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길어지니 짜증도 길어지네요.
마스크에 익숙해 질 때도 되었는데 나아지기는 커녕 짜증이
“지대로‘네요. 그래도 그 동안 <한국 산문>을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발간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감사 해야한다는
말로 오늘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장엄하게 시작한 이유는 오늘 이경희와 정명순 두 분의
등단 축하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파릇하게 시작하는 두 분의
앞날을 축하합니다.
이상하게 지난 주에 오마고 하시던 분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할
것 다 하고 사진도 찍고 맛난 음식도 먹었습니다.
합평 작품
선릉역 그녀( 이진성) : '그녀'라는 말은 우리 말에는 없답니다.
일어 피녀(被女), 혹은 궐녀(厥女)에서 온 듯 한데 대화에서는
써도 되지만 문장에서는 좋을 때는 그 여자를, 나쁠 때는
그년을 쓰고 글에서는 '그녀'를 쓰지 말랍니다. 남자의 경우는
그 남자, 그는 굳어진듯 한데 여자의 경우가 아직 문제랍니다.
우리가 요리할 때 재료에 따라 칼을 선택하듯 ‘소 잡는 칼로
닭 잡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비유나 표현도 결이 맞아야
한답니다. 이야기의 법칙은 어디에나 적용이 되는데요.
얘기를 전개할 때 기대는 하게 하되, 예상은 깨라.
아이고 어려워라. 이런 건 도사님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요?
세 번 째 ‘마기꾼’(최보인 ) : 일상의 모든 것이 글감이 되는데 잘 건졌답
니다. 특히 “야,너도 엄마 있어! 쟤만 엄마 있어? 걱정 마!”가 잘 되었
답니다.
등단작이 마지막 작품이 된 사람도 70%이고 등단이 목표인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인터넷에 떠도는 신조어를 쓰고 싶으면 최보인씨처럼
홑 따옴표(‘ ’)를 사용해서 쓰면 된답니다.
11년 전 등단하던 때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는 10년 후에도
글 쓰는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루 3번 받는
밥상이 제게 맞는 상이었는지 상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동안 쓴 글을 모아 드디어 작년에는 <흙반지> 라는 수필집도
냈습니다.
저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글을 썼기 때문에
사물을 볼 때마다 어떻게 표현할까 궁리하고 사전을 찾아보고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도 맞춤법에 맞춰서 말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띄어쓰기는 영 안되네요.
오늘 등단 하시는 두 분을 보니 기냥 옛날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두분 이쁘게 사진 찍어서 올려 주려고 했는데
두번이나 글만 날렸어요. 뭐야 뭐. 왜 안되는거야.
아마도 다른 곳에 사진을 올려야 하나봐요. 잉잉 너무 시러.
전시회 도록울 만들 때 사무실에서는 여자 화가분들께 제발 10년 전
사진 말고 5년 전 사진을 보내 달라고 부탁 합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보고 저도 똑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든 제 얼굴이 저도
익숙하지 않아요. 앞으로 더 그러겠지요.
선생과 동냥치는 삼일만 견디면 평생을 한다고 했어요. 까이꺼 삼일만
견디면 늙는 것도 평생 견딜 수 있겠네요. 코로나, 아무리 길어도 우리는
견뎌낼 수 있어요. 마스크로 가린 것은 코와 입이지 우리 눈과
마음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