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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 빨아먹는 것들 (성동문학 2024)    
글쓴이 : 박병률    24-12-19 21:54    조회 : 611

                                                피 빨아먹는 것들


  강원도 양양에 있는 비발디캠핑파크 설악오색점으로 캠핑을 갔다. 캠핑장에는 여러 개의 텐트와 캠핑카 세 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캠핑카가 있는 한 블록 위에 짐을 풀었다. 주변은 병풍처럼 산이 돌려있고 녹음이 우거져 어머니 품 안처럼 아늑했다.

  캠핑장에는 전기시설은 물론 취사장이며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다. 벚나무 아래에 텐트를 펼쳐놓고 뼈대를 세운 다음 고정했다. 텐트 안에 에어매트 깔고 그 위에 전기장판을 펼쳐놓으면 집 한 채가 완성된다. 집을 짓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봤다.

  캠핑장 주변으로 사철나무가 심어져 있고, 소나무가 아담한 몸집을 자랑이라도 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주차장 입구 쪽에 아름드리 오동나무 한 그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솟아 있다. 양팔을 벌려 나무를 안아보려고 했지만 팔이 짧았다.

  내 눈길이 오동나무 나무껍질에 멈췄다. 껍질이 꺼뭇꺼뭇하고 생기가 없었으므로. 위를 올려다보니 한쪽 줄기는 말라 있었고 담쟁이 잎이 나뭇가지를 에워싸고 있다. 담쟁이넝쿨줄기는 손가락 세 개를 합친 두께만 한데 오동나무를 타고 올라가면서 수액을 빨아먹는 듯 보였다. 담쟁이 잎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오동나무에 담쟁이덩굴이 에워싸서 나무가 죽게 생겼어!”

  내가 혼잣말하자 오동나무 옆에 텐트를 친 아주머니가 듣고 끼어들었다.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예. 남 등쳐먹고, 피 빨아먹고 사는 기 담쟁이뿐인교. 세상에 억수로 널렸습니더. 의사 양반도 보이스피싱에 걸렸답니더.”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담쟁이가 오동나무에 빌붙어서 살아가는 모습은 눈에 영 거슬리구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날 밤 근사하게 보낼 셈이었다. 매점에서 장작을 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 화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였다. 장작이 타서 숱이 되면 석쇠를 올려놓고 새우를 구울 셈이다.

  장작이 타면서 연기를 내뿜고 불꽃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추었다. 불꽃을 바라보는데 오동나무를 감싸고 올라가던 담쟁이가 눈에 밟히고, 아주머니가 내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남 등쳐먹고, 피 빨아먹고 사는 게 담쟁이뿐이요. 세상에 억수로 널렸습니다.” 그때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쓴 뿌리가 고개를 들었다.

  오래전, 옷 만드는 공장을 하는 후배가 찾아왔다. 급한 사정을 말하기에 집을 저당 잡히고 2천만 원을 해줬다. 후배는 은행 이자를 잘 내다가 나중에는 이자는커녕 원금도 다 못 받았다. 또 한 번은 인테리어 사업을 할 때였다. 건축업자가 공사대금 일부를 가져와서 하는 말이 내일 자재를 사야 일을 한다며 코 빠트리고 있었다. 보기가 딱해서 받은 돈을 돌려주면서 자재를 사라고 했다. 업자는 그 뒤로 공사도 중단하고 잠적했다. 집을 네 채나 실내장식을 해주고 돈 한 푼 못 건졌으니 손실이 컸다. 생각할수록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처럼 오동나무에 붙어서 기생하는 담쟁이가 더 미웠다.

  초저녁 캠핑장에서 불멍을 때리는데 박상률 - 치명적인시 일부가 떠올랐다.

 

상수리나무 휘감고 올라가는 칡넝쿨, 거침없다/ 나무의 굵은 허리 지나 가슴에 이르도록/ 세게 휘감은 사랑의 자국/ 상처 되어 깊이 박힌/ 치명적인 사랑에 붙들려/ 나무는 가만히 선 채/ 신음만 나직하다~.

  오동나무가 죽든 말든 내가 상관할 봐 아녀!” 애써 생각을 바꾸려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울어 대는 닭 울음소리가 내 마음에 불을 댕겼다. 톱을 들고 오동나무 옆으로 갔다. 아까 담쟁이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오동나무 옆에 텐트를 친 아주머니가 눈치를 채고 한술 더 떴다.

  “담쟁이를 없애려고 하니껴? 가도 생명이 있는기라예.”

  “새벽도 아닌디 닭은 왜 저렇게 울어댄데요? 부처님, 하느님, 산신령님!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오동나무가 죽든 말든 상관을 안 하려고 했는디, 닭 울음소리가 오동나무의 신음 소리로 들린단게요!”

  톱을 든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성동문학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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