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데카브리스트와 푸시킨
네가 주인이다/홀로 살아가라/걸어가라 자유로운 길을/
자유로운 정신이 너를 이끄는 곳으로
학업을 마친 푸시킨은 외무성에서 근무했지만 혁명적 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유를 찬양하는 시가 화근이 되어 푸시킨은 남부 러시아로 유배당했다.
외무부에 근무하던 푸쉬킨은 시를 계속 써서 돌렸는데 친구들이 필사해서 계속 돌려봤다. 나중엔 경찰에게 감시당하자 시를 다 태워버렸다.(으 아깝다)
“위대한 사람은 자기 비방하는 사람을 무시해야한다. 그 사람들 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차다예프의 충고에 용기를 얻기도 했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푸쉬킨은 장남으로 남동생 셋,여동생 1명, 생가는 없어지고 터만 표시해두고 있다. 어렸을 때 별명이 ‘볼품없는 오리새끼’였던 푸쉬킨,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가 푸시킨은 지구상에 동상이 가장 많다. 아버지는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단한 귀족 이었지만 큰 출세는 못한 퇴역 소령, 어머니는 독일계의 후예의 더 대단한 귀족(한 마을 전체가 다 농노),조상 중에는 에디오피아 혈통이 있어 푸쉬킨도 영향을 받은 듯 하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 김소월과 만해를 합친 듯한 국민 시인 푸시킨을 레닌도 좋아했다. 1811년,12살에 당시 러시아 최고 명문 짜르스코에(귀족 자제만 들어가는 학교-황제의 마을)에 들어간 푸쉬킨은 이 학교에 다닌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 학교가 예카테리나 궁전 옆에 있었지만 학생들 분위기는 전학생이 혁명적이었다.
‘소심 대담’하고 화도 잘 내고 명랑하기도 했던 푸시킨...학예회 때 자작시 시 낭송후 유명해졌다. 오늘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쪽으로 2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도시 푸시킨. 러시아 황제 여름 궁전이 있는 이 도시 본래 이름은 차르스코예로 즉 ‘황제의 마을’이었다.
푸쉬킨은 심한 장난꾸러기:왕비의 시녀장에게 밤중에 느닷없는 키스 했는데 막상 노할머니였다. 할머니가 교장에게 이르자 교장실에 온 황제는 기강이 문란한 학생들 앞으로 조심하라고 하라고 주의를 준 후 교장의 귀에 대고 “우리끼리 얘긴데 할머니가 좋아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오 멋진 황제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 ㅋㅋㅋ
푸쉬킨의 첫작품 <루스란과 루드밀라>는 글린카가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다음 주에도 푸시킨은 쭈욱~~이어집니다.
<2부> 합평
(나운택/정국희:시/조성삼/이문자) 선생님들의 글 합평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시는 분들 이름이 단골로 보입니다.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