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플롯이 느슨해지고 인물의 형상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소설(노블, 쇼트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플롯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태준의 소설에서는 플롯보다 인물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플롯이 느슨한 대신 인물들이 자기만의 특징을 가진 선명한 그런 느낌으로 우리한테 다가오게 합니다.
세 번째는 이 작품 역시 아이러니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마땅히 지켜야 하는 사소한 관습(주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을 지키기 위해 더 큰 양심을 훼손하는 반인륜적 행동을 합니다. 사소한 관습을 지키기 위해서 죽지도 않은 아기를 묻어버리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체호프의 작품과 기본적인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밀도가 높은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단편소설은 세계의 단편문학과 비교할 때 눈에 띄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요. 분량이 길다 못해 중편만큼 늘어났다는 것이고요. 길이가 늘어나면서 작품의 밀도도 그만큼 높아졌답니다. 또한 장편소설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 세계의 총체성을 환기시키는 영역에까지 이르렀다고요. 그 탓인지 한국 단편이 세계의 단편과 비교할 때 재미가 덜하고 어렵다는 불평도 이따금 듣는다고요. 이태준 작품 역시 밀도가 높은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 단편소설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도 이런 방식으로 시작되었고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다독(多讀)에 관하여
많은 작가들이 말하듯이 작가님도 고전 작품을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고전은 소설 쓰기의 난관에 처했을 때 실마리를 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책들이죠. 이러한 책들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으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반드시 꼭 원저를 찾아서 읽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수강생 한 분이 고전 작품 중에 작가님이 추천하는 작품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자기 집 서재에 사 놓기만 하고 결코 읽지 않았던 그 책부터 읽으라고요. (다들 뜨끔하셨지요?ㅎㅎ) 수업 중에 자주 거론하시는 「돈키호테」, 「서유기」, 「걸리버 여행기」. 이 책들도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