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경보가 발효된 날, 덥고 습하여 몇 걸음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오신 최 선생님까지 수강생 열아홉 명 전원이 출석하였습니다. 대단한 소설반입니다. 학기 초에 작가님이 내주신 과제 마감일이 수업 전날이었는데요. 카페에 게시한 글들을 읽어보니 소설가 지망생들이라 그런지 다들 잘 쓰셨더군요. 작가님도 수강생들의 열의와 열정에 책임감을 느끼신다고 하셨어요. 모두들 멋지세요!
가. 장면묘사
ㄱ. 구체적인 행위나 사건이 벌어지는 작은 화면
ㄴ. 작품의 현실성과 생동감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기능
ㄷ. 왜 그 장면을 보여주려는지 의의와 필요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ㄹ.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린다
ㅁ. 문체, 문장의 호흡, 작가의 개성 등과 직접 관련이 있다
: 대체로 많은 소설들이 서사를 다루다 보니 긴 시간을 짧게 압축한 형태인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요. 아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이 클로즈업을 하는 것입니다. 클로즈업을 통해 그 인물의 내면, 속마음, 감정, 기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지요. 그 장면에 서브텍스트가 아주 깊숙이 아주 중요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단순히 뭔가를 세밀하게 장면을 묘사해서는 안 되고요. 그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어떤 갈등, 긴장 이런 것들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뭔가를 자세히 묘사하려 보면 실제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군더더기들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과감히 버릴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관념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한 편의 좋은 소설은 모든 문장에 작품을 관통하는 세계관이 흐른다고 볼 수 있어요. 좋은 문장이라는 것은 한 편의 글을 통해 담아내려는 무언가가 각각의 유전자처럼 거기에 깃들여 있어야 한다고 해요.
기사 조각을 잘 접어서 1년 반 내내 청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그 바지에서 인쇄물은 보풀로 변했다가 주머니 자체가 되었고, 나중에는 청바지 자체가 어릴 때 엄마가 부스럼에 발라준 달걀껍데기처럼 얇아지고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조이 윌리엄스 「어렴풋한 시간」에서) |
왜 이 문장이 좋은 문장이냐 하면, 비유를 바깥에서 끌고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얇다' 하면 관념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종이, 잠자리 날개 등. 하지만 이 문장에서는 이 인물이 이전에 겪었던 일들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적어도 우리가 몇몇 가지를 짐작할 수 있죠. 한때일지는 모르나 엄마가 애정을 가지고 소년을 돌봤다는 것. 부스럼을 앓았다는 걸보면서 소년이 허약했음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소설 바깥에서 비유를 끌고 옵니다. 물론 좋은 경우도 있지만 좋은 비유는 그 소설 내부에서 추출해낼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비유를 할 때, 그때 훨씬 좋은 비유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단지 이미지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진술되지 않은 인물의 이력과 사연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비유가 됩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구멍가게 주인 같은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해요. 쪼잔 해지라는 말씀인데요. 어떤 한 편의 소설을 쓴다면 바깥에서 뭔가를 끌어들이는 시도를 절대 하지 말고 그 내부에서 가능한 것을 쥐어짜가지고 거기에서 끌어낼 수 있는 무언가로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한다고요. 한 장면을 선택해서 보여준다는 것은 그 장면을 독자가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장면만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장면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들까지도 집약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죠.
다음주는 잠시 쉬어갑니다. 10주 차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책 <올드 스쿨>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