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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친구 아이가!    
글쓴이 : 박병률    16-03-02 14:22    조회 : 8,844

                           우리 친구 아이가!

                                            

    친구 다섯 명이 친목을 다지며 지내던 어느 날, 은행에 다니는 J가 동네 친구라며 K를 모임에 끌어들였다. K는 건설사에 건축자재를 납품하는 사업을 했다. 한때 사업이 잘되는지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고 사업장도 물건이 쌓여 나날이 커졌다.

  친구를 맞이하고 물망초라는 이름으로 두 달에 한 번씩 만났다. 만날 때마다 일정 금액의 회비를 걷어서 식사하고 나머지는 저축했다. 자금이 약 1,000만 원 정도 모였을 때였다.

  K가 총무를 맡을 차례였다. 그 무렵 그가 거래하는 거래처 여기저기서 부도가 나는 바람에 연쇄부도를 맞았다. 사는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고 사업장도 집달관의 딱지가 붙어 쑥대밭처럼 되었다. 그 후 모임도 드문드문 나왔다. 어쩌다 참석해도 식사는 뒷전이고 술잔만 연신 기울였다.

  모임 때 K가 화장실에 가자,

   “K가 이번에 총무 할 차례지? 다음 순번이 총무를 맡어.” 라고 J가 밑도 끝도 없이 한마디 했다.

친구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천장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은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K가 취기가 올라온 듯 고개를 숙이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쭈그리고 앉아서 집게손가락으로 방바닥에 무엇인가를 끼적거렸다. 방 안은 숨소리조차 멎은 듯 고요했다. J는 그 틈새로 친구들을 번갈아가며 두 눈을 연신 깜박거렸다. 그는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자기주장이 원칙이고 순리라도 되는 양 뭐든지 밀어붙이기 일쑤였다.

   그때였다. 아까 천장만 바라보던 친구가 J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원래 순서대로 총무 혀.”라고 말했다. 마치 얼음판에 두꺼운 얼음이 갈라지듯 맑고 경쾌한 '' 소리처럼 들렸다. J는 하마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J가 쳐다보든지 말든지 ‘K가 총무를 맡아 친목회 돈이라도 지니고 있으면……하며 말끝을 흐렸다.

   K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분위기를 파악한 듯, 총무 자리를 정중히 양보했다. 이어 내가 거시기 헌게, 다음 사람이 맡아.” 하며 양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도 한때 사업하면서 결제대금으로 현금보다는 주로 어음을 받았다. 어음을 받으면 남대문에 가서 깡을 했다. 때론 가계 수표를 끊어서 돌려막기도 한 터라, 직장생활 하는 사람은 때가 되면 꼬박꼬박 월급을 받지만, K의 심정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그해 겨울, K는 일용직 일을 나간 지 사흘 만에 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고 깁스를 풀자마자 눈길에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 입원하자 친구들끼리 모여서 병문안을 갔다. 병실을 나서면서 어떤 친구가 K의 병원비를 보태주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J가 풍선처럼 볼에다가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듯 퉁명스럽게 회칙에 없는 걸 왜 새로 만들려고 그려. 회칙대로 하자고.” 하며 딴죽을 걸었다. 그의 얼굴은 오랜 가뭄 끝에 금방 소낙비라도 퍼부을 것처럼 울그락불그락 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나중에 의논하자고 끼어들었다.

   한길에 나서자 칼바람이 몸속을 파고들었다. 가로수는 벌거벗은 채 가지가 좌로 혹은 우로 심하게 흔들린다. '나무뿌리는 중심을 잡으려고 얼마나 발버둥 칠까?' 라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 K와 그동안 나눴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간다.

  해마다 휴가철에 우리 친구들 여섯 가족이 뭉쳤다. 아이들을 데리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바닷가 근처 소나무밭에 텐트 치고 밤새도록 놀았다. 어느새 아이들은 훌쩍 커서 우리 곁을 떠나고 J는 얼마 전에 명예퇴직 했단다. 퇴직금을 상가 분양을 목적으로 투자한답시고 사기꾼한테 걸려서 몽땅 날려버렸고, 퇴직금을 조금이라도 건지려고 용한 점쟁이를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런데 K는 지금 남양주에서 상가 하나를 장만해서 여러 가지 중고 기계를 사다가 손질해서 팔고 있다. 어느 날 그 사무실에 들렀더니,

   “회비 낼 돈이 없어서 쩔쩔맬 때마다 힘내! 라며. 내가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게 귀찮을 정도였다.” 고 너스레를 떨었다.

   문득,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한 장면이 떠올랐다.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 두 사람은 친구였다. 폭력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두 사람은 갈등이 있었다. 끝내 준석과 같은 조직원이 동수를 죽이게 되는데, 준석과 동수가 서로 붙들고 마지막 나눈 대화가 당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우리 친구 아이가’ ‘내가 시다바리가라는.

 

                                                                                               한국산문 2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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