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삼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1부>. 문학 강의
새해 첫 강의는 석유왕 록펠러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로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나눔의 삶을 실천할 수 있었을까?
* 석유왕 록펠러 John Davison Rockefeller (1839. 7. 8-1937. 5. 23) 뉴욕 출생. 아버지는 독일과 영국 혼혈,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혼혈. 둘 사이에 3남 3녀 낳음. 아버지와 가정부 외도로 2녀. 어머니는 남편의 바람기와 방랑기로 가정생활 온갖 고초 겪음.
* 이런 아버지였으나 아들에게 경제관념은 확실히 교육 -무언가 해야 돈 번다는 확신 주어.
아버지의 부재에도 신앙심 깊고 근면 성실. 뛰어난 토론력으로 자기의사 분명히 밝히며 음악을 사랑.
* 젊은 시절 꿈 - 10만 달러 벌기와 백세까지 살기.
* 1859(20세) - 독자적인 사업시작, 1863년 공동투자자가 석유 정제업에 손대며 방향전환.
등잔불로 쓰던 고래 기름 값이 오르며 속유로 대체되던 시기라 석유산업은 급성장.
1865년 남북전쟁 끝나자 철도 개설, 건설 붐, 서부개척 등 열기타고 에너지 산업 급성장 추세로 석유산업은 가장 안전한 이득. 당시에 카네기도 강철로 돈 벌어.
* 감리교 창설한 영국 신학자 John Wesley의 말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벌어라, 최선을 다해 모아라, 최선을 다해 주어라”를 실천한 기업가.
* 1864(25) - 교사이며 박애주의자, 노예페지론자인 로라(Laura, 1839-1915) 와 결혼.
* 1870(31) - 스탠다드 오일 공동 창업. 급성장하며 오일, 석유개발, 정유시설, 운반 독점,
마케팅까지 전 과정 손대며 급성장. 이 시절의 록펠러는 ‘피도 눈물도 없이’ 타 기업 흡수 통합하던 재벌 후보.
* 1881(42) - 미국 내 생산 석유의 95% 차지. 당시 철도왕과 협상. 유통 독점으로 트러스트. 철도업자들 담합하자 송유관 개발.
* 1890(51) - 셔먼 반독점법 국회통과. 너무 벌어 ‘반독점법’ 제정.
* 1911(72) - 독점금지법 위반 판결.“스탠더드 오일이 경쟁사가 정유 업계에서 활동 못하도록 부당한 조치를 취했다”고 판결하자 록펠러는 목사에게 주식 매입 권유, 그룹은 34개 회사로 해체. 주식 급등. 록펠러 재산 3배 증가.
* 1913년 9월 악명 높은 노조 탄압. 콜로라도 파업사건.
* 1915(76) - 아내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7400만 달러 기부해 ‘로라 스펠만 록펠러 기념재단’ 설립. 교회와 선교사 후원 및 사회학 연구 지원. 후에 록펠러 재단과 합병.
* 1929(90) - 10월 24일 대공황 시작. 아들이 뉴욕시 재정 기여 등 위해 록펠러 센터 건립 결정. 록펠러 재단은 뉴욕시 수도관 시설 및 뉴욕시민들 평생 수도요금 책임. 이로써 재벌에 대한 대중들 감정 순화.
* 1937. 5. 23(98) - 플로리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죽기 몇 년 전 헨리 포드에게 “우리 천국에서 함께 만납시다.” 장례식 날 미국 전역, 세계 유수 기업들 5분간 묵념.
* 록펠러 센터 - 1931~1939년 뉴욕 중심가에 세움. 지상 70층, 13개동 고층 빌딩.
** 유산 - 2600만 달러 정도. 24개의 대학과 4928개의 교회 헌납, 5명의 자녀와 15명의 손자와 손녀, 11명의 증손자와 증손녀.
** 후손들 - 기업경영과 자선사업, 예술과 정치 등 다방면에서 두각.
록펠러는 돈의 가치를 알고 그 쓰임을 활용할 줄 알았던 진정한 사업가이며 자신이 번 돈을 사회에 기부해 많은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게 한 진정한 기부왕!
“나는 시작부터 일하고 저축하며 나눠주도록 훈련받았다.”는 록펠러의 회상은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는가?
<2부>. 합평
조선근 / 성민선 / 민경숙 / 곽미옥 / 소지연
** 새로 오신 오길순 선생님 반갑습니다. 또 오랜만에 오신 최 윤선 선생님도요~
오래도록 함께 공부해주셔요. ^^
다음 시간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아름다운 시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