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교수님 합평 내용 _ 8월>
1. 남의 글을 합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와 내용. 소재와 궁합이 맞느냐, 삼천포로 안 빠지고 글 내용이 하나로 쭉 나가느냐 아니냐를 본다.
첫사랑에 대한 글을 쓸 때 대상, 이 글을 읽고 그녀가 선명하게 떠올라야 한다. 자기 글에 누구를 등장시킬 때는 만나보고 싶도록 개성미 있게 인간을 형상화해라.
2. 되도록 많은 사람이 내 글에 관심을 두게 하려면 내용에서 구체성을 잊어선 안 된다. 궁금하면 작가에게 다 물어야 한다. 장소, 무대 즉 도시가 어디냐? 초등학교 이름도 넣어야 한다. 같은 지역 출신 사람이나 초등학교 동창이 본 다면 더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수필은 시나 소설 다른 장르보다 구체성이 중요하다.
3. 자기의 생애를 쓴 글에서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면 주제를 달리해서 두 편으로 나눠 쓰면 좋다. 아직 글쓰기 초보 단계라면 생애를 통틀어 쓴 이야기로 보고 고치지 말고 한국산문에 올려도 된다. 수필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첫 번째 글로 자기소개를 겸해서 글 쓴다.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
4. 남의 글을 가지고 칭찬도 하고 비판도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내용이 재미있었나? 유익한 정보가 있었나? 등 읽고 나서 자기가 세운 가치평가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한다. 각자 자기 눈으로 봐서 네 가지 등급으로 나눈다.
1. 잘 쓴 글이다. 2. 중간이다. 3. 못 쓴 글이다. 4. 형편없다.
제일 먼저 등수를 머릿속에서 정한다. 그런데 합평에서 “당신 글은 못 쓴 글이다.” 대놓고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내가 못 썼다고 생각한 이유를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한다. 이 글을 어떻게 고쳐 쓰면 더 유익할 것인가. 다 같이 논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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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합평에는 꽉 찬 15편이 올라왔습니다. 교수님께서 전반적으로 회원님들의 글이 좋았다고 하셨어요.
작품 수가 많은 데다 이날은 교수님을 위한 깜짝 ‘출간기념회’를 수수밭과 수수밭길에서 준비해서 합평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합평 내용은 짧고 간단했습니다.
강의실에서 임헌영 교수님의 신간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출간기념회를 가진 후 식사를 하고 커피숍에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중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좋은 대목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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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작가를 보면 이사람 이때 뭘 했는가, 어떤 삶을 살았나가 궁금했다.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살아서 개나발 행동을 했다면 몹쓸 인간이다. 서양 문학사를 보면 가장 잘 썼다는 랑송의 <프랑스 문학사>에서 제일 먼저 시대적 배경이 나온다. 스탕달의 챕터를 보면 첫째로 시대적 배경, 다음에 작가 생애, 작품 세계, 문학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유학 간 문학 전공자들이 이 부분을 놓친다. 생애를 간략하게만 알고 넘어간다. 생애를 자세히 알고자 보면 외국에 기록이 다 있다. 그런 공부를 게을리한다. 작가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시대를 다 알아야한다. 소설기법이나 이런 것만 배우고 와서 강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작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헤세하면 반전주의 평화주의자다. 전쟁을 피해서 독일이 동서 분단되어 양쪽에서 다 오라 해도 나는 가기 싫다고 말하며 스위스에서 살다 죽은 사람이다. 독문학자들은 헤세가 왜 스위스사람인지 관심이 없다. 헤세 작품에 대해서만 어쩌고저쩌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만 한다. 역사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 작품만 보고 평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죄지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밝히기 싫어한다. 소설가는 글만 잘 쓰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수필을 쓰는 여러분도 깨끗하게 잘 살아야 한다.
피천득이 얼마나 깨끗한 사람인지 아는가? 피천득이 왜 그렇게 글을 잘 썼는지 아는가?
피천득은 투철한 평화주의자고 반일 항일 친일파 반대한 사람이다. 순수 수필이 이런 거다.
피천득이 어렸을 때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된다. 하지만 평생 돈 걱정 안 하게 아버지가 남겨둔 재산이 있었다. 경기 중학 들어갔을 때 머리가 좋아서 월반을 했다. 합격됐다고 신문에 났는데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춘원 이광수였다. 자신도 부자인데 공짜로 먹여주지 피천득을 쌀 두 가마를 받고 하숙시켜준다. 피천득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3년간 춘원의 형제들과 친형제처럼 지내며 살았다. 상해 유학도 알아봐 주고 아버지처럼 피천득을 보살펴 준 춘원 이광수가 친일한 것에 대해 수필 <춘원>에서 이렇게 썼다. “그(춘원)는 산을 좋아하였다. 여생을 산에서 보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아깝게도 크나큰 과오를 범하였었다. 1937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더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을까.”
감옥에서 죽었어야 했다는 말을 한 것이다. 센 사람이다. 나도 이렇게 말은 못한다.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세상 떠난 사람한테 이런 말 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지만 서 아무개 같은 사람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봐줄 수가 없어요. 일제뿐만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랬어요. 작가는 인격이나 인품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또 문학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물건은 다 버려도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품이 좋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피천득의 말. 정정호 엮음,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샘터, 2014, 253-254)
여기서 서 아무개는 미당이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산문을 썼던 피천득이 왜 이런 가혹한 발언이나 글을 썼을까. 지금까지 친일문학인에 대하여 이처럼 혹독하게 비판한 문학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아마 친일문학의 본질을 피천득은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친일하고 전쟁 후에는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그게 무슨 시인이냐. 그래서 피천득이 순수하고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그대로 묻혀있다. 이건 나만 안다. 여러분들이 공부를 이런 식으로 해야 진짜 수필을 쓰고 진짜 평론을 쓴다. 대충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하나를 깊게 파고들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파고드는 방법론을 익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