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오길순
건반 위에서 쓰러져도 좋을 피아니스트처럼 날밤을 새운 때문이었으리라. 무대에서 죽어도 좋을 발레리나처럼 ‘독수리춤’을 춘 결과였을 것이다. 오른 쪽 검지가 컴퓨터자판을 두드리기조차 어려워졌다. ‘엉큼한 꿩’에게 당한 늘메기처럼 어깻죽지도 사정없이 늘어져버렸다.
이제 자판 위의 댄서 시절은 옛날 같기만 하다. 늙어버린 날개를 재생한다는 독수리처럼 새 날개로 복원하지 않으면 어깻죽지까지도 무용지물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초음파사진을 분석하던 정형외과의사가 혀를 찼다.
“저런! ‘독수리’가 어깻죽지까지 잡았네!”
곧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했다. ‘독수리’ 타법으로 친 검지손가락과 만신창이가 된 두 날개를 치료하지 않으면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지난 이십년 간 생산한 이백 여 편 수필이 문제였을 것이다. 최근 한 3년 동안, A수필집과 B소설의 500여쪽 표절분석표를 만든 것이 가장 큰 원인제공이었을 것이다. 말없이 충직하기만 하던 ‘독수리’가 처참하게 너부러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3,40살 쯤 되면 홀로 벼랑에 오른다는 전설이 있다. 늙어버린 부리와 발톱으로는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생결단 재생의 길을 찾아 나선 독수리가 벼랑의 바위에 굳은 부리를 갈 때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다. 새 부리가 돋아나면 다시 그 부리로 낡은 발톱까지 빼낼 때, 통증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석해진 깃털까지 모두 털어낸 150일 동안, 독수리는 기어이 7,80년 살아갈 새 몸으로 재생을 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내 검지 끝도 독수리부리처럼 굳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파업을 선언한 ‘독수리’에게 어깻죽지도 한 패거리가 되었다. ‘500여 쪽 표절 분석표’를 위해 ‘독수리’도 ‘어깻죽지’도 기진맥진해 버렸나 보았다. ‘자판위의 독수리 댄서’는 옛이야기 같기만 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주사가 그럴까? 간호사는 뼈주사의 통증을 절절히 예고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긴 침 대롱을 어깨관절 속으로 밀고 또 밀어 넣었다. ‘엉큼한 꿩’의 부리가 그리 사나웠을까? 그 옛날 마루타 생체실험이 그러했을까?
“조금만 참으세요.” 간호사의 낭랑한 목소리에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악! 나 죽어요!”
위기에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더니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뼈를 깎는 고통이라더니 뼈 주사가 그러했다. 만주에서 일본에서 죽어간 마루타들도 그리 서러웠을 것이다. 엉큼한 꿩에게 당한 늘메기처럼 사정없이 너부러질 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꿩은 논두렁 아래에서 늘메기가 기어오기만을 기다린다. 꿩의 목까지 감겨오면 두 날개로 힘껏 홰를 칠 요량이다. 순간 승전고를 올리려던 늘메기가 오히려 패자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래도 꿩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늘메기의 도전과 뚝심은 기어이 재충전을 하게 할 것이다. 살아남은 늘메기의 비결은 엉큼한 꿩을 제압한 끈기와 인내일 것이다.
뼈주사를 맞은 나는 최후의 심판을 받는 늘메기처럼 늘어졌다. 그래도 ‘날 잡어 잡수’, 죽음만 기다릴 수 없었다. 드디어 몸을 추스르기로 작정했다. 500여 쪽 표절 분석표는 ‘엉큼한 꿩’을 향한 늘메기의 최강무기가 될 것이다.
다행히도 ‘독수리’는 지금 회복중이다. 회생불능일줄 알았던 날갯죽지도 재생을 하고 있다. 늙은 부리를 연마한 가루 같기도 하고, 묵은 깃털 같기도 한, A4 용지 몇 상자 파지는 ‘독수리’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 될 것이다. 낡은 발톱자리에 새 발톱이 돋듯, 부석했던 깃털 자리에 새 털이 나듯, 지금 나는 날갯죽지의 부활 속에 산다. ‘자판위의 댄서’는 아니더라도 8,90 살 견뎌줄 ‘독수리’로 리모델링되었다.
그 동안 한의원의 침과 부황, 그리고 정형외과의 결정적인 한 방인 뼈주사가 감사하기만 하다. 150일 동안 독수리를 부활시킨 벼랑의 바위처럼 ‘독수리’를 복원한 의사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마음의 양식 <<행복의 나라로>> 2018.3.23. 국방부)