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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쓰기의 시작 (소설반)    
글쓴이 : 김성은    22-08-05 08:51    조회 : 4,550

8월 첫 주 강의에는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이로 인해 결석하거나 휴가를 떠나신 여섯 분을 제외하고 열다섯 분이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수업에 참석하셨습니다. 소설 수업에 오면 길고 지루한 비와 무더위에 지친 마음이 사라지는 기분이 드는 데 저만 그런 게 아닌 듯이 모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소설 쓰기의 시작

작가님 : “이 강좌를 계기로 해서 소설을 써보겠다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사실 소설을 쓰려고 마음을 먹으면 난감하지요. 습작시절에는 기존 작가들은 어떻게 쓰는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면서 이런저런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거나 내 주변의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나 삶의 태도를 갖추게 됩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을 읽다보니까 어느 순간에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요. 김남주의 시 중에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는 시가 있듯이, 다른 사람들의 시를 읽다보니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어 시를 쓰게 되지요. 이런 것처럼 지금까지 읽어온 소설들이 알게 모르게 여러분들 마음속에 어떤 하나의 이미지로 이미 정착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이미지에 의거해서 쓰면 됩니다. 

기성작가들도 매 소설을 쓸 때마다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해 합니다. 저 또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막막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기성작가나 습작가 다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려움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설 쓰기를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창비에 실린 시를 보고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나는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써 보았다

  나의 칼 나의 피에 실린 나의 시를 보고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노동자와 농민이 또는 전사가

  시라는 것을 처음으로 써 보았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보람이고 나의 자랑이다

 

  그 무렵 창비에 실린 시를

  내가 읽어 주면 우리 어머니가 듣고

  헤헤 영축없이 우리 사는 꼴이다이

  그런 거이 시다냐 참 우습다이 참 재밌다이

  그 당시 창비에 실린 시는 그런 것이었다.

  _김남주 시집 '조국은 하나다' (1988 도서출판 남풍)에서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 나는 글쓰기를 일종의 자기희생으로 보거나 경제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피폐할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는 낭만적인 생각에 반대한다. 작가는 감정적, 신체적으로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위악적이거나 정서적으로 스스로 학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대한 자신이 소설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조건이 다 갖추어져야만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뜻도 아니고요. 가만히 앉아있는데 저절로 글이 써지는 건 아니죠.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야 하고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글을 쓸 수 있는 나, 글에 몰두할 수 있는 나를 만들어야 합니다. 젊은 친구들은 이런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젊었을 때는 쓰기만 하면 경천동지할 글을 쓸 거고 한국의 문학상 따위 다 휩쓸고 최연소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대부분은 생각을 하게 되죠. 사실 소설을 쓴다는 게 지겨운 작업입니다. 시나 수필에 비해 소설은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앉아서 쓰는 시간이 길다보니 노동자나 다름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소설가는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앉은 채로 유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죠. 마음이야 정말 전 세계를 다 떠도는 영혼일줄 몰라도 실제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면 소설 쓸 시간은 없습니다. 소설가는 지루한 사람일수밖에 없고 재미없는 사람일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는 감정적, 신체적으로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건 늘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올더스 헉슬리: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확실히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 윌리엄 포크너: 동료나 선배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 자신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노력하라.

: 글을 쓰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이기도하고 뭔가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건 결과적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갱신하는 것이죠. 타인을 능가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쓰는 글보다 더 나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