힌 멜론 정글이다. 튼실한 열매 하나만 남기고 모든 옆순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반대편 문은 보이지 않는다. 멀다. 한 포기 한 포기 순을 쳐내고 전진해야 한다. 저 반대편까지 아득하지만 꾸준히 일 해 나가면 분명 끝이 있다. 멜론의 원 줄기는 지면에서 위로 스물 두 마디 정도에서 원 순을 잘라준다. 그러면 외부로 나가려는 모든 세력들이 다 제거 되므로 모든 영양 성분 들이 하나의 열매로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멜론의 스물 두 번째 마지막 잎사귀 주변의 기온은 대략 70 도 정도가 된다. 묵묵히 작업할 뿐이지 아 하는 순간 덥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는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오늘 하루만 작업하면 끝나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힘이 생기고 손이 빨라진다. 사방이 조용할 뿐이다. 바람도 숨을 멈추고 있는 듯한 순간 하우스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요 아저씨요!”
가만히 들어보니 방 씨 아주머니 목소리였다
“빨리 나오소. 이 뜨거운데 얼능 나오소!”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러세요?”
조금 전 방 씨 영감님께서 다급히 아주머니를 부르더니
“빨리 하우스 뛰어 가 봐라
서울 양반이 하우스에 들어간 지 벌써 두 세 시간이 지났는데 뭔 일 난거 아닌지... .”
순간 큰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띵 하는 전율을 느꼈다. 생각지도 못했던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요즘 인심이 옛날하고는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 있구나. 방씨 영감님의 속마음을 느끼는 순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진작 소주라도 한 병 들고 가볼걸’
먼 산만 쳐다보며 멍하니 있었다.
방 씨 영감님께서 요양원에 계신다 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서리도 내렸으니 이제 곧 겨울이다. 기온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뜨겁던 여름날 오후 햇살을 한 짐 가득 져다 놓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