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문학동네, 2011, 107쪽
<유성호 교수와 함께 읽는 세계 명작>의 첫 수업은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필경사 바틀비』로 문을 열었다. 1853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오랫동안 그 진가가 묻혀있었지만 20세기 초 멜빌 문학에 대한 재평가 이후 ‘바틀비’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해석이 전개되었다. 지금은 미국문학, 나아가 세계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단편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미국 경제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뉴욕 월가(Wall street)를 배경으로 타협적인 화자 변호사와 비타협적인 고집쟁이 필경사인 주인공 바틀비를 대비한 작품이다. 창밖을 내다보아도 온통 벽뿐인(거리 이름 자체가 Wall) 초기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 최고 갑부에게 의뢰받는 자부심 강한 30여 년 경력의 원만하고 성공한 변호사가 화자이다. 이 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된 말이 없고 음울한 분위기의 필경사 바틀비가 주인공이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그에 대한 정보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용인 상관의 말에 공손히 복종하며 시킨 일을 열심히 해야 함에도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본문에서 이 문구는 25회나 반복됨)라는 바틀비의 어처구니없는 독특하고 불손한 답변의 반복을 통해 이 작품의 문학성과 사회성 및 철학적인 면을 푹 넓게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은 일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기거하다 마침내는 건물주와 세입자의 고소로 구치소에 갇히나 식음마저 거부하고 벽을 마주한 채 죽음을 맞는다. 주인공의 기이한 행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부적격하며 관례와 상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이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과 노동, 근대의 합리성, 작가의 창조적 자유와 권리 등의 문제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즉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및 실존적 측면에서 자본과 노동, 율법과 사랑, 기독교적 관심, 분노와 연민, 헌신과 사라짐 등의 동심원적이고 다원적인 해석으로 추론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 바틀비는 자기 목소리가 크고 단호한 고집으로 죽음도 불사하는데 마치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처럼, 또는 평생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불행한 일생을 보낸 작가 멜빌 자신일 수도 있다.
인생은 우연과 필연으로 사람과의 연속적 만남이다. 좋은 작품은 기억에 떨리게 남아 있곤 하여 잊히지 않는다. 『필경사 바틀비』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아이러니인 허무와 현대인의 실존적 고독을 보여주는 슬프고도 강인한 흡인력을 지닌 걸작 단편이다.
수업 중에 유 교수님은 나희덕의 <누에의 방>,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상의 <날개>, 빅토르 위고의 <장 발장(레미제라블)> 등 다양한 수작을 소개하며 해박한 문학적 지식을 제공해 주었다. 교수님이 강의 중 본문 중에서 인용해 준 글이다.
“인색하고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긁어대면 그들보다 관대한 사람들이 품은 최선의 결의마저 결국은 지치게 마련이다.”(72쪽)
<명작읽기반> 수업 첫날 수강 신청한 문우님 31명 전원이 출석하였고 공부 열기가 가득했다. 앞으로 수업에 임하는 명언을 소개하면,
“Better late than never come.” (아주 안 오는 것보다는 늦더라도 오는 편이 낮다).
<명작읽기반>의 월별 읽기 교재
7월 7일(목) 『필경사 바틀비』 멜빌
8월 4일(목) 『백 년 동안의 고독』 마르케스
9월 1일(목)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에르펜베크
10월 6일(목) 『소년이 온다』 한강
11월 3일(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쿤데라
12월 1일(목)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