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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강:무라카미 하루키,『노르웨이의 숲』 (용산반)    
글쓴이 : 신재우    22-05-01 10:30    조회 : 1,695
1.하루키,『노르웨이의 숲』 요점정리.
  가."나 지금 어디에 있지? 와타나베는 스스로 묻는다. 독자에게 묻는 실존적 
      질문.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하루키와 음악; 하루키 소설에는 많은 음악이 소개되며,음악을 들으며 소설을
       읽게 안내한다.
  다.'우물'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다. 우물은 삶의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잇는 
        경계에 있다. 우물은 죽음의 공간이고, 초원은 삶의 공간이다.
  라.'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2.정약용,<<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가.국량(局量)의 근본은 용서하는 데 있다.
   나.모든 사람에게 일을 맡겨라.
   다.편지 쓸 때 명심할 점.
3.합평이 있었습니다.
  가.김경애 선생님의<봄날, 서랍 속 무늬들>.
  나.정혜경 선생님의 <완벽한 투정, 완벽한 사랑>.

박미정   22-05-03 13:01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森>은 우리나라에 와서는 <상실의 시대>라고 지어졌습니다.
하루키는 이러한 번안 제목을 싫어했지만 <노르웨이의 숲>으로는 팔리지 않았고 개명하고 나니 폭발적으로 팔렸으니 어쩔수 없었지요. 지금은 계약기간이 끝나 <노르웨이의 숲>으로 통일되어 출간되고 있어요.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즈의 노래제목입니다.
Norwegian wood라고 노르웨이 가구 혹은 나무라고 번역되어야 하는데 woods로 숲으로 번역한 겁니다.
하루키는 오역이 아니라며, '노위전 우드의 애매한 울림이 이 음악과 가사를 지배하고 있고 그 불가사의한 깊이야말로 이 노래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노르웨이의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함'이라는 글에 적혀 있네요. 

숲(森)은 와타나베와 기즈키와 나오코, 이 세명의 나무로 이루어짐을 시각화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과도 숲을 이루며 사랑의 변주곡을 노래합니다.
비틀즈 가사의 When I awoke I was alone. 이 이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핵심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제목이 바로 이 실연과 상실감을 표현한 <상실의 시대>인거죠. 

사실 노래에서나 소설에서나 북유럽 노르웨이의 울창한 숲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럼에도 한 때 현대전자 휴대폰 광고에서 청춘남녀의 썸타는 광고의 매개체가 이 책이었고 당시 엄청난 매상을 올렸다고 하네요. 남자가 <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는 여자에게 한 첫 멘트는 "노르웨이의 숲엔 가보셨나요?" 였지요.

1960년대의 영국에서는 북유럽산 가구가 유행했다고 해요. 
전쟁 후 당시 영국여성들은  엄청 부지런히 일을 했다네요. 섹스리스를 불사할 정도로요.
싸구려 노위전 가구를 살 수 밖에 없었는지 아니면 그렇게 일을 해서 고가의 노위전 가구를 사고 싶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분위기가 비틀즈 노래에 고스란히 풍자되어 있다고도 해요.

신형철 교수의 산문집을 보면 노래의 원래 제목은 Knowing She Would랍니다.
Isn't it good? knowing she would 사랑의 행위가 시작될 것 같은 설렘의 순간을 그리려고 했는데 레코드 회사에서 음란하다고 반대하였고 존 레논이 노잉 쉬 우드를 노위전 우드로 바꿨다네요.
멋지지않아? 그녀가 하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말이야.

하루키의 소설은 제목 하나가지고도 소설을 능가하는 소설을 무한 확대 쓸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을 가지고 있네요. 이러니 비틀즈의 음악을 무한반복 틀어놓고 하루키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어요.

신선생님의 요점정리 감사합니다.
미도리의" 지금 어디에 있니' 성경의" 아담아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작가는 100퍼센트 연애소설이라는데 그 깊이가 한없이 심오합니다.
김미원   22-05-05 10:03
    
수업 참여 못한 갈증을 두 분의 후기와 댓글로 축입니다.
심오한 작품을 만나는 시간이었네요.
수필 합평에 내신 두 분 작품, 궁금해지는 멋스러운 제목입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임정희   22-05-09 06:56
    
신재우 선생님의 쪽집게  정리, 반장님의 맛있는 레시피같은 댓글 넘 잘 읽었습니다.
늘 애써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저는 , 저자 하루키 작가의 생각을 댓글로 입력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 소설에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의 의미입니다.
그와 동시에, 한 시대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건,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 남게 되는 건 아닙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한국어판 부치는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